View 톱 12호 경자유전에서 경자용전으로 flipbook.
최인호 12 경자有전에서 경자用전으로
최인호 12 경자有전에서 경자用전으로
무크 12호 — 경자有전에서 경자用전으로 초판 1쇄 발행 2026년 11월 08일 지 은 이 • 최인호 펴 낸 이 • 양선학 펴 낸 곳 • (주)씨스케이프 등 록 • 2016년 12월 19일 제 2016-000245호 전 화 • 1670-4232 팩 스 • 02-6959-9786 I S B N • 000-00-000000-0-0
최인호 12 경자有전에서 경자用전으로
6 톺 창간호를 낸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12호 마지막 호에 이르렀습니다. 완간이랄까요? 그런 거네요.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어쨌든 독자 여러분과의 약속을 결국 에는 지키게 되어 아주 기쁩니다. 뿌듯하기도 합니다. 잡 지라는 이름으로는 12호를 내며 한 세션을 마무리합니다. ‘완간’이라는 말을 내걸지만, 끝은 아닙니다. 이제 ‘톺’ 은 ‘단행본 시리즈 브랜드’ 성격을 가지면서 13번째 책, 톺 13호로 달려갑니다. 톺 12호 완간과 동시에 단행본 톺 13 호 <<유해 1등급 경제학 미신들>>이 신생아 <<톺>>으로 여 러분을 만납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계속 사랑해주 시길 기대합니다. 열심히 즐겁게 써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잡지 <<톺>>의 마지막 호 12호에서는 지금 우리 농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들여다봅니다. 날벼락 농사짓는 사람에게 농지를 돌려주겠다는 정책이 표방되 톺 12호를 내면서 …
7 면 농민들에게 좋은 일이 생겨야 정상일 것 같습니다. 그 런데 이미 그 땅을 빌려서 농사짓던 사람들이 농지를 돌려 달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농지 전수조사 결과 불이익을 걱정한 소유자가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짓겠다고 나섰기 때 문입니다.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농지 위의 농경자가 바뀌다 정부가 임차농에게 떠나라고 명령한 것은 아닙니다. 그 러나 정책으로 소유자를 압박했더니, 임대차 관계에도 압 박이 가해지고, 농지 위의 농경자가 바뀌었습니다. 2026 년 농지 전수조사를 둘러싼 여러 장면 가운데 제가 특히 주목한 것은 이처럼 정책의 명분과 현장의 결과가 어긋나 는 장면들이었습니다. 불안의 확산 평생 농사지은 사람이 노쇠하여 농사에서 손을 떼고 싶 습니다. 그래서 마을의 다른 농민에게 땅을 맡깁니다. 부 모님이 사망하여 부모의 땅을 물려받은 자녀가 마을의 다 른 농민에게 땅을 맡길 수도 있습니다. 농기계와 경험을
8 갖춘 농민은 여러 집의 논을 빌려 한데 묶어 경작합니다. 나름 영농의 규모화가 진척된 겁니다. 이런 관계 속에서 농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소유자의 자격 과 소유·경작 관계를 엄격하게 가려내겠다고 하자, 사람들 은 자신들의 소유 및 영농 방식을 의심해야 했습니다. 땅 을 계속 가지고 있어도 되는지, 지금처럼 빌려주어도 되는 지, 내년에도 빌려 농사지을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습니 다. 이 불안을 단순히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공연한 불 안과 오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요? 닥치고 경자유전 정부는 투기를 막고 농지를 농업인에게 돌려주겠다고 말합니다. 좋은 뜻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그 말이 실제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는 더 따져보아야 합니다. 농지가 농업인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반드시 소유권의 문제여야 할까요? 농업인이 빌려서 잘 경작하고 있다면, 그 땅은 이 미 그 농업인의 생산 기반이 되어 있습니다. 그 관계를 바 꾸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걸 바꾸어서 농업과 농민에게 어떤 이익이 생기는지 또한 설명해야 합니다. 소유자가 직접 농사짓지 않는다는 사실
9 과 농지가 농업에 쓰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데 묶어서는 이런 것들을 설명할 수 없을 겁니다. 경자有전에서 경자用전으로 이 책의 제목을 <<경자有전에서 경자用전으로>>라고 붙 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농지를 소유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농사짓는 사람이 농지를 안정적으 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기자는 것입니다. 한 글자를 바꾸었지만, 그에 따라 정 부가 살펴야 할 현실과 해야 할 일이 달라집니다. 등기부 의 이름과 경작자의 이름이 같은지를 확인하는 데서 나아 가, 그 경작자가 내년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 토양을 개량하고 시설에 투자할 수 있는지, 필요한 농지를 적절한 조건으로 더 확보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경자유전에는 큰 역사적 성취가 담겨 있습니다. 지주의 땅을 부치며 생산물의 상당 부분을 내주던 농민에게 자기 땅이 생긴다는 것은 생활의 변화이자 사회적 지위의 변화 였습니다. 농지개혁은 소유관계를 바꾸어 농민의 삶을 바 꾸었습니다. 그 성취는 충분히 존중받아야 합니다. 다만
10 그때 만들어진 제도가 이후의 모든 농업 현실에도 가장 적 절한 제도일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습니다. 농민의 독 립과 생활안정을 지킨다는 목적을 이어가려면, 그 목적을 실현하는 방법 역시 달라진 조건 속에서 다시 검토해야 합 니다. 소유는 작게 나뉘어도 경영은 크게 하나로 농지개혁으로 땅을 갖게 된 농민들은 나이를 먹었고, 자 녀 세대의 상당수는 농촌을 떠났습니다. 농사를 계속하려 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소유면적을 넘어서는 경작 기반이 필요해졌습니다. 농기계와 시설을 갖추어도 필요한 땅을 모두 사야 한다면 농업경영은 토지 매입 능력에 묶입니다. 여러 사람의 농지를 안정적으로 빌릴 수 있으면 사정이 달 라집니다. 소유는 여러 사람에게 나뉘어 있어도 경영은 하 나로 모일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농지 임대차에는 이렇게 농업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적극적인 기능이 있습니다. 늙거나 병들어서 어쩔 수 없이 허용하는 예외라는 시각만 으로는 그 기능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제도가 더 적극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여야
11 우리 제도도 이 현실을 조금씩 받아들여 왔습니다. 헌법 은 농업생산성과 농지의 합리적 이용을 위한 임대차를 인 정하고, 법률에는 여러 허용사유가 더해졌으며, 정부는 농 지은행을 통해 소유와 경작을 연결합니다. 그런데도 임대 차를 바라보는 기본 태도에는 여전히 의심과 예외 취급이 남아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남의 땅을 빌려 경영규모를 키 우라고 권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그 임대가 허용될 특별한 사정을 입증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런 제도 아래서 법과 현 실의 간극이 커졌다면, 집행을 강화하자는 말과 함께 법 의 기본구조를 고치자는 논의도 나와야 합니다. 농업에 필 요한 관계가 정식 계약과 권리 보호 안으로 들어오기 쉽게 만드는 것이 입법의 과제입니다. 그렇다고 임대차를 허용한다는 문장 하나로 문제가 해 결되지는 않습니다. 농지를 안심하고 빌려줄 수 있는 조건 과, 빌린 농지에서 오랫동안 경영할 수 있는 조건을 함께 갖추어야 합니다. 계약기간과 갱신, 임대료와 투자비의 처 리, 분쟁이 생겼을 때의 해결 절차가 중요합니다. 농업생 산의 기반으로 지켜야 할 땅이 개발 기대 때문에 사라지거 나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농지의 이용을
12 중심에 놓는다는 것은 이처럼 농업이 계속될 구체적인 조 건에 더 많은 관심과 행정 역량을 쏟는다는 뜻입니다. 농민의 선택을 바꾸려면 그 선택을 둘러싼 제도들도 함 께 보아야 합니다. 나이 든 농민에게 농사를 그만두라고 하면서, 그만두는 순간 생활에 필요한 지원이 줄어드는 구 조를 그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임대차를 정식으로 신고하 라고 하면서, 그 신고가 당사자의 소득과 세금, 경작 기회 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피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직불 금, 농지법, 세제, 노후보장은 행정적으로 서로 다른 제도 이지만 농민에게는 하나의 생활을 결정하는 조건들입니 다. 각각의 정책이 좋은 목적을 내세웠다는 사실만으로 그 것들이 현장에서 잘 맞물려 작동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 다. 이 책에서 공익직불금과 농지제도의 관계를 길게 다룬 이유입니다. 신중하고 사려 깊은 정책 언어가 필요 정책의 언어도 그 생활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농민에게 논과 밭은 평생 일한 장소이고, 부모에게 물려받았거나 오 랜 노동으로 마련한 재산이며, 노후를 의지하고 자녀에게
13 남길 자산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처분과 강제매 각의 가능성을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이미 하나의 강력한 정책행위입니다. 실제 처분이 내려지기 전에도 사람들은 불안해지고, 계약을 바꾸고, 땅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뒤늦게 예외조항을 설명하고 기초조사일 뿐이 라고 말하더라도 처음의 충격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 입니다. 농민의 두려움을 살피려면 그들이 법률을 정확히 이해했는지만 물을 것이 아니라, 정부가 어떤 말과 조치로 그 두려움을 키웠는지도 함께 물어야 합니다. 저는 이런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헌법과 농지법의 기본구조를 살펴보고, 그 위에서 전수조사의 출발과 추진 과정, 농촌의 반응을 따라갔습니다. 이어 직불금과 농지제 도가 서로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고, OECD의 한국 농업 분석과 일본 농지제도의 변화로 시야를 넓혔습니다. 이렇 게 구성한 것은 특정 발언에 대한 찬반을 넘어, 그 발언을 낳은 정책적 시선과 그 시선이 놓치는 현실을 함께 보려는 뜻에서입니다. 같은 농지를 보더라도 소유관계를 먼저 보 는 사람과 경작의 지속을 먼저 보는 사람은 서로 다른 문 제를 발견하고, 서로 다른 해법을 내놓습니다.
14 일본이 먼저 경험하고 변화한 과정 일본의 경험은 특히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일본 역시 자작농을 만드는 농지개혁에서 출발했지만, 오랜 시간 임 대차와 이용권을 통해 경영을 확대하는 제도를 발전시켰 습니다. 그 과정에서는 농지를 빌려주는 사람의 불안과 빌 려 쓰는 사람의 권리, 농업을 맡을 경영체와 지역의 조정 능력을 함께 다루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런 문제들을 제도의 중심으로 가져온 변화입니다. 농민이 은 퇴하고 소유자가 바뀌어도 농사가 이어지게 하는 일은, 소 유자의 자격을 가려내는 일보다 훨씬 넓은 과제입니다. 제도가 정말 농지를 지키고 농민을 돕는지 농지를 지키고 농민을 보호한다는 취지에 반대할 사람 은 없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말이 실제로 어떤 농 지를 지키고 어떤 농민을 돕는지 끝까지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을 집행한 뒤에도 농사가 계속되는지, 농민 이 더 안정적으로 경영할 수 있게 되었는지, 나이 든 사람 이 안심하고 노동에서 물러날 수 있게 되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농지를 잘 이용하는 길이 열리고 농민의 생활이
15 나아질 때, 농지정책의 정당성도 그만큼 단단해집니다. 평생 일군 땅을 간직하면서 농사에서는 물러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땅을 빌려 자신의 농업을 이어가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두 사람의 뜻이 만나 농사가 계속 될 수 있도록 제도를 고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한 과제입니 다. 농사를 그만두는 사람의 삶과 계속하는 사람의 삶을 함께 살피는 농정, 소유자의 세대가 바뀌어도 경작의 기 반이 이어지는 농정이 필요합니다. 경자유전에서 경자용 전으로 시선을 옮기자는 이 작은 책이 그 방향을 논의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최인호
16 머리말: 톺 12호를 내면서 제1장 헌법 안에서 경자유전과 경자용전이 긴 장 병립하고 있다 제2장 포지티브 농지법에서 네거티브 농지법 으로 제3장 국민이 목격한 농지 전수조사의 출발 제4장 경자유전의 이름으로 강력한 드라이브 경자有전에서 경자用전으로 6 19 35 57 75
17 제5장 흔들리는 농심 제6장 공익직불금 제도와 농지제도: 상호 관계와 영향 제7장 경자유전과 경자용전의 개념적 비교 제8장 OECD 보고서도 경자용전 원칙을 권고 제9장 일본 농지제도 변천사: 소유에서 이용으로 95 차례 109 141 153 160
1 헌법 안에서 경자유전과 경자용전이 긴장 병립하고 있다
<제1장 —우리 헌법 안의 경자유전과 경자용전>에 서는 경자유전 원칙과 경자용전 원칙의 문제의식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고, 경자유전 원칙의 형식 적 유지가 농업 발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살펴 봅니다.
21 농지개혁법: 자작농 체제 우리 농지제도의 출발점은 농지개혁이었습니다. 1948 년 제헌헌법은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한다”고 규정했습니 다. 그리고 1949년 <<농지개혁법>>이 만들어집니다. 농지 개혁의 중요한 목표는 소작농 체제를 지양하고 자작농 체 제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비농민의 농지취득을 제한하 고, 일정 규모 이상의 농지소유도 금지했습니다. 대토지소 유를 경계했던 것이죠. 도움말 제헌헌법 제86조: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 배의 방법, 소유의 한도, 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 당시에는 이유가 분명했습니다. 농촌사회에 지주와 소 작인이 존재했고, 농지를 누가 소유하느냐가 농민의 생활, 신분, 생산물의 분배를 좌우했습니다. 그래서 농지를 실제 농경인에게 귀속시키는 것은 농지제도의 가장 중요한 과 제였습니다. 1962년 헌법에서는 소작제도를 법률이 정하 는 바에 따라 금지한다고 규정했습니다.
22 1980년 헌법: 법률에 따라 임대차 및 위탁 경영 인정 그런데 1980년 헌법에서는 사뭇 달라진 내용이 들어옵 니다. “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한 임대차 및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인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소유와 경작의 일치를 요구하는 원칙 과, 필요하면 그것을 분리할 수 있다는 원칙이 같은 헌법 안에 함께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큰 변화입니다. 그리고 이 두 원칙의 병립은 오늘날의 복잡한 농지 현실을 만들어 낸 원인인 동시에, 그 복잡한 현실이 법적으로 표현된 결 과이기도 합니다. 1987년 헌법 1987년 헌법에서는 다시 한 걸음 다른 방향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때 처음으로 “경자유전의 원칙”이라는 표현 이 헌법에 명시됩니다.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1980년에 들어온 임대차와 위탁경영 인정 조항도 그대로 남았습니다. 오히려 여기에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
23 생하는” 임대차와 위탁경영까지 인정하는 문구가 추가됐 습니다. 한쪽에서는 경자유전을 헌법 원칙으로 명시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소유와 경작의 분리를 인정하는 범위를 더 넓 힌 것입니다. 이 서로 다른 방향의 두 흐름이 현행 헌법 제 121조 안에 함께 자리 잡게 됩니다. 1987년 헌법은 경자 유전으로 되돌아간 헌법이 아니라, 경자유전과 농지 임대 차라는 서로 긴장하는 두 원칙을 한 조문 안에 더욱 선명 하게 병치한 헌법이었습니다. 헌법적 규정의 문제성 한국 헌법의 농지조항이 문제인 이유는 단순히 오래되 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법률 수준에 서 다루어야 할 구체적이고 실정적인 농지제도 원리를 헌 법 수준에 올려놓았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 헌법은 농지규 정이 농지의 소유구조와 정책 방향까지 직접 규율하고 있 습니다. 이 때문에 변화하는 농업 현실에 대응하는 입법의 유연성이 부족해집니다. 헌법과 법률은 본래 역할이 다릅니다. 헌법은 쉽게 바뀌
24 지 않아야 할 기본원칙을 담고, 법률은 사회와 경제의 변 화에 따라 구체적인 제도를 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런데 특정한 농지 소유형태와 경영방식까지 헌법적 원칙 으로 고정하면, 농업구조가 달라져도 입법자는 그 원칙 자 체를 자유롭게 다시 설계하기 어렵습니다. 현실에 맞는 제 도를 만들기 전에 먼저 헌법 문언과의 정합성을 따져야 하 기 때문입니다. 독일이나 일본처럼 헌법에서는 재산권과 공공복리 같은 일반적 원칙만 두고, 구체적인 농지정책은 법률에 맡기는 방식과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합니다. 그런 체계에서는 농 업구조가 변하면 법률을 통해 농지 소유와 이용제도를 다 시 설계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큽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구 체적인 정책원리가 헌법적 규범으로 자리 잡으면서 법률 의 선택범위 자체가 좁아집니다. 현실이 변할수록 법률에 는 예외와 특례가 덧붙고, 그렇게 법률은 원칙을 문구로 그대로 둔 채 현실과 어정쩡한 동거를 이어가게 됩니다. 예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형성된 현실 현실의 농지제도는 경자유전이라는 원칙을 그대로 둔
25 채 그 적용범위를 계속 완화해온 과정이었습니다. 특히 1996년 농지법 시행 이후를 보면 이런 변화가 뚜렷합니 다. 법의 기본원칙만 보면 농지는 농업인이나 농업법인이 소유하고 직접 농업경영에 이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 법제도는 농업과 농촌의 현실이 변할 때마다 비농업인의 소유와 소유·경작의 분리를 인정하는 경우를 하나씩 늘려 왔습니다. 도시민은 주말·체험영농을 목적으로 일정 면적의 농지 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영농여건이 좋지 않은 농지 등 에는 비농업인의 소유가 허용되었습니다. 상속이나 이농 으로 농지를 취득한 비농업인의 소유도 인정됐습니다. 일 정한 경우 농지은행에 위탁해 임대하면 직접 경작하지 않 으면서도 농지를 계속 소유할 수 있습니다. 과거 농지취득 에 붙어 있던 거주지나 거리 제한도 폐지됐고, 농지임대차 가 허용되는 범위 역시 계속 확대되었습니다. 농업경영의 주체 자체도 달라졌습니다. 전통적인 자연 인 자작농만이 아니라 일정한 요건을 갖춘 농업법인이 농 지를 소유하고 경영하는 것도 인정됐습니다. 법의 맨 위에는 여전히 경자유전이라는 원칙이 있습니 다. 그러나 농촌과 농업의 현실이 바뀔 때마다 그 아래에 는 새로운 허용사유가 붙었습니다. 원칙을 폐기하지는 않
26 았지만 현실이 요구하는 만큼 그 적용범위를 조금씩 잘라 낸 것입니다. 그 결과 오늘날 농지법은 하나의 선명한 원 칙이 현실을 지배하는 제도라기보다, 원칙과 수많은 예외 가 함께 작동하는 제도가 되었습니다. 현실에서는 비농업인의 농지소유가 크게 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법조문 안에 예외가 많아졌다는 이야기 에 그치지 않습니다. 실제 농지소유 구조도 이미 크게 달 라져 있습니다. 농지법만 읽으면 농지는 기본적으로 농업인이 소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비농업인이 소유한 농지가 전체 농지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경자유전이라는 말만으로는 현실의 농지소유 구조를 설명 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 것입니다. 대표적인 경로가 상속입니다. 농민이 사망하면 농지는 자녀에게 상속됩니다. 하지만 오늘날 농촌에서 그 자녀가 반드시 농업인인 것은 아닙니다. 상당수는 이미 도시에서 다른 직업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후계농을 확보한 농가는 많지 않은 반면 고령농이 소유한 농지는 매우 많습니다.
27 현재 고령농이 가지고 있는 농지가 앞으로 상속될수록 비 농업인 소유 농지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주말·체험영농도 비농업인의 농지소유가 제도 안으로 들어온 중요한 통로였습니다. 농사를 직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도 일정한 범위에서는 농지를 취득할 수 있게 되면서, 농지소유와 농업경영의 일치는 더욱 느슨해졌습니다. 결국 법의 원칙은 경자유전이지만 실제 소유구조에서는 소유자와 경작자가 다른 경우가 광범위하게 존재합니다. 이것을 단순히 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은 결과라고만 설 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법 자체가 오랫동안 그런 현실을 여 러 예외를 통해 받아들여 왔기 때문입니다. 주말 농장 모습
28 이미 보편화된 농지임대차 농지소유 구조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농지임대차 문제로 이어집니다. 오늘날 농지의 거의 절반이 임대차를 통해 경 작되고 있고, 많은 농가가 다른 사람의 농지를 빌려 농사 를 짓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한국 농업의 일상적인 경 영방식입니다. 따라서 농지의 절반 가까이가 임대차되고 있다는 사실 을 곧바로 “해결해야 할 폐단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로 읽 어서는 안 됩니다. 법의 기본구조만 보면 농지임대차는 원 칙적으로 제한되고 예외적으로 허용됩니다. 그러나 현실 에서는 임대차가 농업경영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 이 되어 있습니다. 두 종류의 임대차 여기에는 성격이 다른 두 종류의 임대차가 있습니다. 하 나는 직접 경작하기 어려워져 발생하는 임대차입니다. 고 령, 질병, 상속 같은 사정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경우의 임 대차는 소유자가 직접 농사짓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발생
29 합니다. 그러나 다른 임대차는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농업생산 성을 높이고 농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임 대차입니다. 여러 사람에게 흩어져 있는 농지를 실제로 경 작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농업인에게 모아주고, 농업경영 규모를 키우기 위해 임대차가 이용됩니다. 이런 임대차는 어쩔 수 없이 용인하는 예외가 아니라, 오히려 농지를 더 잘 이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경자유전이라는 원칙과 현실의 농업 경영 사이의 간격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소유와 경 작의 일치를 강조할수록 임대차는 예외가 되지만, 농지의 효율적 이용과 규모화를 중시하면 임대차는 중요한 정책 수단이 됩니다. 농지를 어떻게 지키고 어떻게 잘 이용할 것인가 그동안 우리 농지제도의 중심에는 경자유전이 있었습니 다. 제도가 가장 먼저 묻는 질문도 자연스럽게 “누가 농지 를 소유하고 있는가”였습니다.
30 그러나 이제는 질문의 순서를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농지를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농업생산 기반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농지 자체가 남아 있어야 합니다. 농업인이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 으로 농업생산 기반이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몇 년 뒤 그 농지가 다른 용도로 전용되어 사라진다면, 경자유전이 지 켜졌다는 사실은 농지보전이라는 관점에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둘째, 농지를 어떻게 잘 이용할 것인가를 물어야 합니 다. 농지를 보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실제 로 농사를 지을 수 있고 농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 는 농업경영체에게 경작할 농지가 돌아가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농지임대차도 단순히 경자유전의 예외가 아닙니다. 농지를 더 잘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적극적인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을 던지면 자연스럽게 농지 이용의 안정 성, 지속성, 집적성으로 문제의식이 이어집니다. 농지를 빌려 농사짓는 사람이 언제 땅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받을 지 모르는 상태라면 안정적인 농업경영이 어렵습니다. 농 지가 ‘잘 이용’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장기 간 안정적으로 농지를 이용할 수 있고, 흩어진 농지를 하
31 나의 경영체에 집적할 수 있다면 소유권을 모두 이전하 지 않아도 농업생산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농지를 ‘잘 이용한다’는 말의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경자유전에서 경자용전으로 결국 농지정책의 무게중심을 소유에서 이용으로 옮길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핵심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이 농지를 소유한 사람이 농업인인가?” 앞으로 더 중요해져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농지가 계속 농업에 이용되고 있는가?”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어야 합니다. “경작자가 이 농지를 안정적으로 이용하고 있는가?” 이런 의미에서 “농지는 농업인이 소유해야 한다”는 경자
32 유전(耕者有田)의 원칙에서, “경작하는 사람이 농지를 이용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경자용전(耕者用田)의 원칙으로 정책 의 무게중심을 옮길 필요가 있습니다. 경자유전은 농지개혁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원칙입니 다. 농지를 소유한 지주와 그 땅에서 농사짓는 소작인이 따로 존재할 때, 농업생산물을 누가 차지하고 농민이 토지 소유자에게 얼마나 종속되는가라는 문제가 중요했습니다. 경자유전은 이런 농업 내부의 소유관계를 바꾸기 위한 강 력한 원칙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농지를 둘러싼 문제는 거기에 머물지 않 습니다. 농업부문과 비농업부문이 한정된 토지를 놓고 경 쟁합니다. 이 땅을 계속 농지로 사용할 것인가, 주택용지 로 바꿀 것인가, 산업단지나 도로로 만들 것인가, 다른 개 발용도로 전환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농지를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만큼이나 농지라는 자원을 농업부문에 얼마나 남겨두고, 그것을 실 제 농사를 짓는 사람이 얼마나 잘 이용할 수 있게 할 것인 가가 중요해집니다. 그래서 경자유전이 과거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에서 농 지소유 문제에 대응한 원칙이었다면, 경자용전은 오늘날 농업부문과 비농업부문 사이에서 농지를 보전하고, 그 농
33 지를 실제 농업경영에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원칙으 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헌법 제121조의 두 항도 새롭게 읽힙니다. 제121조 ①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② 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 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 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 제1항이 경자유전을 명시한 조항이라면, 제2항에는 농 업생산성과 농지의 합리적 이용을 위해 소유와 경작의 분 리를 인정하는 또 하나의 방향이 들어 있습니다. 저는 이 제2항에서 경자용전의 원리를 읽을 수 있다고 봅니다. 농지정책이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이 “누가 소유하나”에서 “얼마나 잘 이용되나”로 바뀌는 것, 그것이 ‘경자유전에서 경자용전으로’입니다.
2 포지티브 농지법에서 네거티브 농지법으로
<제2장 — 포지티브 농지법에서 네거티브 농지법으 로>에서는 경자유전 원칙이 투영된 포지티브 농지 법의 문제들을 지적하고, 경자용전 원칙의 네거티 브 농지법으로의 개정을 제안합니다.
37 어떤 논이 있습니다. 소유자는 이제 나이가 들어 농사를 짓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옆에서 농사를 크게 짓는 농업인 에게 그 논을 빌려주었습니다. 이로써 논은 놀지 않게 됩 니다. 벼는 잘 자랍니다. 농업생산은 계속됩니다. 임차농 입장에서는 경영규모도 조금 더 커졌습니다.01 그런데 이 임대차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논이 농지답게 이용되지 않아서일까요? 아닙니다. 소유자가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아서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한국 농지법의 중요한 특징 하나가 드러 납니다. 현행 농지법은 “이 땅이 제대로 농업에 이용되고 있는가”를 먼저 묻지 않습니다. 경자용전이 제1원칙이 아 니라는 말이죠. “이 땅의 소유자가 직접 농사를 짓고 있는 가”를 먼저 묻습니다. 경자유전이 제1원칙이라는 말이죠. 농지법 제6조의 자기 농업경영 원칙과 제23조의 임대 제한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농지법은 다음의 구조 01 자신의 기존 자작농 규모에 임차농 규모가 더해졌으니까요. 농촌 에는 이렇게 자작농인 동시에 임차농인 분들이 매우 많습니다.
38 를 갖고 있습니다. 자경을 원칙으로 → 임대는 원칙적으로 금지 → 예외적 임대 허용 → 비자경농지 처분 규율 농지법 제6조를 봅시다. 제6조(농지 소유 제한) ①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 ② 제1항에도 불구하고 …… 그리고 농지법 제23조를 봅시다. 농지법 제23조(농지의 임대차 또는 사용대차)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외에는 농 지를 임대하거나 무상사용하게 할 수 없다. 1. 제6조제2항제1호ㆍ제4호부터 제9호까지ㆍ제9호 의2 및 제10호의 규정에 해당하는 농지를 임대하거나 무 상사용하게 하는 경우 2. 제17조에 따른 농지이용증진사업 시행계획에 따라 농지를 임대하거나 무상사용하게 하는 경우
39 3. 질병, 징집, 취학, 선거에 따른 공직취임, 그 밖에 대 통령령으로 정하는 부득이한 사유로 인하여 일시적으로 농업경영에 종사하지 아니하게 된 자가 소유하고 있는 농지를 임대하거나 무상사용하게 하는 경우 4. 60세 이상인 사람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 이 소유하고 있는 농지 중에서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 한 기간이 5년이 넘은 농지를 임대하거나 무상사용하게 하는 경우 5. 제6조제1항에 따라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농지 중 3년 이상 소유한 농지를 주말ㆍ체험영농을 하려는 자에 게 임대하거나 무상사용하게 하는 경우, 또는 주말ㆍ체 험영농을 하려는 자에게 임대하는 것을 업(業)으로 하는 자에게 임대하거나 무상사용하게 하는 경우 5의2. 제6조제1항에 따라 농업법인이 소유하고 있는 농지를 주말ㆍ체험영농을 하려는 자에게 임대하거나 무 상사용하게 하는 경우 6. 제6조제1항에 따라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농지 중 3년 이상 소유한 농지를 한국농어촌공사나 그 밖에 대통 령령으로 정하는 자에게 위탁하여 임대하거나 무상사용 하게 하는 경우 7.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농지를 한국농 어촌공사나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에게 위탁하 여 임대하거나 무상사용하게 하는 경우
40 가. 상속으로 농지를 취득한 사람으로서 농업경영을 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제7조제1항에서 규정한 소유 상 한을 초과하여 소유하고 있는 농지 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간 이상 농업경영을 한 후 이농한 사람이 제7조제2항에서 규정한 소유 상한을 초과하여 소유하고 있는 농지 8. 자경 농지를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정하는 이모작 을 위하여 8개월 이내로 임대하거나 무상사용하게 하는 경우 9.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농지 규모화, 농작물 수급 안 정 등을 목적으로 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자 경 농지를 임대하거나 무상사용하게 하는 경우 ② 제1항에도 불구하고 농지를 임차하거나 사용대차 한 임차인 또는 사용대차인이 그 농지를 정당한 사유 없 이 농업경영에 사용하지 아니할 때에는 시장ㆍ군수ㆍ구 청장이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임대차 또는 사용대차의 종료를 명할 수 있다. 1. 포지티브 농지법 포지티브 방식의 법이 의미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41 “원칙적으로 안 된다. 다만 법이 허용한 것은 된다.” 네거티브 방식은 반대입니다. “원칙적으로 된다. 다만 법이 금지한 것은 안 된다.” 앞에서 농지법 제6조와 23조에서 보았듯이, 현행 농지 임대차 제도는 포지티브 입법입니다. 농지를 빌려주려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사례가 법률이 정해놓은 허용사유 가 운데 어디에 들어가는지 찾아야 합니다. 고령인가, 질병인 가, 상속농지인가,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가, 농지은행을 통하는가, 일정 기간 직접 농사를 지었는가 등등. 농지 소 유자는 아래와 같은 국가의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 애를 써야 합니다. “귀하가 이 농지를 타인에게 임대하는 합법적 이유가 무엇입니까? ” 흥미로운 점은 실제 농지가 얼마나 잘 경작되고 있는지 가 이 질문의 첫 번째 기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논에서 벼가 잘 자라는가를 먼저 물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42 그 논을 빌려준 사람이 빌려줄 합법적 자격을 갖춘 사람인 가를 먼저 따집니다. 임대해도 되는 이유를 농지 소유자가 입증해야 하는 법입니다. 경자유전과 포지티브 규제는 서로 잘 맞는다 경자유전을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농지를 가져야 한다. 여기에서는 소유와 경작의 일치가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상태입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땅을 가지고, 땅을 가진 사람이 자기 땅을 직접 경작합니다. 자작농이 제대로 된 영농입니다. 그렇게 되면 임대는 예외적 영농이 됩니다. 소유자와 경작자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경자유전이라는 철학을 강하게 유지하려면 포지티브 규제가 자연스러운 귀결입니다. 원칙적으로 소유자가 직접 경작해야 합니다. 남에게 빌 려주는 것은 금지합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사정들이 있으므로 예외를 둡니다. 고령이라면 허용하고, 질병이라면 허용하고, 상속이라면 일정 부분 허용하고, 농
43 지은행을 통하면 허용하는 식입니다. 그러니까 포지티브 규제 뒤에는 사실 경자유전이라는 농지철학이 놓여 있습 니다. 예외가 계속 늘어납니다 문제는 현실의 농업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농 촌에서는 소유자와 경작자가 같지 아니한 경우의 비중이 너무 커서 거의 절반에 해당합니다. 고령농이 농사를 그만 두지만 농지는 계속 가지고 있습니다. 도시에 사는 자녀가 농지를 상속받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전업농이나 청년농이 경영규모를 늘리려고 주변 농지를 빌립니다. 농 지를 모두 매입해서 규모를 키우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 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법도 현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고령이면 예외, 상속이면 예외, 질병이면 예외, 일정 기간 자경했으면 예외, 농지은행을 통하면 예외. 이런 식으로 예외가 하나씩 늘어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예외가 계속 늘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44 물론 법은 언제나 예외를 가집니다. 예외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 원칙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외의 범위가 계속 커지고, 현실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농 업행위가 ‘예외조항을 통해서만 합법화’되기 시작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예외조항이 원칙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의 해체를 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때는 물어야 합니다. 예외조항이 원칙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의 해체 를 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시 처음 이야기했던 고령농의 사례를 생각해보겠습니 다. 70세 농민이 있습니다. 이제 농사짓기가 어렵습니다. 바로 옆에는 45세 전업농이 있고, 그 논까지 맡아서 경작 하고 싶어 합니다. 고령농이 논을 빌려줍니다. 논은 계속 경작됩니다. 농업생산은 유지됩니다. 전업농은 경영규모 를 늘립니다. 농지도 황폐해지지 않습니다. 농업이라는 관 점에서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토지이용입니다.
45 그런데 현행법의 논리에서는 우선 이것이 정상형이 아 닙니다. 소유자가 직접 경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다 음에 다시 묻습니다. 고령인가? 고령이다. 합법이다. 이것은 조금 이상한 구조입니다. 현실에서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농업행위를 법이 일단 예외적인 상태로 만든 다음, 다시 여러 예외조항을 이용해 정상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예외조항이 원칙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무너지고 있는 원칙을 관리하는 장 치가 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경자유 전을 유지합니다. 그러나 실제 제도는 점점 더 많은 비자 경 소유와 임대를 받아들입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농지 에서 자경농과 임차농이 반반인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 다. 법의 선언과 농업현실 사이의 간격을 수많은 예외조항 이 메우고 있는 것입니다. 농지은행은 이 모순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문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제도가 농지은행입니다. 한
46 쪽에서는 농지를 남에게 빌려주는 것을 원칙적으로 제한 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서는 농지은행을 통해 농지를 다른 농업인에게 빌려주라고 합니다. 고령농의 농지를 청 년농에게 연결하고, 분산된 농지를 한 농업인에게 모아주 고, 경영규모를 확대하고, 휴경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좋은 임대가 있고 나쁜 임대가 있다고 보는 건가? 농지은행의 존재와 기능을 보면 제도가 임대 자체를 나 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게 분명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농지은행을 설립할 이유가 없죠. 실제로 집적화 규모화 집 중화 등을 촉진하는 임대는 농업구조 개선에 아주 중요하 죠. 중요한 것은 임대를 하느먀 마느냐가 아니라, 그 임대 농림식품축산부 청사 전경
47 를 통해 농지가 어떻게 이용되는가입니다. 그렇다면 또 이어서 질문할 수 있습니다. 소유와 이용의 분리가 농업적으로 유익하고 농지은행 을 통하면 허용될 수 있다면, 왜 그 분리를 원칙적으로 비정상적인 것으로 규정해야 하는가? 한국 농지정책은 이미 ‘소유보다 이용’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오늘날 농지정책에서 자주 나오는 말을 생각해봅시다. 농지 집적, 규모화, 집적화, 청년농에게 농지 공급, 농 지은행, 휴경 방지, 농지 이용 효율화 …… 이 말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 는가보다 농지가 실제로 이용되는가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도 운영은 이미 상당 부분 경자용 4 전 쪽으로 이 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법률의 기본철학은 아직 경자유 4 전에 머물러 있습니다.
48 그 결과 한국 농지제도 안에는 두 개의 문장이 동시에 존재하게 됩니다. (1) 농사는 땅을 가진 사람이 지어야 한다. (2) 농지는 농사를 가장 잘 지을 사람이 이용해야 한다.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문장입니다. (1)은 소유제도 의 원리입니다. (2)는 이용제도의 원리입니다. 경자유전과 경자용전 (1)은 경자유 4 전 원칙이고, (2)는 경자용 4 전 원칙입니다. ‘소유’와 ‘이용’의 대비가 핵심입니다. 경자유전은 소유와 경작의 일치에 관심이 많고 그것을 지향합니다. 불일치를 마지못해 묵인하는 식입니다. 경자용전은 소유와 경작의 일치나 분리에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농지가 실제 농업생 산에 안정적으로 이용되는지를 더 중요하게 봅니다. 이 차이는 농업 규모화 문제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한 농업인이 5헥타르를 경작하고 있는데 20헥타르로 늘 리고 싶다고 해봅시다. 경자유전 형태라면 15헥타르를 더 사는 것이 가장 깨끗합니다. 그런데 농지가가 높을 경우에
49 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임차를 이 용하면 여러 소유자의 농지를 하나의 경영체가 묶어서 이 용할 수 있습니다. 소유는 흩어져도 이용은 집중됩니다. 현대 농업 규모화에 필요한 것은 이용의 집중입니다. 소유자가 열 명이라도 한 농업인이 10헥타르를 모두 임 차한다면 농업생산의 관점에서는 하나의 10헥타르 경영 이 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네거티브 농지법으로 이런 반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아무나 농지를 사고 농지를 임대하게 하자는 건가? 그렇지 않습니다. 경자용전은 단순한 규제 완화와 다릅 니다. 경자용전 체제에서는 농지의 이용 상태를 지금보다 더 강하게 규제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규제를 없애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을 규 제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소유자를 규제할 것인가, 이용을
50 규제할 것인가, 비자경 그 자체를 규제할 것인가, 농지의 불량이용을 규제할 것인가, 임대 자체를 의심할 것인가, 나쁜 임대를 규제할 것인가. 규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 다. 규제의 초점이 이동하는 것입니다. 현행법의 기본문장은 사실상 이렇습니다. “농지를 임대 해서는 안 된다. 다만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임대할 수 있 다.” 네거티브 방식에서는 반대로 됩니다. “농지는 임대할 수 있다. 다만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임대해서는 안 된다.” 그 다음에 금지할 행위를 열거합니다. (1) 불법전용을 준비하며 허위 경작계약을 만드는 행위 (2) 농지를 장기간 방치하는 행위 (3) 명의대여를 이용해 농지취득 규제를 우회하는 행위 (4) 우량농지를 훼손하는 행위 이런 식입니다. 그러면 질문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집니 다. 포지티브 법에서는 국가가 농민에게 묻습니다. “당신 은 왜 이 농지를 빌려주어도 되는 사람입니까?” 네거티브
51 법에서는 농민이 국가에게 묻습니다. “내 농지가 정상적으 로 경작되고 있는데, 왜 이 임대차를 금지해야 합니까?”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질문에 답해야 하는 사람이 농민 에서 국가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포지티브 법은 불법적 현실을 키운다 여기에는 또 하나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포지티브 규 제는 법이 현실과 맞지 않게 될수록 많은 불법을 만들어냅 니다. 사람들이 악해서가 아닙니다. 현실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행위가 허용목록에 들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 다. 농촌에서는 소유자가 있고, 다른 사람이 그 농지를 경 작합니다. 농지는 정상적으로 이용됩니다. 소유자는 임대 료를 받고, 임차인은 농사를 짓습니다. 그런데 그 소유자 가 법률이 정해놓은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면 불법 임 대차가 됩니다. 그 결과 이상한 상황이 생깁니다. 법 집행 을 느슨하게 하면 법과 현실이 점점 멀어집니다. 반대로 어느 날 갑자기 법 집행을 강화하면 오랫동안 아 무 문제 없이 유지되어온 농촌의 토지이용 관계가 한꺼번 에 불법문제가 됩니다.
52 그러면 농민들은 당연히 묻게 됩니다. “어제까지 멀쩡하게 농사를 짓던 논인데 왜 오늘 갑자 기 문제가 된다는 것인가?” 이게 경자용전의 관점을 듬뿍 담고 있는 질문입니다. 실 제로 논에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을 수 있습니다. 벼 도 똑같이 자라고 경작자도 같습니다. 달라진 것은 단지 법 집행의 강도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포지티브 방식이 현실과 괴리될 때 생길 수 있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농지 전수조사도 어떤 철학으로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조사가 된다 이 문제는 농지 전수조사를 생각하면 더욱 선명하게 보 입니다. 경자유전 중심의 전수조사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묻습니다. 소유자가 직접 농사를 짓는가? 남이 농사를 짓고 있다면 그 임대는 합법인가? 소유자가 계속 이 농지를 가질 자격이 있는가?
53 이것은 소유관계의 적법성 조사입니다. 경자용전 중심의 전수조사는 다른 질문을 합니다. 실제 경작자가 누구인가? 농지는 제대로 경작되고 있는가? 현재 경작자가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는가? 주변 농지와 집적할 수 있는가? 휴경이나 황폐화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것은 농지이용의 실태조사입니다. 같은 땅을 조사합니다. 같은 공무원이 현장에 나갑니다. 그런데 무엇을 문제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정 나주시에 위치한 한국농어촌공사 본사
54 책이 됩니다.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로 경자유전에서 경자용전으로 경자유전은 소유관계에서 출발합니다. 경자용전은 이 용관계에서 출발합니다. 경자유전은 “농사짓는 사람이 가 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경자용전 “농사짓는 사람이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전자는 소유와 경작의 일치를 정상으 로 봅니다. 후자는 소유와 경작이 분리될 수 있다는 현실 을 인정하면서, 그 대신 농지가 실제 농업에 이용되는 것 을 강하게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네거티브 농지법은 단순 히 농지 규제를 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규제의 초점을 옮기자는 것입니다. 소유에서 이용으로 자격에서 상태로 비자경 규제에서 불량이용 규제로 임대 금지에서 투기·방치·훼손의 금지로 한국 농업이 고령화되고, 농업인이 줄어들고, 농지의 집
55 적과 규모화가 중요해질수록 이 질문의 변화는 더욱 중요 해질 것입니다. 농지법의 미래는 위와 같은 초점 이동을 요구합니다.
3 국민이 목격한 농지 전수조사의 출발
<제3장 — 국민이 목격한 농지 전수조사의 출발>에 서는 2026년 2월 24일의 국무회의를 중심으로 농 지 전수조사 파동의 출발점을 살펴봅니다. 독자 여 러분은 1장과 2장을 통해서 경자용전이 어떤 원칙 인지 이해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이재명 정부의 구체적 언어와 정책을 한번 들여다보시죠.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들릴 것 같습니다.
59 간단하고 분명한 논리 골격 이재명 대통령의 농지 전수조사 최초 지시는 2026년 2 월 24일 청와대 세종실에서 열린 제6회 국무회의에서 나 왔습니다. 직접적인 계기는 인구감소지역의 인구 변화와 농어촌기본소득의 효과를 논의한 부처 보고였습니다. 그 런데 이날 회의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대통령이 단순히 “농지 전수조사를 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지방의 인구감소를 이야기하던 회의가 어떻게 농지가격 문제로 옮겨가고, 다시 투기성 농지 보유와 농지법 집행 문제를 거쳐 전국적인 조사와 매각명령으로까지 이어졌는 지, 지시의 맥락과 과정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2026년 2월 24일 국무회의 모습
60 논리 연결은 다음과 같이 명료합니다. (1) 귀농·귀촌 비용을 낮춰야 농촌에 사람이 온다. (2) 귀농·귀촌 비용을 낮추려면 농지가를 낮춰야 한다 4 4 4 4 4 4 4 4 4 . (3) 농지의 투기·투자 목적 보유 때문에 농지가가 높다. (4) 농지법상 처분제도 집행해야 이 보유가 중단된다. (5) 농지 이용실태를 조사 4 4 4 4 4 4 4 4 4 해서 처분 집행 4 4 4 4 해야 한다. 요컨대 농촌 인구 문제에서 출발해 농지가격으로, 농지 가격에서 투기성 보유로, 다시 투기성 보유에서 전수조사 와 처분으로 나아가는 흐름입니다. 복잡하게 해석할 필요 가 없죠. 실제 회의 내용을 따라가며 확인해봅시다. 농촌 유입 인구를 늘릴 방법을 논하다가 높은 농지가격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국무회의에서 논의하던 과제는 지방의 인구감소를 어떻게 늦추고 도시 인구의 농촌 유입을 어떻게 늘릴 것 인가였습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2021년 지정된 89개 인구감소지역의 인구가 이후 4년 동안 4.3% 줄었지 만 감소 속도는 완화됐다고 보고했습니다. 송미령 농림축
61 산식품부 장관은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에 선정된 10 개 군의 인구가 선정 전 3개월에는 0.2% 감소했다가 선정 후 3개월에는 4.1% 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장관들은 이 를 기본소득의 인구 유입 효과로 평가했습니다. 다만 이 수치는 회의에서 정책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 며, 장기적인 정착 효과나 기본소득만의 독립적인 인과효 과까지 입증하는 수치는 아니었습니다. 대통령은 농어촌기본소득과 주민들이 태양광 발전 수익 을 나누는 햇빛소득마을을 연계하는 방안에도 관심을 보 였습니다. 농촌으로 옮겨온 사람에게 일회적인 지원금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소득 기반을 만들어주자는 취지였습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인근 군이나 시 사이에서 사람이 이동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수도권에서 농촌으로 이동하는 비율을 높여야 한다 는 의견을 냈습니다. 농지 이야기는 바로 이 대목에서 나왔습니다. 대통령은 농촌으로 사람을 더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귀농·귀촌에 드 는 비용을 낮춰야 한다고 보았고, 그 귀농·귀촌 비용 가운 데 농지가격을 중요한 변수로 집어넣었습니다.
62 귀농·귀촌 비용을 최소화하려면 “땅값을 떨어뜨려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은 매우 직접적이었습니다. 그는 “귀농 비 용과 귀촌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도 연구해야 한다”고 말 한 뒤 “그러려면 땅값을 떨어뜨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 원금을 지급하고 소득을 보조하더라도 땅 자체가 비싸면 진입장벽이 높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별도의 질문이 따라붙습니다. 오늘날의 귀농· 귀촌이 실제로 농지를 직접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농지를 반드시 구입해야만 농촌에 정착하거나 농업에 진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임 차농업과 농지은행, 귀촌과 귀농의 차이까지 생각하면 “귀 농·귀촌 비용을 낮추려면 농지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연결 자체가 별도의 검토를 필요로 합니다.01 01 귀촌은 농사를 짓기 위해 농지를 사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통 계상 귀촌인은 농어촌 밖에서 일정 기간 거주하다 농어촌으로 이주 한 사람을 뜻하며 귀농인은 별도로 분류됩니다. 실제 2025년 귀농· 귀촌 실태조사에서도 귀촌 이유의 상위 항목은 농산업 외 직장 취업 14.3%, 자연환경 13.8%, 정서적 여유 13.3%였습니다. 농지를 구입 하는 것은 귀촌의 필수조건이 아닙니다.
63 그러나 본문에서는 우선 그 문제를 접어두고 대통령의 사고가 실제로 어디까지 이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대통령은 산골의 버려진 듯한 땅도 평당 5만 원이고, 비 싼 곳은 20만∼30만 원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언 급했습니다. 그는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이 많아 농지가격 이 올라가는 경우와 실제 이용 수요와 무관하게 토지라는 이유만으로 가격이 상승하는 경우를 구별하면서 후자를 문제 삼았습니다. 여기서부터 논의의 성격이 바뀝니다. 농촌 정착비용에 관한 이야기가 높은 농지가 형성 원인에 관한 이야기로 넘 어갑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을 투기 귀농의 경우에는 물론 농지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농지의 이용이지 반드시 소유가 아닙니다. 농지를 임차하여 농 업을 시작할 수 있으며, 2025년에는 작물을 재배하는 귀농가구 가 운데 자기 농지 없이 농지를 전부 임차해 경작하는 가구가 33.9%에 달했습니다. 이 비율은 2022년 26.9%에서 2023년 27.7%, 2024년 31.1%로 계속 높아졌습니다. 따라서 귀농과 귀촌을 한데 묶은 뒤 그 ‘필요 비용’의 중요한 항목 으로 농지 매입가격을 놓고, 다시 귀농·귀촌 비용을 낮추기 위해 “땅 값을 떨어뜨려야 한다”고 곧장 연결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귀 촌과 귀농을 뒤섞고, 귀농에서도 농지의 이용과 농지의 소유를 뒤섞 은 문제 설정이라서 귀농·귀촌 현실을 충분히 살핀 출발점이라고 보 기는 어렵습니다.
64 적·투자적 보유에서 찾았습니다. 경제학적 인과 관계 성립 여부에 대한 검토, 분석, 토론이 필요한 영역으로 넘어가 버린 셈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대통령의 단정만 있지 회의 에서 검토, 분석, 토론은 없었습니다. 주택에서 농지로 확장된 부동산관 “투자·투기 목적 보유가 원흉”이라는 진단 이 발언에는 당시 2026년 초에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제 기하던 부동산 정책의 맥락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대 통령은 6차 국무회의 한 달 전인 1월 23일 다주택자 양도 소득세 중과 유예를 연장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뒤 주 택의 투자·투기 목적 보유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이어가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2월 24일 국무회의에서도 수도권 집 값 문제가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간 것 같다고 평하면서 곧 이어 “농지 가격에 대해서도 검토를 한번 해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농지 문제를 농업정책 고유의 문제로만 바라본 것이 아 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농업생산성, 고령농의 은퇴, 영농승계, 농지 임대차, 농지은행 같은 문제보다 먼저 부 동산의 보유와 가격 문제로 접근을 시작했습니다. 주택시
65 장에 적용하고 있던 정책적 시선이 농지로 확장된 셈입니 다. 이 회의에서 드러난 대통령의 인과 설명을 단순화하면 이렇습니다. (1) 사용 목적이 없는 사람이 자산을 계속 보유한다. (2) 미래의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3) 이러한 보유가 공급을 막으면서 가격을 높인다. (4) 투기·투자 목적 보유의 기대이익을 줄여야 한다. (5) 필요하다면 소유 자체를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이 농지에 대해 제시한 설명도 이 구조였습니다. 땅값이 더 오를 것으로 기대하니 농사를 짓지 않은 채 소 유자가 농지를 계속 갖고 있고, 그 결과 실제로 농사를 지 으려는 사람의 진입비용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대통령 은 “농지까지 투기 대상이 돼 버렸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어 세금·규제·금융 수단을 검토해 부동산을 투기나 투자 목적으로 보유하는 데서 얻는 이익에 대한 기대를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이 나라 모든 문제의 원천은 부동 산”이라는 발언도 바로 이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따라서 2월 24일의 농지 전수조사 지시는 별도의 농업 행정 정책으로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높은 자산가격의
66 중요 원인을 비사용자의 소유와 투기적 보유에서 찾고, 그 보유를 억제하거나 처분시키는 방법으로 가격과 이용구조 를 바꾸려는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 방법론이 농지 분야의 4 4 4 4 4 4 4 4 4 4 4 4 4 4 구체적인 행정지시로 연장 4 4 4 4 4 4 4 4 4 4 4 된 사건이었습니다. “농지법을 확실히 집행하자!” “처분한 사례가 없으면 되겠나!” 여기서 논의는 곧바로 농지법의 집행 문제로 이동했습 니다. 대통령은 농사를 짓겠다면서 농지를 취득한 사람이 실제로 영농을 하지 않으면 이행을 요구하고 매각명령까 지 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실제 그렇게 처분한 사례가 거 의 없거나 없다고 들었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법에 처분 장치가 있는데 행정기관이 이를 집행하지 않으니 겉으로 만 농사를 짓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는 비판이었습니다. 이 순간 전수조사의 성격도 사실상 결정되었습니다. 어 떤 농지가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통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조사라기보다는, 농지법 위반 가능성이 있는 농지를 찾아내고 실제 법 집행으로 연결하기 위한 조사였습니다. 이미 문제는 투기적 보유에 대한 법 집행 부진으로 규정돼
67 있었고, 조사는 그 문제를 찾아내는 수단으로 제시됐습니 다. 대통령은 농지의 소유·취득 질서를 설명하는 헌법적 원 칙으로 경자유전을 들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농지 를 소유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는데 각종 법률과 제도 운영 이 이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다는 취지였으며, 그 과정에 서 위헌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대통령의 발언보다 법의 구조가 복잡 합니다. 헌법 제121조 제1항은 경자유전 원칙의 실현과 소작제도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지만, 제2항은 농업생산성 향상과 농지의 합리적 이용을 위해 4 4 4 4 4 4 4 4 4 4 4 또는 불가피한 사정이 4 4 4 4 4 4 4 있는 경우 4 4 4 4 법률이 정하는 조건 아래 농지 임대차와 위탁경 영을 인정합니다. 따라서 소유자가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농지를 곧바로 위헌이나 불법 상태라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실제 농촌에서는 소유와 경작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 4 4 많으며, 그 이유 또한 매우 다양합니다. 고령, 질병, 상속, 가족관계, 농업경영의 규모화, 임차농업, 농지 은행을 통한 임대 등 합법적일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필 요한 비자경의 형태가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이날 회의에 서는 대통령이 제시한 경자유전과 위헌이라는 표현에 대
68 해 이러한 법률적·농업경제적 구분을 즉석에서 제기한 사 람은 없었습니다. 설마 대통령이 그렇게 단정적인 논리와 표현을 사용했 을까 의구심을 가질 사람을 위해서 그 회의의 그 장면을 여기 그대로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하여튼 그런 근본적인 고민도 해야 됩 니다. 이게 지금 우리나라 농지 관리가 너무 엉망이잖아 요. 투기 대상이 돼 버렸잖아요. 어느날 ... 경자유전 원칙 이 헌법에 써져 있죠. (네. 그렇습니다.) 헌법에 경자유전 이라고 써 놓고는 그걸 법률을 만들어 가지고 ... 온갖 방 식으로 전부 다 위헌 행위를 하고 있는 거잖아, 지금. 농지를 팔지 않는 이유 윤호중 장관의 다른 설명 오히려 농촌 현실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설명은 다른 대 목에서 나왔습니다. 송미령 장관은 농지제도 개편을 검토 하고 있으며 농지은행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고 답했 습니다. 윤호중 장관은 80∼90대 고령자까지 농지를 내놓
69 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각종 농업지원 제도를 지적했 습니다. 일정한 지원을 받으려면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으 로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고령농이 농지를 쉽게 포기하 지 못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윤호중 장관의 말을 쉽게 풀 이하면 이렇습니다: 지원이 농지 소유에 붙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원을 받으려면 농업인으로 남아 있어야 하고, 농업인으로 남 는 가장 쉬운 방법이 이미 가진 농지를 계속 경작하는 것 이어서, 결과적으로 고령농이 농지와 노동을 함께 놓지 못하는 유인이 생깁니다. 그래서 농지은행에 땅을 위탁 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듭니다. 이 발언은 매우 중요합니다. 대통령과 장관은 같은 현 상, 즉 고령자까지 농지를 계속 보유하는 현상을 놓고 서 로 다른 원인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설명에서는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중요한 동기였습니다. 농지가 오를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농사 를 짓지 않더라도 땅을 팔지 않는다는 것이죠. 윤호중 장관의 설명에서는 영농활동과 농업인 자격에 연동된 각종 지원제도가 중요한 동기로 등장합니다. 영농
70 에서 완전히 은퇴하면 단순히 노동을 그만두는 데 그치지 않고 농업인으로서 받던 소득과 각종 지원도 함께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미 자기 농지를 가진 고령농에게는 그 농 지를 계속 보유하며 경작하는 것이 농업인으로 남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됩니다. 임대를 주더라도 그 농업 임대차가 공식화되어 있지 않기에 임차농에게 가야 할 지원금을 지 주가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이 제도는 일부 고령농 에게 농지와 노동을 함께 붙잡고 있게 하는 유인을 제공합 니다. 대통령은 땅을 안 파는 문제를 자산보유의 문제로 보았 고, 윤 장관은 부분적으로 농업은퇴의 문제로 보았습니다. 전자는 투기의 문제이고 후자는 생계와 제도의 문제입니 2026년 2월 24일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는 윤호중 행안부 장관
71 다. ‘농지를 내놓지 않는 행동’은 같은 행동입니다. 같은 행 동이지만 원인이 전혀 다릅니다. 원인이 다르면 필요한 정 책도 달라져야 합니다. 투기적 보유라면 보유비용을 높이 거나 처분을 촉진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령농의 노후소득이나 농업지원제도의 구조가 원인이라 면 매각 압력에 앞서서 할 일이 있습니다. 은퇴농의 소득 보장과 농지 이전제도를 먼저 설계해야 합니다. 청와대 공식 브리핑 조사와 처분은 처음부터 연결돼 있었다 청와대가 이날 공개한 공식 브리핑은 대통령의 지시를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농지 관련 세제·규제·금융의 검 토, 필요할 경우 대규모 인력을 동원한 전수조사, 영농 목 적으로 취득한 뒤 방치한 농지에 대한 매각명령 방안의 검 토·보고입니다. 정책브리핑은 대통령의 발언을 “필요하면 인력을 대규모로 조직해 전수조사하고, 농사를 짓는다고 땅을 사서 방치할 경우에는 매각 명령하는 방안도 별도 검 토해 보고하라”는 내용으로 전했습니다. 이 문장에서 전수조사와 매각명령은 한 지시 안에 나란 히 놓여 있습니다. 조사로 농사를 짓겠다며 취득한 뒤 방
72 치한 농지를 찾아내고, 그 결과를 매각명령이라는 기존 법 률상의 처분수단으로 연결하겠다는 것입니다. 앞서 본 회 의의 흐름도 이와 같습니다. 높은 농지가격의 배경에 투기 성 보유가 있다는 진단이 있었고, 처분 규정이 집행되지 않고 있다는 판단이 있었으며, 그 해법으로 조사와 처분이 함께 제시됐습니다. 물론 이날 시행계획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조사 대상 농지의 범위, 조사인력, 예산, 일정, 위반 판단 기준, 법률상 예외의 적용 방식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개별 농지에 대한 실제 처분도 취득 경위, 이용 실태, 임대 사유와 농지법상 예외를 확인하는 별도의 행정절차를 거 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세부 시행계획이 없었다는 것과 정 책의 방향이 없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투기성 농 지 보유를 찾아내고 필요하면 처분까지 연결한다는 방향 이 먼저 제시됐고, 복잡한 예외와 구분의 문제는 후속 행 정설계에 맡겨졌습니다. 이 방향은 이후 그대로 제도가 되었습니다. 5월 7일 국 회를 통과한 개정 농지법은 위반 농지에 대한 처분명령을 지자체의 재량에서 의무로 바꾸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 의 전수조사 시행지침은 기본조사와 심층조사를 거친 뒤 시장·군수·구청장이 처분의무 부과, 처분명령 등 행정처분
73 을 하도록 절차를 짰습니다. 2월 24일의 전수조사는 처음 부터 법 집행을 강화하고 조사 결과를 처분으로 연결하는 것을 염두에 둔 조사였습니다.
4 경자유전의 이름으로 강력한 드라이브
<제4장 — 경자유전의 이름으로 강력한 드라이브> 에서는 2월 국무회의 이후 5월까지 마련된 전수조 사 계획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서, 이 계획이 어 떤 목적과 철학에 근거한 것인지 알아봅니다. 1장 과 2장을 통해 ‘경자용전’의 시각을 알게 되었으니, 이재명 정부의 강력한 경자유전 일변도 발언이 더 욱 도드라져 보일 겁니다.
77 속전속결 2월 24일의 지시는 방향만 있고 세부 설계가 없는 지시 였습니다. 그 설계가 채워진 것이 5월입니다. 그 사이 정부 는 4월 1일 당정협의에서 전국 농지 전수조사 계획을 공식 화했고, 5월 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 검회의에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농지 전수조사 실시계획을 보고했습니다. 그 다음날인 5월 7일 농지법 개 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5월 18일부터 지방자치 단체와 함께 전수조사가 시작됐습니다. 이틀 사이에 세 가지가 겹쳤습니다. (1) 행정부의 조사 계획 보고 (2) 대통령의 추가 지시 (3) 국회를 통과한 법률 이 각각이 무엇을 말했고, 서로 어떻게 맞물리거나 어긋 났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농식품부 보고의 첫 문장
78 송미령 장관의 보고는 이 문장으로 시작했습니다. “농지 투기는 경자유전 원칙을 훼손하고 가격을 왜곡 시켜서 정작 농지가 필요한 사람들의 농지 접근성을 저 하시키고 있습니다.” 1장에서 본 2월 24일의 인과 구조, 즉 투기적 보유가 가 격을 올리고 그 높은 가격이 진입을 막는다는 설명을 주무 부처가 그대로 받아 조사의 명분으로 삼은 것입니다. 장관이 제시한 가격 통계는 이렇습니다. 2025년 농지 실거래가는 평당 17만7천 원으로 2021년 26만9천 원보 다 낮아졌지만, 경기도는 평당 60만7천 원, 전라남도는 8 만2천 원이었습니다. 10아르(a, 약 300평)를 경작한 농업소 득으로 같은 면적의 농지를 사는 데 전국 평균 37년이 걸 리고, 경기도는 134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장관은 이 수 준이 일본과 비슷하고 유럽보다는 상당히 높다고 덧붙였 습니다. 땅값 차이의 원인 미래 전용 개발 가능성의 값
79 이 숫자는 투기적 보유를 입증하는 자료로 제시됐지만, 읽는 방법은 하나가 아닙니다. 같은 농업소득을 기준으로 경기도가 134년이고 전국 평균이 37년이라면, 그 차이는 경기도 농지의 농업생산성이 높아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경기도 농지에는 택지, 도로, 산업단지로 바뀔 전용 개발 가능성의 값이 붙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 OECD 보고서와 한일 농지가격 비교를 통해 다시 확인하 겠지만, 한국 농지가격의 상당 부분은 농업수익이 아니라 미래 전용 가능성에서 나옵니다. 그렇다면 가격을 낮추기 위한 정책 수단은 소유자가 농업인인지를 가려내는 것보 다 전용 기대를 낮추는 쪽으로 가는 게 맞을 겁니다. 장관 이 가져온 숫자는 오히려 이 점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보 고와 토론은 그 방향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집행 공백이라는 사실 보고에서 가장 구체적인 부분은 기존 제도의 집행 실태 였습니다. 농식품부는 매년 농지의 약 10%를 표본으로 실 태조사를 해 왔고, 그 결과 평균 약 1만 건에 처분의무가, 그 가운데 약 1,600건에 처분명령이 부과된다고 했습니
80 다. 처분명령이 지방정부의 재량인 데다 지방정부에서 농 지 업무를 맡은 인력이 0.5명 수준이라 적발도, 이행강제 금 부과 절차도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에 처분 장치가 있어도 집행되지 않았다는 2월의 판 단은 행정부의 수치로 뒷받침됐습니다. 다만 이 수치가 말 하는 것은 집행의 공백이지, 그 공백 속에 있는 농지가 모 두 투기적 보유라는 것은 아닙니다. 조사 설계는 아래와 같이 보고됐습니다. 농지대장상 전체 농지는 약 195만ha(헥타르)이고, 그중 1996년 농지법 시행 이후 취득한 115만ha를 2026년에 먼저 조사하고 그 이전 취득분은 2027년에 조사합니다. 7월까지 행정정보, 위성, 드론, AI를 활용한 기본조사를 하고, 8월부터 12월까지 현장 심층조사를 합니다. 심층 조사 대상으로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수도권 전역, 경매 취득 농지, 농업법인 소유 농지, 외국인 소유 농지, 최근 취득자, 관외 거주자 소유 농지, 공유 취득 농지, 과거 적 발 이력이 있는 농지, 기본조사상 의심농지라는 10대 유 형을 정했고 그 규모를 약 72만 필지로 추정했습니다. 이 ‘의심농지’ 10대 유형을 설정한 것은 농업경영보다 자산보유 동기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입니
81 다. 그 점에서 조사 설계에는 투기와 비투기를 구분하려는 의식이 들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기본조사가 115만ha 전 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 그리고 그 기본조사에서 걸러지 는 기준이 투기 여부가 아니라 농지법 위반 여부라는 점이 었습니다. 장관도 인정한 사실 임차농 비중이 절반에 가까워 장관은 보고에서 스스로 이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전체 농지의 47%가 임차 농지이고, 농가의 45%가 임차농이라 임차농의 걱정이 크다는 것입니다. 대책으로는 7월 말까 지 서면계약과 농지은행 위탁을 유도하고 임차농 보호 신 제20회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는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82 고센터를 운영하겠다고 했습니다. 조사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행정부는 농지의 절반 가까이가 법이 원칙적으로 금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지하는 방식으로 경작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 빠져나가는 빈틈을 막아라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먼저 위성사진과 AI를 언급했습 니다. 여러 해의 위성사진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면 몇 년 째 묵어 있는 필지를 곧바로 뽑아낼 수 있지 않느냐는 질 문이었고, 농식품부는 시스템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적발 비용이 크게 낮아졌다는 것은 사실이고, 과거의 표본조사 와 달리 전수조사가 가능해진 기술적 조건이기도 합니다. 회의의 중심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대통령은 처분의무 가 부과되더라도 일정 기간 경작하면 소멸되는 구조를 문 제 삼았습니다. 적발된 뒤 두 해를 놀리다가 세 번째 해에 한 번 농사를 지으면 처분의무가 소멸하고, 몇 년 뒤 다시 적발되면 같은 방식으로 또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분 의무가 발생했다가 소멸하면은 다음에 또 걸리 면 처분 의무가 다시 발생하고 3년 이내에 한 번이라도
83 농사를 지으면 처분 의무가 또 소멸하고 이렇게 되는 거 같아요. 그게 있으나 마나 한 법 조항이야.” 이 지적에 대해 장관은 “그렇게까지 정교한 위법은 아직 사례를 본 적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대통령은 제도를 악 용하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다고 했고, 대안으로 적발 뒤 다음 농사철에 자경하지 않으면 즉시 처 분 대상이 되도록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법의 빈틈이 아니라 행정 집행의 빈틈 여기서 법 조문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말 한 구조는 농지법 제12조의 처분명령 유예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2005년 개정에서 처분의무 기간 내에 처분하지 않 은 소유자가 해당 농지를 자기 농업경영에 이용하는 경우 3년간 처분명령을 직권으로 유예할 수 있도록 하고, 유예 기간 중 그 요건에 해당하지 않게 되면 지체 없이 유예한 처분명령을 하도록 하며, 처분명령 없이 유예기간이 지나 면 그 처분의무가 소멸한 것으로 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즉 조문상으로는 3년 가운데 한 번 경작하는 것으로 충분 하지 않고, 유예기간 동안 계속 자기 농업경영에 이용해야
84 합니다. 이용을 중단하면 곧바로 처분명령을 해야 한다는 규정도 이미 있었습니다. 그러니 대통령이 말한 빈틈은 조 문의 빈틈이라기보다 유예기간 중 이용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집행의 빈틈입니다. 다음날 통과된 개정법은 바로 이 부분을 다뤘습니다. 개 정된 제12조제4항은 시장·군수·구청장이 처분명령을 유예 받은 소유자가 유예기간에 요건에 해당하는지를 매년 조 사해 다음 연도 3월 31일까지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대통 령이 회의에서 새로 제기한 것처럼 보인 문제는 국회에 올 라가 있던 개정안이 이미 다루고 있던 문제였고, 장관도 그 부분을 이번에 강화해 반영했다고 답했습니다. 대통령은 이 조항의 기원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법률 을 희한하게 만들어 놓은 거예요. 사실상 이 만들면서 그 땅 투기하는 국회의원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많지.” 이 발 언에는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유예 제도는 처분의 무가 생긴 농지라도 소유자가 다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 처분을 강요하기보다 이용을 회복시키는 쪽을 택한 장치 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농지가 농업에 다시 쓰이도록 하 는 것을 목표로 본다면 유예 제도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 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 이 조항은 소유자가 빠져나가는 구멍으로만 다뤄졌습니다.
85 반드시 처분 실행 대통령의 추가 지시는 모두 한 방향을 향했습니다. 처분 명령이 나오면 반드시 처분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행강제금에 대해서는 단체장이 미운 사람에게만 부과 하고 좋은 사람에게는 부과하지 않을 수 있는 구조를 문제 삼으며, 1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증액되게 하라고 했습니 다. 신고포상금은 현재 1인당 최고 150만 원인데, 이행강 제금으로 실제 환수된 금액의 20~30%를 주는 방식을 제 안했습니다. 매각명령에 대해서는, 1천만 원짜리 땅을 5천 만 원에 내놓으면 팔리지 않으니 명령을 따른 것처럼 보여 도 실효가 없다고 지적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감정가의 80~90% 수준으로 강제 매수하도록 규정하라고 했습니다. 농식품부가 농지은행은 공시지가로 매입하고 공시지가는 실거래가의 80% 정도라고 하자, 수도권은 공시지가와 실 거래가 차이가 크니 감정평가를 기준으로 하라고 정리했 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내년부터 적용할 수 있게 하 라고 했습니다. 강력 추진의 근거는 헌법
86 대통령은 이 조치들에 대한 반발도 예상했습니다. “무슨 사회주의자냐 빨갱이냐 그럴 가능성이 많은데 법은 지키 려고 서로 합의해 놓은 거니까 지켜야죠.” 대통령이 예상 한 반발은 이념적 반발이었습니다. 법이 요구하는 것과 농 촌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농지 이용이 크게 다를 때 생기 는 반발, 즉 현실과 법의 괴리에서 나오는 반발은 이 예상 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판단의 근거는 헌법이었습니 다. 대통령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실제로 농사짓지 않는 사람은 농지를 갖지 말라는 게 헌법과 농지법의 명확한 취지 아닙니까?” 이에 대해 장관은 “그렇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헌법 조문이 반드시 그렇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1장 에서 확인했듯이 헌법 제121조는 제1항에서 경자유전의 달성을 국가의 노력 의무로 두고, 제2항에서 농업생산성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 이용, 불가피한 사정에 의한 임대차 와 위탁경영을 법률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2월에 “위헌 행 위”라는 표현이 나왔을 때처럼, 5월에도 이 해석에 대해 회의 자리에서 다른 의견을 낸 사람은 없었습니다.
87 법과 다른, 경자용전의 현실 질서 이날 회의에서 농촌의 실제 모습이 드러난 대목이 한 군 데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직불금을 둘러싼 지주와 임차농 의 갈등이 요즘은 조용한데 문제가 해결된 것이냐 은폐된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경기도의 한 마을에 갔더니 다 임차농인데 “우리가 그 얘기를 어떻게 합니까”라고 하 더라는 경험을 전했습니다. 장관은 지주와의 관계도 있고, 그것이 드러나면 임차농이 다음에 농사지을 기회를 박탈 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대통령은 마을 이장이 누가 주인이고 누가 농사짓는지 다 알고 있는데도 적당히 넘어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 대화에는 뒤에서 다룰 경자용전(農地農用)의 현실 질 서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소유자와 경작자가 다르고, 마을은 그 사실을 알고, 그 관계 위에서 농사가 계속 지어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장관의 설명에는 그 관계를 드러내 면 실제로 농사짓는 사람이 경작지를 잃는다는 인과까지 들어 있었습니다. 직불금과 전수조사가 만났을 때
88 그러나 회의는 이 장면을 다르게 취급했습니다. 은폐와 봐주기의 문제로 받아들였습니다. 결론은 신고포상 제도 를 강화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드러나면 임차농이 땅을 잃 는다는 사실과 드러내는 사람에게 포상금을 더 주자는 결 론이 같은 대화 안에 나란히 놓였습니다. 대통령이 먼저 꺼낸 직불금 갈등은 이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공익직불금이 실제 경작하는 농업인에게 지급되는 구조에서 신고하지 않은 임대차의 지주가 자경 한다고 신고해 직불금을 받는 문제가 발생해 왔습니다. 이 런 직불금 문제와 함께, 임차농은 임대차 사실을 드러낼 경우 소유자와의 관계가 깨지고 다음 경작 기회를 잃을 위 험도 감수해야 합니다. 또 1장에서 본 윤호중 장관의 설명 처럼 직불금을 비롯한 지원은 농업인 자격에 붙어 있어서, 고령 소유자가 농지와 농업인 지위를 함께 유지하려는 유 인을 만듭니다. 농지은행 위탁으로 임대관계를 정상화하 면 해당 농지에 대한 자경자 지위와 그에 연동된 일부 지 원·자격을 잃을 수 있으므로, 소유자에게는 위탁보다 임차 관계를 종료하고 직접 경작을 택할 유인이 생길 수 있습니 다. 전수조사는 숨어 있던 임대차를 드러내 소유자에게 처 분 위험을 의식하게 만듭니다. 반면 직불금과 각종 농업인
89 지원은 농지를 합법적으로 임대·위탁하는 선택보다 직접 경작 상태를 유지하는 쪽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유인을 남 겨둡니다. 두 제도가 결합하면 소유자가 임차관계를 정리 하고 농지를 회수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커집 니다. 그 충격은 결국 임차농에게 돌아갑니다. 그런데 회의에서는 이 유인구조 자체를 따져 묻는 논의 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임대차를 드러냈을 때 실제 경작 자가 농지를 잃을 수 있다는 장관의 설명이 나왔지만, 정 책적 결론은 관계의 안정화보다 적발과 신고를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갔습니다. 실제로 뒤이어 추진된 농지법 개정 에는 불법 임대차를 신고포상금 지급대상에 추가하는 내 용이 포함됐습니다. 5월 7일, 국회를 통과한 법 다음날 통과된 개정법은 국무회의 전부터 국회에 올라 가 있던 법안이었습니다. 장관이 보고에서 “이미 개정안에 반영이 된 것”이라고 말한 내용들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 다. 이 법은 6월 16일 법률 제21798호로 공포됐고, 조항 에 따라 시행일이 다릅니다.
90 처분 쪽 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1조제1항의 “명할 수 있다”를 “명하여야 한다”로 바꿔 처분명령을 의무화했 습니다. 제10조제3항을 신설해 처분 상대방에서 세대원,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소유자가 대표인 법인, 법인 소유자 의 특수관계인을 제외했습니다. 시장·군수·구청장이 처분 명령을 하지 않으면 농식품부 장관이나 시·도지사가 기간 을 정해 명령하도록 하고, 그래도 하지 않으면 직접 처분 명령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주체 에도 장관과 시·도지사를 추가했습니다. 토지거래허가구 역 안의 농지는 처분의무 단계를 거치지 않고 처분명령 대 상이 되게 했습니다. 농지조사원을 채용해 토지에 출입할 수 있게 하고 비밀유지 의무와 벌칙을 두었으며, 소유 농 지를 위법하게 임대한 자를 신고포상금 대상에 추가했습 니다. 같은 법에는 방향이 다른 조항도 있었습니다. 하나는 상 속인과 이농자의 1만㎡ 소유 상한을 없애는 대신, 직접 농 업경영을 하지 않는 농지는 한국농어촌공사 등에 위탁해 임대하도록 한 조항입니다. 소유 자체를 금지하기보다 농 업적 이용을 확보하는 방식입니다. 또 하나는 처분명령을 받은 소유자가 매수를 청구하면 한국농어촌공사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예산 범위에서
91 매수하도록 한 조항입니다. 이것은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농지에 공적 출구를 마련한 것입니다. 시행일이 다르다 그런데 시행일을 보면 처분 강화와 소유·경작 분리의 제 도화가 서로 다른 속도로 추진됐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처 분명령 의무화를 비롯한 대부분의 집행 강화 조항은 2026 년 8월 28일부터 시행되고, 조사원·출입·비밀유지 관련 조 항은 공포한 날부터 시행됩니다. 반면 상속·이농 농지의 소유상한을 없애고 농지은행 위탁임대를 의무화하는 조항 은 공포 후 2년이 지난 뒤 4 4 4 4 4 4 에야 시행됩니다. 즉 비자경 농지에 대한 조사와 처분을 강화하는 장치는 전수조사와 거의 동시에 가동됐지만, 소유와 경작의 분리 를 제도적으로 받아들이는 장치는 2028년에야 작동 4444 4 4 4 4 4 하기 시작합니다. 5월의 드라이브: 경자유전이 먼저 경자용전은 나중에
92 정리하면 5월에 확정된 것은 이렇습니다. 전수조사는 투기적 보유를 가려내는 조사라고 설명됐지만, 실제 조사 기준은 농지법 위반 여부였습니다. 농지법은 임대차를 원 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었지만, 행정부는 이미 전체 농지의 47%가 임차농지라는 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처분명령 은 재량에서 의무로 바뀌었고, 집행을 생략하기 어렵게 만 드는 장치가 강화됐습니다. 대통령은 여기에 더해 다음 해 부터 더 강한 처분수단을 적용하는 방안까지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반면 소유와 경작의 분리를 제도 안으로 받 아들이는 경자용전적 장치는 2년 뒤로 미뤄졌습니다. 네 필지 가운데 한 필지 두 달 반 뒤 기본조사를 마쳤을 때 위반 의심 농지는 네 필지 가운데 한 필지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9월에 정부 와 여당은 명백한 투기와 농촌의 관행적 위반을 구분하고, 관행적 임대차는 농지은행 위탁 등을 통해 정상화하면서 처분을 유예하는 보완책을 내놓았습니다. 일부 조치는 특 별조치법과 농지법 개정을 전제로 했습니다. 5월에는 처 분 집행을 강화했고, 9월에는 그 집행이 농촌 현실을 흔들
93 지 않도록 정상화와 유예의 통로를 추가하기 시작한 것입 니다. 그 사이 농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다음 장 에서 살펴보겠습니다.
5 흔들리는 농심
<제5장 — 흔들리는 농심>에서는 이재명 정부의 갑 작스러운 농지 전수조사가 농촌 지역에 실제로 어 떤 영향을 미쳤고, 농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살펴봅니다.
97 불안 경남 의령군 궁류면에 350평짜리 농지를 가진 일흔세 살 김씨는 군에 땅을 그냥 가져가라는 민원을 넣었습니다. 경사가 심하고 농기계도 들어가지 않아 몇 해째 묵혀둔 땅 이었습니다. 취득가보다 싸게 내놓아도, 공시지가보다 낮 춰도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농지 전수조사가 시작 됐고, 불법 휴경으로 판단되면 처분명령과 이행강제금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결국 그는 국 민신문고에 땅을 무상으로 넘기겠다는 뜻까지 밝혔습니 다. “팔리지도, 국가가 가져가지도 않는 땅에서 농사짓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냐”는 것이 그의 항변이었습니다. 실제 농지법은 휴경 사실이 발견됐다고 곧바로 이행강 제금을 부과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조사와 확인, 처분의무 부과, 처분명령 등의 절차가 먼저 있습니다. 그런데 김씨 에게 중요한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처분의 정확한 법률 절차가 아니었습니다. 자기 소유의 땅이 어느 날부터 ‘문 제 있는 농지’로 판정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었습니다. 처 분이 내려지기 전의 불안이 먼저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습 니다.
98 네 가지 불안 2026년 농지 전수조사를 둘러싸고 농촌에서 나타난 민 심 동요 현상을 들여다보면, 대체로 네 갈래의 불안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⑴ 지주의 소유 불안 이 땅을 계속 가지고 있어도 되는가? ⑵ 지주의 처분 불안 팔려고 하면 팔 수는 있는가? ⑶ 임차농의 경작권 불안 이 땅에서 더 농사 짓지 못하는 것 아닌가? ⑷ 지주의 박탈 불안 정부가 결국 내 땅을 빼앗으려는 것 아닌가? 내 땅을 지금처럼 가지고 있어도 되는가 가장 넓게 퍼진 것은 소유 상태 그 자체에 대한 스트레 스였습니다. 농촌의 농지 소유와 이용 관계는 교과서처럼
99 깔끔하고 분명하게 정돈되어 있지 않습니다. 평생 농사를 짓다가 몸이 쇠약해져 옆 논을 가진 농민에게 맡긴 사람도 있고, 도시로 나간 자녀가 부모의 논을 상속받아 마을 사 람에게 계속 경작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계약서 없이 쌀 몇 가마니를 주고받으며 수십 년 이어온 도지(賭地)도 있 습니다. 농민끼리 서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논을 바꾸어 경 작하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 마을 여러 집의 농지를 모아 농사를 짓는 일도 있습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농지 투기와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모든 행위들이 현행 농지법에서 정한 규정들 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농지 전수조사가 그 틈 사이로 들어왔습니다. 정부가 조 사한 것은 단순히 ‘지금 이 땅에서 농사가 지어지고 있는 가’만이 아니었습니다. 소유관계, 실제 경작자, 임대차, 휴 경, 시설 설치와 전용 여부까지 확인했습니다. 7월 말 기본 조사에서는 조사 대상 1,013만 필지 가운데 284만 필지, 27%가 각종 농지법 위반 ‘의심’ 농지로 분류됐습니다. 아 직 위법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농촌에서는 네 필지 가 운데 하나꼴로 일단 확인 대상이 된 셈입니다. 정말 엄청 난 비율입니다. 대통령의 지시를 수행한 행정 당국 스스로 당황했을 수 있는 숫자입니다.
100 그러자 농민의 관심은 자연히 자기 땅으로 향했습니다. 나는 평생 농사를 지었는데 이제 늙어서 남에게 맡겼다. 괜찮을까? 아버지가 남긴 논을 내가 가지고 있다. 괜찮을 까? 계약서를 쓰지 않고 이웃에게 맡긴 지 20년이 됐다. 괜찮을까? 몇 년째 산비탈 밭을 묵혀 두고 있다. 괜찮을 까? 이런 여러 경우들에 대해서 법전에 상세히 잘 규정해 놓 았다 하더라도, 그리고 행정 당국이 세심하고 면밀한 처분 및 조치 지침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농지 소유자들이 “내 땅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확신하기는 힘듭니다. 농지 전수조사가 시작된 이래 농지는 단순한 재산이 아 니라, 확인 받아야 하는 재산, 설명해야 하는 재산, 경우에 따라서는 정리해야 할지도 모르는 재산이 됩니다. 이것이 전수조사가 농촌에 만들어낸 첫 번째 스트레스였습니다. 팔려고 하면 팔 수는 있는가 농지를 처분해야 할 가능성을 걱정하기 시작했지만 정 작 농촌에는 땅을 살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경북 영양에서는 타지에 사는 60대 소유자가 25년 전
101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9,900㎡의 농지를 팔려고 내놓았지 만 매수자를 구하지 못했다는 사례가 보도됐습니다. 그동 안 이웃에게 농사를 맡겨왔던 땅이었습니다. 의성의 한 70 대 농민은 평생 농사를 짓다 몸이 따라주지 않아 이웃에게 맡겼는데 자신 같은 사람까지 투기꾼 취급을 받는 것 같다 고 하소연하면서 농촌 현실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농사 지을 사람도, 땅을 살 사람도 없다.” 농지가가 전국적으로 전수조사 때문에 폭락했다고 하는 말이 떠돌지만, 꼭 그렇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정 부가 발표한 전국 거래 통계를 보면 거래가 일제히 멈췄다 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전국 평균 통계와 한 농 민이 가진 경사지 300평, 산골 논 3천평을 실제로 팔 수 있느냐는 문제는 다릅니다. 농민이 두려워한 것은 전국 농 지가격지수가 아니었습니다. 국가는 나에게 이 땅의 상태를 정리하라고 하고 시장 에서는 아무도 이 땅을 사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의령의 김씨가 급기야 “그냥 가져가라”고 말한 이유가
102 여기에 있습니다. 소유권을 지키고 싶어서가 아니라 오히 려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이 되는 역설적인 상 황입니다. 팔 수도 없고, 농사짓기도 어렵고, 그대로 두면 문제가 될까 걱정되는 땅. 이 단계에 이르면 소유권은 자 산인 동시에 행정적 위험이 됩니다. 지주의 불안이 임차농의 불안으로 농지를 가진 사람을 겨냥한 조사의 충격이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넘어갔습니다. 경기 안성에서 40년 넘게 농사짓던 이관호씨는 자신이 경작하는 농지의 약 70%가 임차농지라고 했습니다. 전수 조사가 진행되던 가운데 한 소유자가 직접 농사를 짓겠다 며 땅을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그는 약 1,200평을 반환했 습니다. 국가가 그 농지를 몰수한 것도 아니고 임차농에게 나가 라고 명령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정책의 충격은 이미 현실의 경작관계를 바꾸었습니다. 소유자가 아래와 같이 생각한 것입니다.
103 괜히 남에게 맡겼다가 문제가 생기느니 내가 직접 짓 는 편이 안전하지 않을까? 이리하여 그 땅에서 오랫동안 농사짓던 사람이 경작권 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것은 농지 전수조사를 둘러싼 논 란에서 특히 중요한 장면입니다. 농지정책의 명분은 실경 작자를 보호하고 투기를 막는 것이었지만, 소유자의 자기 방어 행동이 커지면 반대로 실경작자의 경작지가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했습니다. 9월 21일 발표한 후 속대책에서 기존 임차농이 계속 경작할 수 있도록 관행적 임대차를 농지은행 위탁 방식으로 정상화하고, 임차인 퇴 거 등 혼란에 대비해 특별정비기간을 11월 15일까지 연장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미등기 상속농지, 공유농지, 농민끼 리 바꾸어 경작하는 농지까지 별도의 정상화 경로를 만들 겠다고 했습니다. 이 보완책이 다루고 있는 문제들을 거꾸로 읽어보면, 농 촌에서 무엇이 흔들리고 있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소유자의 불안이 임대차를 흔들고, 임대차의 불안이 실 제 경작자의 내년 농사를 흔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104 결국 내 땅을 빼앗기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 여러 불안의 밑바닥에는 좀 더 강한 감정이 있었습니다. 농지는 아파트나 주식처럼 가격만으로 인식 되는 재산이 아닙니다. 특히 고령 농민에게 논과 밭은 평 생 일한 장소이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며, 자식에게 남길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자산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 서 농지 전수조사가 소유관계를 겨냥하는 순간, 행정의 언 어와 농민의 언어 사이에는 큰 차이가 생깁니다. 행정은 아래와 같은 단어들을 쏟아냅니다. 일선 공무원 들이 농심을 자극할까 우려하여 직접적 언급을 자제해도, 대통령이 미디어를 통해서 이 단어들을 쏟아냅니다. 전수조사 처분의무 매각명령 행정집행 불법 임대차 무단휴경 강제매각 이행강제금
105 이번 전국적 농지 전수조사를 둘러싼 행정 언어들이 유 난히 위압적이고 강제적인 어조를 띠고 있습니다. 2월 24일 대통령은 농지가 투기 대상이 되어 가격이 올 랐다며 대규모 인력을 조직해 전수조사하고, 농사를 짓겠 다고 사놓은 뒤 방치한 농지는 ‘매각 명령’을 하는 방안까 지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5월 국회를 통과한 농지법 개정에서는 농지법 위반 농 지에 대한 처분명령을 지방정부의 재량에서 의무규정으로 강화했습니다. 정부 보도자료 역시 이를 “예외 없는 행정 조치”를 위한 개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요건과 절차가 붙어 있더라도 이런 말들은 행정적으로는 각각 일정한 요건과 절차가 붙어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자기 땅이 정확히 어느 요건 에 해당하는지 알지 못하는 농민에게는 하나의 훨씬 단순 한 메시지로 들릴 수 있습니다. 더구나 농사짓기도 바쁜 사람들이 갑자기 자신의 소유·임대 상태가 어느 요건에 해 당하는지 스스로 점검하고 행정기관에 문의해야 하는 상 황 자체가 난데없습니다. 행정기관에게 ‘강제 매각’은 여
106 러 요건을 충족하고 수차례 절차를 거친 뒤에나 가능한 최 종 처분의 명칭입니다. 그러나 농민에게 ‘강제 매각’은 그 절차 전체가 아니라 결과의 단호함과 엄정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행정은 조건문으로 말하지만 사람은 그 조건보 다 결론의 강도에 먼저 움찔합니다. “기초조사”라는 말이 농심을 가라앉히지 못한 이유 9월 18일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런 불안을 직접 언 급했습니다. 고령의 아버지가 농사를 못 짓는다고 강제로 팔라는 것이냐는 항의에 대해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정부가 하는 일은 투기 농지를 가려내고 휴경· 임대차 등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기초 조사”라고 설명 했습니다. 동시에 ‘당신도 농사를 안 지으니 강제매각 대 상’이라는 식으로 투기 세력이 자기편을 늘리고 있다고 주 장했습니다. 고령으로 농사를 못 짓는다는 이유만으로 강제매각 대 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현행 농지법은 일정 요건을 갖춘 60세 이상 농업인이 5년 이상 자경한 농지는 임대할 수 있 도록 하고 있고, 질병 등 부득이한 사유에 따른 임대도 허
107 용합니다. 또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농지은행에 위탁해 임 대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따라서 고령농이 합법적인 임대· 위탁 요건에 해당하면 소유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임대 허용의 예외에 본인이 해당되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을까요? 중요한 것 은 수많은 농민들의 머릿속에 ‘강제 매각’에 대한 걱정을 키웠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그 조치가 실제로 나에게 내려 지지 않더라도, ‘강제 매각’이라는 살벌한 처분의 가능성 이 내 주변에서 반복해서 거론된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을 긴장시킵니다. 더구나 대통령의 2월 발언과 5월의 정책 추진 과정뿐 아 니라, 농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9월 18일 기자회견에서도 다시 ‘강제 매각’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대통령은 ‘당신 은 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하지만, 농민의 귀에는 동시에 ‘누군가는 강제 매각 대상이 된다’는 사실도 다시 확인됩 니다. 그러니 안심을 위한 설명이 오히려 불안의 핵심어를 반복해서 환기하는 역설이 생깁니다. 9월 21일의 보완책은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농지은행 위탁을 통한 처분의무 유예, 관행적 임대차의 정상화, 미 등기 상속농지와 공유농지 처리, 맹지와 경사지 관리, 임 차농 보호 등이 포함됐습니다. 정부 스스로도 그 발표문에
108 서 조사 취지에 대한 설명과 홍보가 부족해 현장에서 불안 과 우려가 있었다고 인정했습니다. 이 대책들의 내용은 역설적으로 지난 몇 달간 농민들이 무엇 때문에 불안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정부가 농민들을 갑자기 ‘소유권’과 관련한 불안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사에 반해 땅을 내놓아 야 할지도 모른다는 강제적 박탈의 이미지가 그 불안의 끝 에서 일렁거립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공산당 같은 정부 가 내 재산, 내 땅을 빼앗으려 한다’는 괴소문과 악선동이 파고들 공간이 생겼습니다. 괴담이 사실이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이미 그것을 믿을 준비가 될 만큼 불안해져 있었 던 것입니다.
6 공익직불금 제도와 농지제도: 상호 관계와 영향
<제6장 — 공익직불금 제도와 농지제도: 상호 관계 와 영향>에서는 공익직불금이 농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농지제도 운용에 또한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역으로 농지제도는 공익직불금 제도에 어떤 영 향을 미치는지 살펴봅니다.
111 통장에서 끝나지 않는 돈 입금에서 그치는 일이 아니다 공익직불금은 농업인의 소득을 보전하고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그러나 이 돈 은 농민의 통장에 입금되는 것으로 그 작용이 끝나지 않습 니다. 누가 농지를 빌려주고, 누가 빌려 쓰며, 임대료가 얼 마로 결정되는지에 영향을 줍니다. 나이 든 농민이 농사를 계속할 것인지, 다른 농업인에게 경작을 맡길 것인지에도 영향을 줍니다. 거꾸로 농지를 소유하고 임대하는 데 적 용되는 법과 세금, 등록 절차는 직불금이 실제로 누구에게 돌아갈지를 좌우합니다. 공익직불금 제도와 농지제도는 서로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농촌 현장에서는 하나의 선택을 둘러싸고 함께 작동합니다. 논 한 필지를 두고 두 사람이 하는 계산 이를테면 작은 논을 가진 고령 농민이 있고, 그 논을 빌 려 경작하고 싶은 이웃 농민이 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112 고령 농민은 땅을 팔 생각은 없지만 힘든 농사에서는 조금 씩 물러나고 싶습니다. 이웃 농민은 농기계와 경험이 있지 만 추가 농지를 매입할 자금은 부족합니다. 두 사람이 안 정적으로 임대차계약을 맺으면 소유자는 재산을 유지하 면서 임대료를 받고, 경작자는 생산기반을 넓힐 수 있습니 다. 그런데 임대하는 순간 어떤 지원이 끊기고, 계약서를 쓰면 어떤 세제상 불이익이 생길 수 있으며, 임대 자체가 허용되는지도 복잡하게 따져야 한다면 두 사람의 선택은 달라집니다. 이 관계에 농지조사와 처분에 대한 압박까지 더해질 때에는, 제도 하나씩을 따로 읽어서는 예상하기 어 려운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1. 제도의 설계도 두 개의 목적, 하나의 제도 우선 공익직불금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20년 개편은 쌀 중심으로 운영되던
113 직불제의 편중을 완화하고, 영세한 농가의 소득을 더 두텁 게 보전하며, 환경 보전과 농촌 유지에 대한 농업인의 책 임을 강화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기존 쌀·밭·조건불리지역 직불을 기본형으로 통합하고, 소농직불금과 면적직불금을 두었습니다. 친환경농업이나 경관 보전 등을 지원하는 선 택형도 운영합니다. 따라서 공익직불제에는 소득 지원과 공익적 활동의 유도라는 목적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130만 원의 문턱 소농직불금은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농가에 연 130만 원을 지급합니다. 이 금액은 2024년에 120만 원에서 인상 되었습니다. 원칙적인 면적 기준은 농가 내 지급대상 농지 의 합계가 0.5헥타르 이하, 약 1,500평 이하라는 것이지 만, 면적만 작다고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농가 구성 원의 소유면적과 소득, 영농·거주기간 등을 함께 심사합니 다. 다른 요건을 충족하고 면적직불금이 소농직불금보다 적은 경우에는 0.5헥타르를 넘더라도 소농직불금을 선택 할 수 있는 예외도 있습니다. 작은 농가를 지원하되, 명의 만 여러 개로 나누어 지원금을 늘리는 일을 억제하려는 설 계입니다.
114 넓을수록 얇아지는 단가 면적직불금은 지급대상 면적에 따라 계산하되, 면적이 커질수록 추가 면적에 적용되는 단가가 낮아집니다. 중요 한 것은 전체 농지에 가장 낮은 단가를 한꺼번에 적용하 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구간마다 계산한 금액을 합 산하므로 경작면적이 늘면 직불금 총액도 늘지만, 추가 면 적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적어집니다. 이 역시 대규모 경작자에게 지원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을 완화하려는 장치입니다. 다만 경작 규모와 토지 소유 규모는 서로 다 르기 때문에, 이 지급구조가 실제로 누구를 얼마나 돕는지 는 농지의 소유·임차 관계까지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2. 땅 주인과 농사짓는 사람이 다를 때 소유가 아니라 경작에 주는 돈 여기서 가장 먼저 구별해야 할 것이 소유자의 자경과 농
115 업인의 실경작입니다. 공익직불금은 자기 땅을 가진 농민 에게만 주는 돈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농지를 적법하게 빌려 실제로 농사를 짓는 농민도 요건을 갖추면 받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땅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받을 수는 없습니다. 제도의 지급 원칙 자체는 소유권보다 실제 농업활동을 봅니다. 그러므로 공익직불제를 곧바로 ‘농지 소유자 지원제도’라고 부르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실경작자를 지원하려는 이 제도가 다른 법과 행정절차를 통과하면서 소유자의 선택과 협상력에 종속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원칙은 자경, 현실은 예외 한국의 농지법은 농지를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할 사 람이 소유한다는 원칙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임대차 는 법이 정한 사유에 따라 허용합니다. 그러나 모든 비자 경 소유가 불법인 것도 아니고, 1996년 이후 취득한 농지 는 개인 간 임대가 전부 금지되는 것도 아닙니다. 상속, 일 정 요건을 갖춘 고령 농업인, 질병 등 부득이한 사유, 농지 은행을 통한 위탁 등 여러 예외가 있습니다. 취득 시점과 경위, 소유자의 사정에 따라 같은 모습의 임대차라도 법적
116 지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농지의 절반은 빌린 땅 이러한 제도 아래에서도 임대차는 이미 농업의 중요한 기반입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정리한 농지임대차조 사에 따르면 2024년 임차농지는 약 70만 7천 헥타르로 전 체 농지의 47.0%였습니다. 이 수치를 불법 임대차의 비율 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합법적으로 허용된 임대차도 포함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소유자와 경작자가 다른 농지 이용이 결코 주변적인 현상이 아니라 는 사실입니다. 농지를 모두 매입해야만 경영을 확대할 수 있다면, 많은 농민에게 규모 확대는 시작부터 어려운 일이 됩니다. 농사는 논에서 짓고, 증명은 서류로 한다 직불금을 받는 단계에서는 이 현실이 서류의 문제로 나 타납니다. 실제 농사를 짓는다는 사실과 그 농지를 사용할 적법한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함께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 니다. 공익직불법은 다른 사람의 농지를 적법한 권원 없이
117 사용하는 사람을 해당 농지의 지급대상에서 제외합니다. 농업경영체 등록에서도 농지대장과 영농사실을 확인할 자 료 등이 쓰입니다. 따라서 계약서 한 장이 없으면 어떤 경 우에도 등록과 지원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임차 관계를 공식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농민에게 지원 의 문턱이 높아지는 구조는 분명합니다. 이때 등기부에 나타나는 소유자, 농지대장에 기록되는 이용 관계, 농업경영체에 등록되는 경영주, 직불금을 신청 하는 사람은 같은 인물일 수도 있고 서로 다를 수도 있습 니다. 자작농이라면 이 관계가 비교적 단순합니다. 임차농 이라면 다른 사람의 재산을 이용할 권리를 증명해야 합니 다. 소유자가 서류 작성에 협조하지 않거나, 상속 등기가 정리되지 않았거나, 공유자 사이의 의견이 엇갈리면 실제 경작자는 자기 노동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 힙니다. 정부가 지원하려는 사람에게, 정부가 지원하지 않 으려는 소유자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 생기는 것입니다. 경작한 땅과 인정받은 땅 사이의 3만 평 어떤 농민이 4만 평을 경작하는데, 그 중에 임대차계약
118 이 된 농지는 1만 평이고, 나머지 3만 평에 대해서는 그렇 지 못해서 직불금도 못 받고 농자재 지원도 못 받는 경우 가 생깁니다. 실제 생산 규모와 행정적으로 인정되는 생산 규모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농민은 넓은 땅 을 경작하면서도, 그중 상당 부분에 대해서는 지원체계 안 에서 경작자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3. 직불금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첫째 통로: 이름을 빌린 신청 지원금이 소유자 쪽으로 이동하는 경로는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직접적인 것은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이 경작자로 신청해 받는 부정수급입니다. 실제 경작 자가 따로 있는데 소유자가 자신이 농사짓는 것처럼 등록 하여 돈을 받는다면, 직불제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조사와 환수, 제재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 다. 다만 ‘불법이므로 단속하면 된다’는 설명만으로는 왜
119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충분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허위 등록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 실제 경작자가 이를 거부하 기 어려운 사정, 정식 계약으로 전환할 때 생기는 손익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둘째 통로: 임대료 또 다른 경로는 임대료입니다. 임차농이 자기 이름으로 직불금을 정상적으로 받더라도, 계약을 갱신하면서 임대 료가 오르면 지원금 일부가 소유자에게 옮겨갈 수 있습니 다. 예를 들어 다른 조건이 같고 직불금이 연 100만 원 늘 었는데 임대료가 30만 원 오른다면, 임차농에게 남는 추 가 혜택은 70만 원입니다. 정부의 지급명세에는 농민에게 100만 원을 지원했다고 기록되지만, 경제적으로는 그중 30만 원이 토지 사용료로 이전된 것입니다. 이를 보조금의 임대료 귀속 또는 자본화라고 부릅니다. 이 현상에 반드시 허위 신청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지원금이 늘어나면 그 농지를 빌려 경작해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커지고, 농지를 원하는 사람들의 지불 능력도 달라 집니다. 좋은 농지의 공급이 제한되어 있고 임차하려는 사
120 람이 많다면 임대료에 반영되기 쉽습니다. 반대로 빌리려 는 사람이 드물거나, 장기계약으로 임대료가 정해져 있거 나, 임차인에게 다른 농지를 선택할 여지가 있다면 이전 정도는 작아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직불금이 전부 소유자 에게 넘어간다는 설명도, 실경작자 통장에 입금되었으니 전부 경작자의 이익이라는 설명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셋째 통로: 땅값 이 논리를 더 따라가면 농지 매매가격과도 연결됩니다. 앞으로 얻을 것으로 기대하는 임대수입이 높아지면, 다른 조건이 같을 때 소유자가 생각하는 농지의 자산가치도 높 아질 수 있습니다. 경작자의 소득을 보전하는 지원이 토지 를 사려는 사람에게는 취득 비용을 높이는 방향으로 일부 작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것은 가능한 경제적 경로에 관한 설명입니다. 개발 기대와 입지, 금리 등 다른 요인을 분리하지 않고 한국의 높은 농지가격을 직불금 때 문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4. 130만 원이 붙잡는 땅
121 물러나려면 계산이 하나 더 필요하다 소농직불금은 여기에 조금 다른 작용을 더합니다. 면적 에 비례하는 지원에 최소한의 생활 기반을 보완하는 정액 지원이 결합되면, 작은 농지를 계속 경작할 경제적 이유가 커집니다. 이는 영세농의 소득을 보전한다는 제도 취지에 부합합니다. 그러나 농사를 줄이거나 그만둘지를 고민하 는 소유자에게는, 임대료와 농업 수익만 비교해서 결정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경작을 중단하면서 없 어지는 지원을 함께 계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0.3헥타르의 산수 가령 다른 요건을 모두 갖춘 농가가 0.3헥타르, 약 900 평을 경작하며 소농직불금 130만 원을 받는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농지를 다른 농민에게 전부 임대하면 종전 농가의 직불금 수급 조건이 달라집니다. 반면 그 농지를 추가로 빌리는 사람이 이미 농업진흥지역에서 6헥타르를 넘게 경작하고 있고, 추가 농지에도 헥타르당 198만 원의 구간 단가가 적용된다면, 그 0.3헥타르에서 늘어나는 면적
122 직불금은 59만 4천 원입니다. 이는 현행 단가를 적용한 가 상의 계산입니다. 소유자가 자신이 잃는 130만 원 전부를 임대료로 보전받으려 해도, 새 경작자가 그 땅에서 추가로 받는 직불금만으로는 이를 충당할 수 없습니다. 이 차이는 직불금이 필지에 붙어 그대로 이전되는 권리 가 아니라, 농가와 경작자의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지원이 라는 데서 생깁니다. 소농직불금을 받던 여러 농가의 농 지를 한 경작자가 모으면, 종전 농가들이 받던 정액 지원 의 합계가 그대로 새 경작자에게 지급되지는 않습니다. 토 지를 모아 경작하면서 기계 이용이나 작업 효율이 높아지 더라도, 소유자와 임차인이 나눌 수 있는 지원금의 총액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생활 보전 정 책과 농지 규모화 정책 사이에 생기는 구체적인 긴장입니 다. 소농 지원의 실패인가 그렇다고 이 긴장을 소농 지원의 실패라고 곧바로 판정 할 수는 없습니다. 농업정책에는 생산비 절감만이 아니라 소득 분배, 고령 농민의 생활, 지역사회의 유지라는 목표
123 도 있습니다. 작은 농가가 계속 농사를 지으면서 수행하는 역할도 존중해야 합니다. 다만 경작을 이어가고 싶은 사람 을 돕는 것과, 경작에서 물러나고 싶은 사람까지 지원 상 실 때문에 남아 있게 하는 것은 구별해야 합니다. 은퇴할 수 없는 생활 조건을 만들어 놓고 고령농이 농지를 내놓지 않는다고 비판한다면, 정책이 만든 선택의 제약을 개인의 고집으로 돌리는 셈입니다. 경작 면적이 넓다고 큰 지주는 아니다 경작 규모가 큰 농민을 바라볼 때도 비슷한 구별이 필요 합니다. 여러 소유자의 작은 농지를 빌려 농사짓는 사람은 경작면적이 넓더라도 토지 자산은 적을 수 있습니다. 소 유면적이 작은 임대인 여러 명과 경작면적이 큰 임차인 한 명이 만나는 관계에서는 ‘소농 대 대농’이라는 분류만으로 경제적 강자와 약자를 가릴 수 없습니다. 규모별 지급구조 를 평가하려면 임차료 부담과 자산 보유까지 함께 보아야 합니다. 경영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생활 형편이나 협상력 도 반드시 우월하다고 가정해서는 안 됩니다.
124 5. 세금과 서류가 더하는 무게 8년 자경이라는 장기 계산 이러한 선택에 세제가 겹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집니 다. 대표적인 것이 8년 자경농지에 대한 양도소득세 감면 입니다. 이는 재촌·자경기간 등 별도의 요건을 심사하는 제도입니다. 아직 필요한 자경기간을 채우지 못한 소유자 에게는 임대차를 공식화하는 일이 향후 감면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이미 필요한 자경기간을 충족했 다면, 나중에 임대했다는 이유만으로 과거의 자경 이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임대하면 양도세 감면을 모두 잃는다’고 단순화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소유자가 자기 이름의 경작 기록을 유지하려 는 유인은 설명할 수 있습니다. 직불금 자체는 매년의 수 입이지만, 경작 이력은 장래의 세금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직불금 수령이 곧 자경을 확정해주 는 법적 보증서는 아닙니다. 실제 경작 여부는 다른 자료 와 함께 판단됩니다. 농지를 임차인 명의로 공식 등록하는
125 것을 꺼리는 행태를 이해하려면, 올해 직불금뿐 아니라 경 작자 지위에 연결된 장기적인 이해관계도 보아야 합니다. 청년농들이 소유자의 구두계약 선호 이유로 직불금과 자 경 감면을 위한 증빙 문제에서 애로를 겪을 수 있습니다. 같은 ‘농민 혜택’, 다른 기준 서로 다른 제도의 기준이 자동으로 함께 움직인다고 생 각해서도 안 됩니다. 농식품부는 2026년 면적직불금 신 청자에게 적용할 농업외 종합소득 기준을 4,700만 원으 로 높인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직불금의 소득 기준이 바뀌었다는 사실만으로 자경농지 양도세 감면 등 다른 제 도의 기준도 모두 같은 금액으로 변경되었다고 볼 수는 없 습니다. 각 제도는 자기 법령과 산정방식에 따라 운영됩니 다. 현장에서는 모두 ‘농민 혜택’으로 묶여 인식되기 쉽지 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요건들이 중첩되어 농민의 결정을 어렵게 만듭니다. 작업을 맡기는 것과 위장 자경은 다르다 또 하나 조심할 것은 농작업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행
126 위와 허위 경작을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농민이 모내기나 수확에 농기계 작업 대행을 이용한다고 해서 곧바로 가짜 농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경영과 노동 참여, 비용 과 위험의 부담 등 구체적인 관계를 확인해야 합니다. 농 지법의 자경 정의도 모든 작업을 혼자 수행해야 한다는 뜻 은 아닙니다. 작업의 일부를 맡기는 경우와 독립된 임차농 이 사실상 경영하는데 소유자 이름만 남겨두는 경우를 가 리지 못하면, 단속은 정상적인 농업 관행까지 위축시키게 됩니다. 6. 혜택과 압박이 만날 때 국무회의의 두 진단 이 지점에서 농지 전수조사와 처분 압박이 공익직불제 와 만납니다. 2026년 2월 24일 국무회의에서 윤호중 행 정안전부 장관은 고령 농민이 농지를 내놓지 않는 이유로 농사를 지어야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
127 다. 농사를 짓지 않아도 생활을 지원받을 수 있다면 농지 은행에 농지를 내놓을 여지가 커진다는 취지였습니다. 같 은 자리에서 대통령은 농사를 짓겠다며 취득한 농지를 경 작하지 않는 경우의 처분과 법 집행을 강조했습니다. 하나 는 농업을 계속하게 하는 지원의 조건을 문제 삼은 진단이 고, 다른 하나는 농지 보유의 적법성을 엄격히 집행하겠다 는 접근이었습니다. 출구가 열려 있느냐에 달렸다 두 접근이 현장에서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합법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얼마나 열려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 다. 농업을 그만두어도 생활이 유지되고, 안정적으로 임대 할 수 있으며, 계약을 공식화하는 데 큰 불이익이 없다면 조사와 정비는 정상적인 임대차를 늘리는 계기가 될 수 있 습니다. 농사를 지을 사람에게 농지가 연결되고, 그 사람 이 직불금을 받게 되는 결과입니다. 반대로 은퇴하면 지원 을 잃고, 임대는 까다롭고, 매각도 어렵다고 느끼는 상황 에서는 다른 선택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매물 대신 서류상 자경
128 소유자가 기존 임차인에게 땅을 돌려달라고 하고 실제 자경으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계속 농사짓 는데 서류상으로는 자신이 경작하는 것처럼 유지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정식 계약을 피하거나 직불금 감소분을 임 대료로 보전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반응이 모든 소유자에게 나타난다는 뜻은 아닙니다. 매각이나 적법한 위탁임대로 전환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처분 압박을 높이면 농지가 반드시 매물이나 임대 물량으로 나 온다는 단선적인 예상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지원과 규제 가 바꾸는 각 선택의 손익을 비교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혜택과 압박이 맞물리면서 정책의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정부는 한편으로 경작을 계속하는 사람에게 지원을 주면서, 다른 한편으로 소유·경작 관계를 엄격하게 정리하라고 요구합니다. 그 사 이에서 소유자가 경작자 지위를 놓지 않는 쪽으로 움직이 면, 농지가 실제 농업인에게 더 원활하게 이용되기를 바랐 던 정책이 오히려 기존 임차농의 이용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각 제도의 명분은 따로 설명할 수 있어도, 그것 들을 합쳤을 때의 효과가 서로 잘 맞는다는 보장은 없습니 다.
129 작동 경로와 발생 규모는 따로 따져야 한다 다만 이러한 작동 경로와 실제 발생 규모는 구별해야 합 니다. 직불금이나 세제의 유인이 농지 이용에 영향을 준다 는 연구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2026년 전수조사의 순효 과까지 입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임대차가 종료되었고, 얼마나 많은 농지가 정식 계약으로 전환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생산과 임차료가 어떻게 바뀌 었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정책 비판의 설득력은 가능한 부작용을 크게 단정하는 데서 나오기보다, 정부가 고려해야 할 행동 변화를 정확하게 짚는 데서 나옵니다. 방치된 땅과 잘 쓰이던 땅 이 문제에서는 농지가 실제로 이용되고 있었는지도 중 요합니다. 방치된 농지를 찾아 경작자를 연결하는 일과, 이미 임차농이 잘 경작하던 농지의 소유·이용 관계를 바꾸 는 일은 농업에 미치는 효과가 다릅니다. 후자의 경우 정 부는 관계를 바꾸어 어떤 이익을 얻는지, 그 과정에서 기 존 생산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할지를 설명해야 합니 다. 소유자의 법 위반을 바로잡는 일에 실경작자의 농사
130 중단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법 집행의 대 상과 농업을 계속할 사람을 구별하는 설계가 필요합니다. 농지은행은 해법인가 농지은행을 통한 정식 임대도 이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 습니다. 계약서를 갖추고 이용 관계를 분명하게 만드는 일 은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존 경작자의 지위가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청년농의 진입을 지원 하는 목표와 이미 농사를 짓는 중장년 농민의 경영을 지키 는 목표는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사업별 배정기준과 기존 경작자 보호장치를 확인하지 않은 채 농지은행에 맡기면 반드시 기존 농민이 쫓겨난다고 단정해서도 안 됩니다. 반 대로 정식 계약으로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당사자의 불 안이 모두 해소되었다고 평가할 수도 없습니다. 9월 21일 보완책: 발표와 시행 사이 정부의 2026년 9월 21일 보완 방향에서도 이러한 어려 움이 드러납니다. 농식품부는 관행적 임대차 등에 자진 정 비 기회를 주고, 농지은행 위탁을 통한 처분 유예 경로를
131 마련하며, 임차농의 권리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습 니다. 임대차 특별 정비기간도 11월 15일까지 연장했습니 다. 다만 특별조치법 제정과 농지법 개정이 필요한 내용까 지 포함되어 있으므로, 발표한 방향과 이미 확정되어 시행 되는 권리를 구분해야 합니다. 정책의 평가는 발표문의 표 현뿐 아니라 실제 계약 전환과 경작의 지속 여부에서 이루 어져야 합니다. 7. 무엇을 고쳐야 하는가 소유자·경작자·주민, 세 지위를 나누기 직불금과 농지제도를 함께 고치려면, 우선 농지의 소유 자와 농업의 경영자, 농촌에서 노후를 보내는 주민이라는 세 지위를 구별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세 역할을 모두 수 행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유 자는 농지를 적법하게 보유하고 보전할 책임을 지며, 경작 자는 생산과 공익적 활동을 수행하고, 고령 주민은 농업활
132 동을 줄인 뒤에도 생활을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서 로 다른 역할을 모두 ‘소유자가 직접 농사를 짓는 상태’에 묶어두면, 한 역할에서 물러나는 일이 생활과 재산 전반의 불안으로 확대됩니다. 경작자를 서류에 올리는 길 실제 경작자에게는 자신의 농업활동을 공식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길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실경작 확 인을 강화하는 일과 관행적 임대차를 적법하게 정비하는 일이 함께 진행되어야 합니다. 소유자의 협조가 없다는 이 유만으로 지원에서 배제되는 문제를 줄이려면, 미등기 상 속이나 공유지 등 유형에 맞는 절차도 갖추어야 합니다. 물론 사용 권한이 없는 점유를 농사짓는다는 이유만으로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재산권을 확인하면서도 실제 농업 이 중단되지 않도록 행정이 관계 정리를 도와야 한다는 뜻 입니다. 임차권이 안정돼야 직불금도 남는다 임차권 보호도 직불금의 효과와 직접 관련됩니다. 언제
133 농지를 돌려주어야 할지 모르는 농민은 토양 개량이나 배 수시설에 투자하기 어렵고, 지원금을 제대로 신청하겠다 는 요구조차 조심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현행 농지법에도 원칙적인 최소 임대차기간과 일정 농지에 대한 더 긴 기간 의 규정이 있습니다. 이러한 장치가 실제 계약에서 작동하 도록 하고, 갱신과 종료, 투자비 처리에 관한 분쟁을 줄여 야 합니다. 직불금의 수령자를 바로잡는 일은 그 수령자가 다음 해에도 안정적으로 농사짓도록 하는 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임대료로 새는 돈 막기 임대료 문제 역시 현금 지급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농지를 구할 대안이 적은 임차농에게 지원만 늘려주면 그 일부가 토지 비용으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지역별 계약 정보의 공개, 장기계약의 확대, 불합리한 일방 변경에 대 한 분쟁조정, 농지은행의 실질적인 공급 확대 등이 함께 필요합니다. 다만 임대료를 일률적으로 억누르는 조치가 공급을 줄이거나 거래를 다시 음성화할 가능성도 고려해 야 합니다. 임차농의 교섭력을 높이는 것과 합법적인 임대 공급을 늘리는 것을 함께 설계해야 지원의 효과가 경작자
134 에게 더 많이 남습니다. 총량보다 위치 전국의 농지 총량이 많다는 사실도 이러한 문제의 해답 이 되지는 않습니다. 경사와 진입로, 물 사정, 기존 경작지 와의 거리, 계약 가능 여부에 따라 농지의 이용 가치는 크 게 달라집니다. 멀리 떨어진 휴경지가 있다고 해서 지금 농사짓는 마을의 임대 수요를 대신 충족할 수는 없습니다. 농지를 농업인에게 연결한다는 목표에는 소유권을 이전 하는 일뿐 아니라, 필요한 위치의 농지를 적절한 조건으로 오랫동안 쓸 수 있게 하는 일이 포함됩니다. 매매가격이 낮아졌는지만으로 농지정책의 성과를 판단해서는 부족합 니다. 농사를 그만둬도 살 수 있어야 고령 농민의 생활 보장은 별도의 축으로 다루어야 합니 다. 농사를 그만두는 순간 필요한 지원을 잃는다면, 은퇴 를 장려하는 말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습니다. 농지 임대수 입과 연금, 사회보장, 필요한 전환 지원이 합쳐져 경작을
135 줄인 뒤의 생활을 지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유권을 유 지하려는 사람에게는 장기 임대가 선택지가 될 수 있고, 매각하려는 사람에게는 매매를 통한 이양이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농사에서 물러나는 일과 재산을 처분하는 일 을 언제나 하나로 묶을 이유는 없습니다. 은퇴직불이 채우지 못하는 빈칸 이미 은퇴를 지원하는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농지 이양은퇴직불은 2024년에 종전 경영이양직불을 임대 중 심에서 매도 중심으로 개편한 제도이며, 정부는 2026년 3 월 가입에 필요한 영농 경력 요건을 완화했습니다. 이러한 지원은 일부 고령농에게 유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매각을 선택하지 않는 고령농의 생활과 장기 임대까지 충분히 포 괄하는지는 별도의 문제입니다. 은퇴 지원제도가 있다는 사실과, 다양한 처지의 농민에게 실제로 이용 가능한 은퇴 경로가 열려 있다는 사실은 구별해야 합니다. 누가 무슨 역할로 받는가 이때 경작을 중단한 소유자에게 지급하는 지원의 목적
136 도 분명해야 합니다. 실제 경작자의 공익직불금은 그 사람 의 농업활동과 의무 이행에 따라 지급하고, 고령 소유자에 게 필요한 지원은 노후 보장이나 안정적인 농지 이양의 대 가로 설계하는 편이 역할을 명확하게 합니다. 같은 농지에 서로 다른 목적의 지원이 함께 들어갈 수는 있지만, 누가 무슨 역할로 받는지 투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농사짓지 않 는 사람이 경작자로 남아 있어야만 생활을 유지하는 유인 을 줄일 수 있습니다. 작게 남는 쪽이 유리해지지 않게 소농 지원 역시 이런 구분 안에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작은 규모의 농업을 계속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 활동을 지속할 기반을 제공해야 합니다. 농업 규모를 늘리는 사람 에게는 임차료와 투자 부담을 살펴야 하고, 경작을 줄이는 사람에게는 지원이 급격히 끊기는 문제를 점검해야 합니 다. 모든 농가를 크게 만드는 것만이 농정의 목표일 수 없 듯이, 지원을 받기 위해 작게 남아 있거나 명의만 나누는 선택이 유리해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농가의 실 제 생활과 경영 변화에 따라 지원이 이어질 수 있도록 조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137 공익을 만드는 사람에게 공익적 기능을 평가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농지 가 적절하게 관리되고 있는지, 토양과 수질을 보전하는 활 동이 이루어지는지, 지역의 공동 작업이 유지되는지를 살 펴야 합니다. 이때 공익을 수행한 사람이 반드시 소유자일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 필지를 빌려 경작하는 농민일 수도 있고, 마을 단위의 공동 활동에 참여하는 주민들일 수도 있습니다. 공익을 실제로 만드는 행위와 그 수행자를 더 정확하게 연결할수록, 소유와 경작이 분리된 농업 현실에 서도 지원의 정당성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적발 건수 너머의 지표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도 지급액과 적발 건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임차농에게 지급된 직불금이 임대료 부담을 제하고 얼마나 남았는지, 계약이 얼마나 안정되었 는지, 경작을 중단한 농지가 다른 농업인에게 얼마나 원활 하게 연결되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자료를 연계하 면 허위 등록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만, 기록이 서로 다르 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부정을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조
138 사와 정비의 성과는 행정상 숫자를 맞추는 데서 그치지 않 고, 농업활동과 생활이 더 안정되었는지까지 확인되어야 합니다. 이름이 같아졌는가보다 땅이 쓰이는가 공익직불금은 농업을 지탱하는 돈입니다. 그 돈의 효과 를 살리려면 농지를 빌리는 길, 계약을 공식화하는 길, 농 사에서 물러나는 길이 함께 열려 있어야 합니다. 농민에게 지원을 늘리면서 그 농민이 이용할 토지를 불안하게 만들 거나, 은퇴를 권하면서 은퇴하면 생활이 어려워지는 구조 를 그대로 두어서는 정책이 서로의 효과를 깎아먹게 됩니 다. 농지법과 직불제, 세제와 노후 보장을 하나의 선택 구 조 안에서 검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고령 농민은 평생 일군 땅을 간직하면서 농사에서 물러 날 수 있고, 이웃 농민은 그 땅을 안정적으로 빌려 생산을 이어갈 수 있으며, 공익직불금은 실제 농업과 공익적 활동
139 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관계 를 가능하게 만드는 데 농지제도의 역량이 쓰여야 합니다. 소유자와 경작자의 이름이 같아졌는지보다, 농지가 잘 이 용되고 경작자의 생활과 권리가 나아졌는지를 묻는 농정 이라야 공익직불금의 취지와 농지제도의 목적을 함께 실 현할 수 있습니다.
7 경자유전과 경자용전의 개념적 비교
<제7장 — 경자유전과 경자용전의 개념적 비교>에 서는 농지 전수조사를 경자용전 현실을 경자유전 원칙이 재배열하려는 시도라고 개념 규정합니다.
143 경자유전 원칙 경자용전 원칙 두 원칙의 관계 두 원칙은 논리적으로 서로 배척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강조점이 다릅니다. 경자유전(耕者有田)은 기본적으로 “누가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가”에 관한 원칙입니다. 헌법 제121조는 국가가 경자 유전 원칙이 달성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하면서 소작제 를 금지합니다. 그러나 같은 조문에서 농업생산성 향상이 나 농지의 합리적 이용을 위한 임대차·위탁경영을 법률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즉 헌법 자체가 경자유 전을 절대적인 ‘소유자 직접경작주의’로 만들고 있지는 않 습니다. 반면 경자용전(耕者用田)은 “누가 소유하느냐”보다는 “그 땅이 무엇에 사용되느냐”를 중심에 놓습니다. 농지는 농업 생산에 사용되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현행 농지법 제3 조도 농지가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소유·이용” 되어야 하고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 습니다. 그래서 개념적으로 보면 이렇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144 경자유전: “농사짓는 사람이 땅을 가져야 한다.” → 소유주체 규제에 중심 경자용전: “누가 가지고 있든 농지는 농사에 쓰여야 한다.” → 이용용도 규제에 중심 따라서 A라는 농민이 자기 농지를 직접 경작한다면 경 자유전과 경자용전이 동시에 충족됩니다. 이 경우에는 아 무 충돌도 없습니다. 두 원칙이 충돌하는 상황 문제가 되는 것은 B라는 비농민이 농지를 소유하고 그 것을 C라는 전문 농업인에게 장기 임대하여 C가 정상적으 로 농사를 짓는 경우입니다. 경자용전이라는 관점에서는 문제가 없습니다. 농지는 정확히 농업에 쓰이고 있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경자유전을 엄격하게 해석하면 “경작자 C
145 가 아니라 비경작자 B가 왜 농지를 소유하느냐”라는 문제 가 생깁니다. 그래서 최근 농지제도 논의에서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경자용전을 경자유전의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실제 농지제도 개선 논의에서도 경자용전을 “농지 소유자 격 제한 없이 농지가 농업생산에 이용되도록 하는 원칙”으 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중요한 구별이 있습니다. “대안으로 제시된다”와 “본질적으로 서로 모순된다”는 것은 다른 이 야기입니다. 경자용전은 경자유전보다 범위가 넓은 체계 4 4 4 4 4 4 4 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게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입 니다. 경자유전이면 보통 경작자 = 소유자 → 농업 이용 경자용전이면 소유자 ≠ 경작자여도 가능 → 농업 이용 입니다.
146 따라서 두 원칙의 관계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면, “경자유전과 경자용전은 서로 배척하는 원칙이라기보 다, 농지제도의 규율 중심을 ‘소유자격’에 둘 것인가 ‘실 제 이용’에 둘 것인가라는 서로 다른 정책철학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령 농민이 농지 소유자고 젊은 임차농민이 경작할 때 그리고 현재 한국 농촌의 현실에서는 바로 이 차이가 굉 장히 중요합니다. 고령 농민이 농지를 보유한 채 젊은 농 민에게 임대하고 실제 영농은 후자가 담당하는 경우처럼, ‘농지는 제대로 농사에 쓰이고 있는데 소유자와 경작자가 다르다’는 상황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경자유전을 강하게 밀어붙이면 소유관계를 바꾸려는 정책 이 되고, 경자용전을 우선하면 현행 소유관계를 반드시 바 꾸지 않고도 실제 농업 이용을 확보하는 정책이 됩니다. 즉 논쟁의 핵심은 농지를 농업에 사용하느냐 아니냐보 다도, “농업에 잘 사용되고 있는데도 소유자와 경작자가
147 반드시 같아야 하는가”에 있습니다. 경자유전 원칙으로 경자용전 현실을 재배열하려 한다 현재 전국적인 농지 전수조사가 벌어지고 있는데, 이 조 사는 경자유전 원칙이 경자용전 현실을 재구성하려는 시 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경자용전”은 현행법상 경자유전과 맞서는 하나 의 독립된 헌법원칙이라기보다 하나의 현실질서 4 4 4 4 4 4 4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농지는 농업에 쓰이고 소유자와 경작자는 일 치하지 않는 현실 질서 말입니다. 정부의 전수조사 시행지침부터 이 긴장이 분명히 보입 니다. 지침은 농지투기가 “경자유전 원칙의 취지를 훼손” 한다고 규정하면서, 비농업인 소유농지와 유휴지 증가를 문제로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9월 21일 정부는 전수조사 의 목적을 다시 설명하면서 “투기성 농지를 가려내 농업인 에게 돌려주기” 위한 조사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에는 단 순히 “농지가 실제 농업에 쓰이는가”를 조사하는 것 이상 의 목적이 들어 있습니다. “누가 소유하고 있으며 누가 경
148 작하는가”라는 소유(자)-경작(자) 관계를 문제 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농촌의 실제 모습은 이미 상당 부분 소유와 경작 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고령 농민이 농사를 그만두었지만 땅은 그대로 가지고 있고 이웃 농민이 경작한다든가, 상속 받은 자녀가 농지를 보유하면서 현지 농민에게 맡긴다든 가, 여러 필지를 모아 규모화한 농민이 타인 소유 농지를 임차해 경작하는 식입니다. 여기서는 소유자 A : 농지 보유 경작자 B : 농업생산 이라는 관계가 형성됩니다. 이 상태에서 중요한 것은 그 농지가 놀고 있느냐가 아닙 니다. B가 계속 벼를 수확하고 콩을 수확하고 있다면 “경 자용전”이라는 측면에서 이미 목적이 달성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A와 B 사이의 임대차가 농지법상 허용되는 경우인 가, A가 그 농지를 계속 소유할 자격이 있는가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전수조사가 단순한 “농지 이용실태 조사”를 넘어선 강력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경자유전을 강하게 집
149 행하면, “어떤 땅에서 농사가 지어지고 있느냐?”에서 끝나 는 것이 아니라, “그런데 왜 농사짓는 사람과 땅 가진 사람 이 다른가?”라는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법 규정에서 예외를 인정하는 경우가 아닌 소유 자 경작자 불일치 상황에 대해 소유자에게 임대차를 정리 하거나 농지를 처분하도록 요구하게 됩니다. 즉 기존의 농 업생산 자체에는 문제가 없더라도 소유-경작 관계를 법이 요구하는 형태로 다시 배열하려는 효과가 생깁니다. 현실의 재배열이 농업생산을 저해하고 농심을 교란 그러므로 현재 농지 전수조사를 둘러싼 반발과 논란은 “농지를 농사에 쓰느냐”를 둘러싼 충돌이라기보다, “농지 의 농업적 이용을 위해 소유자와 경작자가 어느 정도까지 일치해야 하느냐, 아니 일치할 필요가 있느냐”를 둘러싼 충돌입니다. 실제로 현장의 반발도 여기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연 합뉴스>>가 9월 20일 전국 상황을 취재하면서 바로 “경자 유전 원칙”과 농촌 현실의 괴리를 핵심 쟁점으로 제시했
150 고, 고령화·상속·대리경작 등 다양한 사정에도 실경작 여 부를 기준으로 농지를 처분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을 전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정부가 논란이 커진 뒤 내놓은 보완책입 니다. 농식품부는 9월 21~22일 “농촌의 관행적 위반은 정 상화·양성화”하고, 고령·질병·상속 등에 따른 임대차는 전 수조사에 따른 처분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고 강조하기 시 작했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정부 스스로도 결국 ‘경자유전의 형식적 집행’만으로 현실을 재편할 수 없고, 실제 농업 농지이용관계를 상당 부분 인정해야 한다는 쪽 으로 조정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 사태 를 압축해서 표현한다면 이렇게 됩니다. 전국 농지 전수조사를 둘러싼 논란의 심층에는 경자 유전이라는 소유원칙과, 이미 소유와 경작의 분리를 광 범위하게 받아들이며 작동해 온 경자용전의 현실 사이의 긴장이 있다. 전수조사는 단순히 놀리는 농지를 찾아내 는 조사가 아니라, 경자유전의 잣대로 기존 농지의 소유· 경작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고 일정 부분 재구성하려는 시도였기 때문에 농촌사회 전체에 충격을 주었다.
151 농민들이 반발한 이유를 단순히 “불법을 관행이라며 봐 달라는 것”으로 해석하면 사태의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상당수 농지는 이미 농업생산에 정상적으로 사용되고 있 습니다. 정부가 문제 삼은 것은 생산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생산을 떠받치고 있던 소유와 임대의 관계였습니다. 정상 적으로 사용되는 농지에 ‘비정상’이라는 잣대를 가져다대 는 것입니다.
8 OECD 보고서도 경자용전 원칙을 권고
<제8장 — OECD 보고서도 경자용전 원칙을 권고> 에서는 OECD의 2018년 보고서 <<한국의 혁신, 농 업생산성,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요약해보았습니 다. 이 보고서도 경자유전 원칙이 농업생산을 저해 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55 출발은 경자유전 1950년 농지개혁은 지주의 농지를 매입해 실제 경작자 에게 나누어주었고, 농지를 소유하는 사람과 농사짓는 사 람을 일치시키는 것이 기본원리였습니다. 이후 농지법도 원칙적으로 자신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하려는 사 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소유 상 한이 3헥타르였고 농업법인의 농지소유도 허용하지 않았 습니다. 전형적인 자작농 중심 체제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외가 하나씩 생겼습니다. 1990년에 농업법인 제도가 도입되었고, 이후 비농업인의 농업법인 출자가 점차 확대됐습니다. 2003년부터는 주말·체험 영 농을 위한 소규모 농지소유가 허용됐고, 2005년 농지은행 도입 이후에는 일정한 비농업인 소유농지를 농지은행을 통해 장기 임대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 역사를 훑어보면, 자작농 원칙을 고수하는 문제보 다 농지를 실제로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문제가 점점 중요 해졌다는 하나의 흐름이 보입니다. 파편화된 농지들
156 한국 농업에는 농지의 파편화/세분화가 심합니다. 한국 의 토지집약적 농업, 특히 쌀농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가장 큰 장애 가운데 하나가 농지가 작고 잘게 나뉘어 있 다는 점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하나는 농지가 여러 자녀에게 나누어 상속되면서 소유 가 계속 세분되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농지의 일부가 주택이나 상업·산업용지로 전용되면서 농업용 토지 자체 가 잘려나가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되면 농지를 규모 있게 이용하기 어려워지고 기계화 비용이 높아지며, 농지개량 이나 시설투자의 효율도 떨어집니다. 농지가 비싸다 규모화를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농지가격입니 다. 한국의 농지가격에는 농업수익만 반영되어 있지 않습 니다. 언젠가 주택·상업·산업용지로 전환될 수 있다는 기 대가 가격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더 넓은 농지가 필요한 농민은 농업소득으로 땅을 사기 어렵고, 소유자는 전용으로 가격이 오를 가능성을 기대하며 땅을 팔지 않고
157 보유하려 합니다. OECD는 높은 농지가가 농지집적을 방 해할 뿐 아니라, 농사를 지어 얻는 소득보다 미래의 전용 가치를 기다리는 편이 유리할 수 있어 농지를 놀리는 유인 까지 만든다고 지적합니다. 전용을 기대하고 농지를 사들이거나 쥐고 있는 것이 곧 농지투기입니다. 그렇다면 투기를 막는 방법은 비농업인 의 소유를 단속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농지를 다른 용도로 바꿀 수 있다는 기대 자체를 낮춰야 합니다. 농업진흥지역 안의 농지부터 전용규제를 더 엄격하게 적용해야 이 기대 를 낮출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놀리는 농지에 재산세 를 더 무겁게 매기면 전용 기대가 낮아질 수 있습니다. 경자유전과 현실의 충돌 한국 농지법은 자작농 원칙에 기초해 있지만, 현실에서 는 이미 임대차가 농지집적의 가장 중요한 통로가 되어 있습니다. 임차농지 비율은 1970년 17.8%에서 1990년 37.4%, 2010년 47.9%, 2015년 50.9%로 올라갔습니다. 2015년에는 농지의 절반 이상이 임대차로 경작되고 있었 던 것입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높은 농지가격이 큰 영향
158 을 미쳤습니다. 농지의 집적화 또는 규모화가 상당 부분 매매가 아니라 임대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법은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농지법은 원 칙적으로 경작자가 농지를 소유하도록 하고, 임대는 상속· 이농 같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합니다. 제도적 모순 4 4 4 4 4 입 니다. 현실에서는 임대차가 절반을 넘는데 법은 임대차를 예외로 취급합니다. 그 결과 임대차는 사라지지 않고 신고 되지 않은 형태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임대 제한이 낳은 비공식 임대차 자작농주의에 기초한 강한 소유 규제는 임대를 제한하 게 되고, 그러면 소유자는 정식 계약서를 쓰고 빌려주기를 꺼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농촌에서는 구두계약이나 비공 식 계약이 늘었습니다. 이런 임대차는 대체로 짧고 불안정 합니다. 내년에도 그 땅을 경작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 습니다. 그러므로 임차농은 배수시설을 정비하거나 토양 을 개량하거나 시설을 설치할 이유가 없습니다. 투자비 회 수에 여러 해가 걸리는 과수나 시설원예에서는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이런 비공식 임대차는 장기 경영계획과 투자
159 를 어렵게 만듭니다. 문제는 하나 더 있습니다. 실제로 농사짓는 사람은 임차 농인데 서류상으로는 소유자가 직접 경작하는 것으로 되 어 있으면, 면적 기준 직불금이 실제 경작자가 아니라 소 유자에게 갈 수 있습니다. 강한 경자유전 규제가 누가 실 제로 농사짓는지를 행정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정식 임대차를 확대하면 직불금을 실제 경작자 에게 지급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임대를 단속하지 말고 임차영농을 촉진시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임대농업을 없 애려 하지 말고 비공식 임대차를 정식 임대차로 바꾸는 노 력을 해야 합니다. 농지은행은 이 모순을 우회하는 제도입니다 한국농어촌공사는 1990년부터 농지규모화사업을 통해 젊은 농민과 전업농에게 농지 매입·임차 자금을 지원했고, 2005년 농지법 개정으로 농지은행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농지를 빌려주려는 사람은 농지은행에 맡기고, 농지가 필 요한 농민은 농지은행을 통해 빌립니다. 농지은행을 통한 임대에는 일반적인 임대 제한이 적용되지 않고, 임대기간
160 도 5년 이상으로 설정됩니다. 이 구조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비농업인 A가 농민 B에 게 직접 빌려주면 법적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A가 농지은 행에 맡기고 농지은행이 B에게 장기로 빌려주면 제도 안 으로 들어옵니다. 이런 제도가 생긴 이유는 현실에서는 임 대농업이 필요한데 경자유전 원칙 때문에 사적 임대차를 자유롭게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정공법이 아닙니다. 모든 임대차를 공공기관을 통해서 만 할 것이 아니라, 농지규제를 바꾸어 정상적인 민간 임 대차 자체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령농의 은퇴는 복지문제이면서 농지정책 농업구조가 바뀌려면 고령농의 농지가 젊은 농민에게 넘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고령농에게 농지는 생활비의 원 천이어서 쉽게 넘길 수 없습니다. 쌀농가의 60% 가까이가 65세 이상입니다. 정부가 계속 가격지지를 해주고 직불금 이 계속 지급되면 고령농에게는 농사를 계속하는 것이 경 제적으로 유리할 수 있고, 그러면 농지는 다음 세대로 넘 어가지 않습니다.
161 한국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령농이 농지를 팔거 나 임대하면 지급금을 주는 경영이양직불제 등을 운영했 습니다. 고령농의 토지를 젊고 활동적인 농민에게 넘겨 경 영규모를 키우는 것이 이 제도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쌀 가격을 지지하고 생산에 연계된 보조금을 지급 하면 고령농에게는 농사를 계속하라는 신호가 됩니다. 한 쪽 정책은 농지를 넘기라고 하고, 다른 쪽 정책은 계속 농 사짓는 편이 유리하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정책의 일관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령농의 생활 문제 는 농산물 가격이나 농업보조금이 아니라 국민연금과 노 인복지 같은 일반 사회보장제도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 야 농지가 젊은 농민에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농촌에서 농지는 재산이자 노후보장 수단이기도 하므로, 농지 유동 화를 원한다면 노후보장제도를 함께 바꾸어야 합니다. 농지연금은 구조정책의 관점에서 양면성이 있습니다 농지은행은 2011년부터 농지연금을 운영했습니다. 65 세 이상 농민이 농지를 담보로 맡기면 매달 연금을 받고, 사망 후 농지 가치에서 정산하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162 농민의 노후생활에는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농지연금을 받기 위해 농지를 젊은 농민에게 임대할 필요는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노후보장에는 기여하지만 농지를 다음 세대 로 이전한다는 목표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농지 정책, 소득정책, 복지정책이 따로 놉니다. 농지 자원이 다 음 세대로 어떻게 하면 잘 이동될 것인가 문제를 중심에 놓고 노후 소득과 복지 문제를 고려해야 합니다. 농업법인과 기업의 문제도 결국 농지 문제 한국은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는 기업과 자본의 진입이 자유롭지만, 농업에서는 농지소유와 농업법인 투자에 진 입장벽이 남아 있습니다. 생산자와 식품가공업체, 유통기 업, 기술기업이 서로 투자하고 협력해야 새로운 기술과 사 업모델이 들어올 수 있는데, 농지소유와 농업법인 투자 규 제가 이런 연결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식품제조업과 농업 의 연결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농지소유와 농업법인 투자 에 관한 규제를 줄여야 합니다. 농지를 투기자산으로 자유화하자는 게 아닙니다. 생산 적인 농업경영과 투자에 농지가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소
163 유·임대·법인 규제를 재검토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와 함 께 농지전용 규제는 더 강화해야 합니다. 농지의 농업적 이용에 대해서 유연한 접근 농지의 농업적 이용에 대해서 더 유연해져야 합니다. 임 차영농을 촉진하고, 농업법인과 투자의 진입장벽을 낮추 고, 농지가 더 생산적인 농가로 이동하게 해야 합니다. 반 면 농지를 농업 밖으로 빼내는 것에 대해서는 더 엄격해야 합니다. 1970년대 이후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많은 농지 가 주거·상업·산업·공공용지로 바뀌었고, 한국은 이를 막 기 위해 1972년 농지의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도입 했습니다. 우량농지, 특히 농업진흥지역 안의 농지에 대한 전용규제를 강화하고, 불가피한 개발은 농업진흥지역 밖 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정리하면 농업 안에서는 농지가 잘 움직이게 하고, 농업 밖으로는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 야 합니다. 농지는 재산이면서 생산자원
164 생산성을 높이려면 기술혁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 람·자본·토지 같은 자원이 더 생산적인 곳으로 움직이는 구조변화가 필요합니다. 그중 농지는 특별합니다. 자본은 비교적 쉽게 이동하지만 농지는 이동하지 않으므로, 사람 이 농지로 가거나 농지의 이용권이 사람에게로 이동해야 합니다. 따라서 농업 구조변화의 핵심은 농지 이용권을 어 떻게 재배분할 것인가가 됩니다. 농지정책은 모든 농가의 현재 소유면적을 보존하는 정책이 될 수 없고, 생산성이 높은 농가가 더 많은 농지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방향이 어야 합니다. 농지를 큰 농가에 모으는 것 소규모 고령농가의 빈곤은 중요한 사회문제이지만, 이 를 농업구조정책으로 해결하려 하면 구조 변화가 멈출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령농의 생활은 연금과 복지, 농촌 일 자리로 보호하고, 농업정책은 상업적으로 지속 가능한 농 가의 생산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이 구별은 농지정책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고령농의 생계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제와, 고령농이 보유한 농지를
165 계속 그 농가가 경작하게 해야 한다는 명제는 같지 않습니 다. 생활은 보호하면서 농지는 젊고 생산적인 농민에게 임 대하거나 이전할 수 있습니다. 농지와 식량안보의 관계 식량안보를 위해 농지를 보전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특 정 품목을 지금 모습 그대로 계속 생산하게 하는 것과 농 업생산 기반을 보전하는 것은 다르다고 봅니다. 시장수요가 변하면 농지에서 생산되는 작목도 바뀔 수 있어야 합니다. 쌀 소비가 줄고 부가가치 높은 작물과 식 품에 대한 수요가 늘면 농지도 그에 맞게 이용되어야 합니 다. 진정한 농지보전은 논에서 계속 쌀만 생산하자는 것이 아니라 농업생산에 쓸 수 있는 토지자원을 지키자는 것에 가깝습니다. 안정적인 이용권은 기술혁신의 조건 스마트팜, 과수원, 온실, 관개시설, 토양개량, 배수시설 같은 투자는 여러 해 동안 농지를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166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1년짜리 구두 임대차 농지에는 이런 투자를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임대차 문 제를 법률문제로만 볼 게 아니라 생산성과 혁신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장기적 이용권이 보장돼야 농지에 자본이 투 입됩니다. 경자유전 원칙 때문에 공식적 임대차가 막혀 임 대차가 단기화·비공식화되면 결과적으로 농업혁신이 저해 될 수 있습니다. 한국 농지정책의 모순 한국은 농지개혁을 통해 자작농 체제를 만들었고, 이 제 도는 지주제를 없애고 농민에게 농지를 돌려주는 데 큰 역 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농업이 현대화되면서 정책 과제가 바뀌었습니다. 농지를 잘게 나누어 많은 사람이 소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농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경영체가 충 분한 규모로 경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과제가 되었습니 다. 자작농 육성에서 더 큰 경영단위로의 농지집적으로 정 책목표를 이동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법제도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과거의 문제를 해 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경자유전 체계를 유지하고 있습니
167 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연쇄가 생깁니다. 농지집적이 필 요하지만 농지는 너무 비싸므로 농민은 땅을 사는 대신 빌 려야 하고, 실제로 농지의 절반 이상이 임차지입니다. 그 런데 임대는 원칙적으로 제한되므로 임대차가 비공식화 되고, 비공식 임대차는 짧고 불안정해 장기투자가 이루어 지지 않으며, 직불금도 실제 경작자가 아닌 소유자에게 갈 수 있습니다. 결국 자작농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규제가 전문농의 규모화와 장기투자를 방해하는 구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소유규제는 완화하고, 이용은 유연하게 하며, 전용은 엄격하게 한다 는 정책 방향을 추구해야 합니다.
9 일본 농지제도 변천사: 소유에서 이용으로
<제9장 — 일본 농지제도 변천사: 소유에서 이용으 로>에서는 일본 농지제도가 긴 역사를 통해서 어떻 게 점차 경자유전 원칙과 흡사한 원칙, 즉 소유에서 경자용전 원칙, 즉 이용으로 초점을 이동시켜 왔나 를 살펴봅니다.
171 시장 경제의 일반적인 해결 한 농민이 평생 농사짓던 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보 겠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직접 농사짓기가 어렵습니 다. 자녀들은 도시에서 일하고 있고, 돌아와 농사지을 생 각도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웃에는 그 논까지 맡아 경 작하고 싶은 농업인이 있습니다. 시장경제의 일반적인 원칙만 생각하면 애초에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주인이 팔고 싶으면 팔고, 계속 가지고 있 고 싶으면 이웃 농민에게 빌려주면 됩니다. 서로 임대 조 건에 합의하고 실제로 농사가 계속된다면, 정부가 나설 일 도 고민할 일도 없습니다. 농민의 땅이고, 그가 자기 재산 을 어떻게 할지는 원칙적으로 그의 선택입니다. 법과 정책의 강한 규율 그런데 농지는 일반적인 사유재산과 똑같이 취급되지 않습니다. 농업생산의 기반이라는 이유로 누가 소유할 수 있는지, 누가 경작해야 하는지, 어떤 경우에 빌려줄 수 있 는지를 법과 정책이 오랫동안 강하게 규율해왔습니다. 그
172 래서 고령 농민이 직접 농사를 그만두는 순간, 원래라면 당사자들끼리 해결할 수 있었을 문제가 정책의 문제가 됩 니다. 계속 소유하면서 다른 농업인에게 맡길 수 있는지, 일정한 조건에서는 처분해야 하는지, 임대가 허용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허용할 것인지가 제도의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마주한 문제도 동일 한국도 바로 이 문제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농민은 빠르게 고령화하고 있습니다. 농사를 그만두거 나 줄이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지만, 그들이 가진 농지가 모두 매매를 통해 다음 경작자에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소유자는 땅을 계속 보유하고 싶어 할 수 있고, 농사를 확대하려는 사람은 땅을 모두 사들일 자금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농업을 계속하게 만드는 방법은 소 유권을 이전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소유는 그대로 두고 실 제 경작을 다른 농업인에게 안정적으로 연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173 누가 소유하나 누가 이용하나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이 문제를 겪었습니다. 처음에는 농사짓는 사람에게 땅을 소유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 요한 과제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농지를 가진 사람과 실제로 농업을 계속할 사람이 다시 달라지기 시작 했습니다. 그때부터 일본 농정에는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 니다. 농지를 누가 소유해야 하는가 못지않게, 누가 그 농 지를 계속 이용할 수 있게 할 것인가가 중요해졌습니다. 일본의 농지정책은 바로 이 문제를 둘러싸고 오랜 시간 변해왔습니다. 소유와 경작을 한 사람에게 일치시키려던 자작농주의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임대차를 통한 규모 확 대를 인정하고, 여러 사람의 농지를 실제 농업을 담당할 경영체에 모아 이용하도록 하는 제도를 발전시켰습니다. 그 변화를 일본 정부가 압축해 표현한 말이 ‘소유에서 이 용으로’(所有から利用へ)입니다. 한국식 표현을 빌리면,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농지정책 의 중심을 ‘누가 땅을 가지고 있는가’에서 ‘그 땅이 실제로 농업에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가’ 쪽으로 조금씩 옮겨온 셈 입니다. 다시 말해 경자용전 쪽으로 움직여온 것입니다.
174 자작농주의와 경작자주의 먼저 용어를 정확히 해두겠습니다. 일본의 출발점을 한 국인에게 익숙한 ‘경자유전’으로 설명할 수는 있지만, 일 본에서는 주로 ‘자작농주의’라는 말을 썼습니다. 농지의 소유자와 경작자가 일치하는 상태를 바람직하게 보는 생 각입니다. 이에 비해 ‘경작자주의’는 실제 농업을 담당하 는 사람의 권리와 지위를 중심에 두는 원리로, 임차 경작 자까지 포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작농주의의 완화가 곧바로 경작자 보호의 포기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 구별 을 해야 일본의 변화를 원칙의 단순한 폐기나 교체로 오해 하지 않게 됩니다. 전후 농지개혁: 자작농주의 전후 농지개혁 당시에는 소유관계를 바꾸는 것이 실제 로 절박한 과제였습니다. 전쟁 전 일본 농촌에는 지주와 소작인 사이의 경제적·사회적 종속관계가 깊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경작하는 사람과 토지를 소유하는 사람이 분 리되어 있다는 사실이 농민의 생활과 지위에 직접 영향을
175 주었습니다. 1946년 <자작농창설특별조치법>을 토대로 추진된 개혁은 국가가 부재지주의 소작지와 재촌지주 소 유 소작지의 일정 한도 초과분 등을 매수해 경작자에게 넘 기는 방식이었습니다. 소작지 비중은 개혁 전 전체 농지의 약 46%에서 개혁 후 약 10%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농지를 누가 소유하느냐를 바꾸는 일이 농촌의 권력관계를 바꾸 는 일이었던 것입니다.[1] 이 성과를 지속적인 제도로 굳힌 것이 1952년 7월 15일 공포된 농지법입니다. 당시 제1조는 “농지는 그 경작자가 스스로 소유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는 판단을 명시했습 니다. 농지의 권리 이동을 허가 대상으로 삼고 소작지 소 유를 제한하며 임차농을 보호하는 장치들은, 농지개혁으 로 해체한 지주제가 다시 살아나지 않게 하는 방파제였습 니다. 자작농주의에는 농민의 독립과 생활안정이라는 역 사적 성취가 결합되어 있었습니다.[2] 당시 소작농에게 소유권을 준 것은 불안정한 경작 기반 을 안정시키는 강력한 방법이었습니다. 다만 한 시대의 문 제를 해결한 방법이 이후의 모든 시대에도 가장 적절한 방 법일 수는 없습니다. 일본 농지정책의 긴 변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됐습니다. 농지개혁의 성과로 만들어진 자 작농들이 나이를 먹고, 그 자녀들이 도시로 나가며, 농업
176 을 지속할 사람과 토지를 소유한 사람이 다시 달라지기 시 작한 것입니다. 소규모 소유 관계의 유지와 대규모 경영 관계의 도입 고도성장기에 들어서면서 농촌의 조건은 크게 바뀌었습 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성장하고 농촌 인구가 도시로 이동했습니다. 농업을 계속하면서 공장이나 회사에 다니 는 겸업농도 늘었습니다. 농기계는 더 넓은 면적을 경작할 수 있게 했고, 농업과 다른 산업 사이의 생산성·소득 격차 는 농업경영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를 키웠습니다. 1961년 농업기본법과 1962년 농업생산법인 제도의 도입 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한 제도적 움직임이었습니다. 농지 개혁의 성과를 지키는 일에 더해, 변화하는 산업사회에서 농업이 어떤 경영구조를 갖춰야 하는지가 과제로 떠올랐 습니다.[1] 그런데 규모를 키우려는 농업인은 농지가격이라는 장애 물과 마주쳤습니다. 도시화와 개발 기대가 농지의 자산가 치를 높이면, 땅값은 농업수익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 준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농사를 줄이는 소유자는 농외
177 소득이 있으므로 반드시 땅을 팔아야 할 이유가 없고, 농 사를 늘리려는 사람은 그 땅을 사고 싶어도 매입비를 감당 하기 어렵습니다. 농지의 재산가치와 농업의 수익성이 서 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입니다.[3] 이 상황에서 경작 규모를 늘리는 방법을 매입으로 한정 하면, 농업의 성장이 토지 매입 능력에 묶입니다. 경영자 가 마련한 자금은 농기계나 시설, 고용에 들어가기 전에 토지를 사는 데 먼저 소요됩니다. 반면 이용권을 확보한다 면 소유권 전체를 사들이지 않고도 농업을 확대할 수 있습 니다. 임대료라는 비용은 남지만, 시작할 때 필요한 자금 의 규모와 조달 방식이 달라집니다. 소유자가 땅을 팔지 않으려는 사정과 경작자가 더 넓은 땅을 필요로 하는 사정 을 함께 수용할 방법이 여기에서 나옵니다. 그렇다고 정부가 곧바로 자작농주의를 폐기한 것은 아 닙니다. 1970년 5월 15일 공포된 농지법 개정은 기존 목 적 조항에 ‘토지의 농업상 효율적인 이용’을 도모한다는 취지를 추가했습니다. 경작자 자신의 소유가 가장 적당하 다는 문장은 남아 있었습니다. 한 조항 안에 자작농주의 4 4 4 4 4 와 효율적 이용 4 4 4 4 4 이라는 두 방향이 함께 놓인 것입니다. 농지 취득의 면적 상한을 없애고 임대차 관련 제한을 완화한 것 도 경영 규모를 확대할 통로를 넓히려는 변화였습니다.[4]
178 이 개정에서 중요한 것은 옛 원칙 옆에 새로운 판단 기 준이 들어왔다는 사실입니다. 농지를 누가 소유해야 하는 지뿐 아니라, 그 농지를 누가 더 잘 이용할 수 있는지에 대 해서도 질문하게 됐습니다. 농지개혁을 통해 만들어진 소 규모 소유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경영 규모는 그 소유관계 의 경계를 넘어 확대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 열린 것입 니다. 이후 일본 농지제도의 변화는 이 두 요구를 함께 수 용하는 과정으로 전개됩니다. 그러나 임대를 허용하는 것만으로 농지가 원활하게 이 동하지는 않았습니다. 소유자에게는 한번 빌려주면 돌려 받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전후 농지법 이 임차농의 경작권을 강하게 보호한 것은 역사적으로 충 분한 이유가 있었지만, 새로운 임대차를 맺으려는 소유자 의 판단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었습니다. 기존 임차인 을 보호하는 제도와 새로 농지를 빌려주도록 유도하는 정 책 사이에 긴장이 생긴 것입니다. 이 긴장을 풀지 못하면 법률상 가능한 임대차도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차지농주의로의 전환: ‘이용’을 정책의 중심으로 소유 면적과 경영 면적이 다른 길을 걷도록
179 1975년 농업진흥지역 정비에 관한 법률의 개정으로 도 입된 ‘농용지이용증진사업’은 이 문제에 대응하는 통로였 습니다. 지자체들이 관계자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농지 이 용을 조정하고 이용권을 설정하도록 했습니다. 1980년에 는 이를 독립된 <농용지이용증진법>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농지법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도, 별도의 계획과 공고를 통해 이용권을 설정하고 일부 일반 규정의 특례를 인정하 는 방식이었습니다. 정해진 기간이 끝나면 이용권이 소멸 하는 구조는 빌려주는 사람의 불안을 덜어주려는 장치였 습니다.[5] 이용권이라는 말이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핵심은 간단 합니다. 토지의 주인은 그대로 둔 채 일정한 조건과 기간 아래 다른 사람이 농지를 이용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용권은 임차권 등을 포함하는 제도적 범주이지, 임대차 와 전혀 무관한 특별한 권리가 새로 발명됐다는 뜻은 아닙 니다. 새로운 점은 그 권리를 개별 당사자의 협상에만 맡 겨두지 않고, 지역의 공적인 계획과 조정으로 성립시키고 이동시키려 했다는 데 있습니다. 소유권을 이전하는 것과 4 4 4 4 4 4 4 4 4 4 경영을 확대하는 것이 반드시 같은 절차일 필요가 없어진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4 것 4 입니다. 가령 여러 농가가 각각 작은 논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보
180 겠습니다. 그중 일부는 농사를 줄이려 하고 다른 한 농가 는 농사를 늘리려 합니다. 땅을 전부 사야 한다면 거래가 격과 매입자금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정 기간 빌 리는 데 합의하면 소유자는 재산을 유지하고, 경작자는 여 러 사람의 땅을 하나의 경영 안에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농지의 소유 면적과 농업의 경영 면적이 달라지는 것입니 다. 정책은 이 차이를 예외로 인정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농업구조를 바꾸는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 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일본 연구자들은 ‘차지농주의’ 또는 ‘차 지주의’로의 전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어로 풀면 임 차를 통해 농업경영을 발전시키는 방향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과거 소작제의 부활로 곧바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 다. 토지를 빌려주는 사람이 반드시 강대한 지주이고 빌리 는 사람이 반드시 영세한 소작농인 관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농업을 줄이는 소규모 소유농의 땅을 기계와 경영능력을 갖춘 농가가 빌리는 관계에서는, 토지 소유의 규모와 농업경영의 규모, 당사자들의 협상력이 서 로 다르게 구성됩니다. 그렇다고 임차농의 보호가 불필요해진 것도 아닙니다. 빌려주기 쉬운 제도와 빌려서 안정적으로 농사짓기 좋은
181 제도는 저절로 일치하지 않습니다. 소유자가 언제든 쉽게 회수할 수 있게 하면 경작자는 토양을 개량하거나 시설에 투자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회수를 지나치게 어렵게 하 면 새로운 임대 공급이 위축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임대 기간, 갱신 조건, 임대료, 토지개량 비용의 부담과 계약 종 료 때의 정산을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 시마모토 도미오가 2001년 연구에서 지적한 것도, 이용권 설정의 확대에 비 해 임대기간과 임대료, 개량투자와 비용상환의 문제가 충 분히 검토되지 못했다는 점이었습니다.[5] 이것은 ‘소유보다 이용’이 실제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보 여줍니다. 임차를 허용한다는 선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 일본 농촌의 마을 모습
182 습니다. 경작자가 자기 노동과 자본을 투입할 수 있을 만 큼 이용관계가 예측 가능해야 합니다. 농업에서는 올해 농 사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과 앞으로도 계속 농사를 지으며 투자할 수 있다는 사실 사이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용 을 정책의 중심에 둔다는 것은 이용자의 장기적인 경영 조 건까지 정책의 관심 안으로 가져오는 일입니다. 농경 주체의 문제 1993년에는 농용지이용증진법이 <농업경영기반강화촉 진법>으로 개편됐습니다. ‘인정농업자’ 제도가 도입되어 농업인이 작성한 경영개선계획을 지자체가 인정하고 농지 이용의 집적과 경영지원을 연결하는 체계가 마련됐습니 다. 농지를 움직이는 정책과 그 농지를 맡을 경영체를 키 우는 정책이 결합한 것입니다. 농지를 빌릴 수 있게 하는 데서 나아가, 그 농지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농업을 할 주 체가 누구인지를 묻기 시작했습니다.[6] 이후 일본 농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担い手’(니나이테: 떠맡 는 사람)는 이러한 담당 주체를 뜻합니다. 지역 농업을 지속 적으로 맡아갈 농업인과 경영체를 가리키며, 가족경영이
183 나 법인, 마을의 공동 영농조직 등 여러 형태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를 대기업과 같은 뜻으로 읽으면 정책의 대상 을 잘못 이해하게 됩니다. 자작농이 소유와 경작의 일치를 중심으로 정의되는 개념이라면, 담당 경영체는 지역의 농 업을 어떤 능력과 기반으로 계속 수행할 것인가를 중심으 로 보는 개념입니다. 실제로 소유농지를 경작할 수도 있 고, 임차농지를 함께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2000년대에는 이용 주체를 어디까지 넓힐 것인가가 더 욱 중요한 쟁점이 됐습니다. 고령화와 후계자 부족이 심해 지는 지역에서는 기존 농가 사이에서 농지를 주고받는 것 만으로 농업을 유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2003년 구조개혁특구에서 일반 법인이 농지를 빌려 농업에 진입 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렸고, 2005년에는 특정법인대부사업 이 전국적으로 시행됐습니다. 다만 이때도 대상 지역과 중 개 방식 등에 조건이 붙었습니다. 모든 기업이 어느 곳에 서나 자유롭게 직접 임차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 다.[7] 기업의 소유 자격은 제한되나 임차 진입 채널은 확대된다
184 여기서 정책은 두 가지 권리를 구별했습니다. 기업이 농 지를 소유할 수 있게 하는 문제와 기업이 농지를 빌려 농 업을 경영할 수 있게 하는 문제입니다. 일본은 소유 자격 의 제한을 유지하면서 임차 진입의 길을 넓혔습니다. 농업 에 필요한 자본과 조직을 받아들이는 통로를 토지소유권 의 전면적인 개방과 분리한 것입니다. 농지 취득과 실제 이용을 반드시 하나로 묶어 판단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기업 진입 정책에서도 구체화됐습니다. 이 흐름 위에서 2009년 농지법 개정이 이루어집니다. 농림수산성은 개혁의 방향을 ‘소유에서 이용으로’라고 설 명하며 소유와 이용을 분리하고 농지의 유효이용을 중심 으로 제도를 재구축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그해에 처음 으로 임차농업을 허용한 것처럼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임 대차에 의한 규모 확대는 이미 수십 년 동안 추진되어 왔 습니다. 2009년 개정의 중요한 새 쟁점은 그 이용을 담당 할 주체를 일반 기업 등으로 더욱 넓힌 데 있었습니다. 하 라다 스미타카가 개정의 핵심을 농업경영 주체의 자유화 와 다양화에서 찾은 이유입니다.[7][8] 2009년 개정의 역사적 의미는 목적 조항의 문장 변화 에서 특히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정부 원안은 종래의 자작 농 중심 목적 조항을 크게 바꾸려 했지만, 국회 심의에서
185 는 경작자 소유의 역사적 역할과 경작자의 지위, 지역과의 관계를 남겨야 한다는 요구가 반영됐습니다. 최종 개정법 은 6월 24일 공포되고 12월 15일 시행됐습니다. 새 제1조 는 경작자 자신의 소유가 ‘가장 적당하다’는 선언을 없애 는 대신, 그 소유가 수행해 온 ‘중요한 역할도 고려하면서’ 라는 표현을 넣었습니다.[9] 두 문장은 비슷해 보이지만 의미가 다릅니다. ‘가장 적 당하다’는 말은 앞으로의 제도 설계에서도 그 소유 형태를 우선적인 기준으로 삼겠다는 판단입니다. ‘중요한 역할을 고려한다’는 말은 그 역사적 성과를 존중하면서 다른 방식 도 구성할 여지를 줍니다. 과거의 성공을 인정하는 일과 앞으로도 같은 수단을 최선으로 고정하는 일이 분리된 것 입니다. 이 작은 문장 변화에는 오랜 기간 누적된 현실과 논쟁이 들어 있습니다. 최종 법문은 농지를 현재와 미래의 국민을 위한 한정된 자원이자 지역의 귀중한 자원으로 규정했습니다. 효율적 으로 농지를 이용하는 경작자의 권리 취득을 촉진하되 지 역과의 조화를 고려하고, 농지의 농업상 이용을 확보하며, 경작자의 지위 안정과 농업생산의 증대를 도모하도록 했 습니다. 소유의 역사적 역할, 경작자의 보호, 지역적 조정, 농업상 이용의 확보가 하나의 목적 조항에 함께 놓였습니
186 다. 자작농주의의 흔적을 완전히 지운 법도, 소유관계에만 머문 법도 아니었습니다.[9] 실제 진입 제도도 이러한 조정을 담았습니다. 일반 법인 이 농업생산법인 자격을 갖추지 않더라도 일정한 요건 아 래 농지를 직접 임차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적정하게 이용 하지 않을 때 계약을 해제하는 조건, 지역의 다른 농업인 과 역할을 분담하며 지속적으로 경영할 수 있다는 판단, 업무집행 임원 가운데 한 명 이상이 농업 사업에 상시 종 사한다는 요건 등이 결합됐습니다. 농작업을 모두 경영자 자신의 손으로 수행하는 형태만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서 도, 실제 농업경영에 대한 책임은 요구한 것입니다. 소유 권 취득에는 여전히 별도의 자격 제한이 적용됐습니다.[7] 임대차의 최장기간도 50년까지 정할 수 있게 했습니다. 모든 임차인에게 자동으로 50년이 보장된다는 의미는 아 니고, 당사자들이 긴 계약을 선택할 수 있도록 법적 가능 성을 넓힌 것입니다. 표준소작료 제도와 소작지 소유 제한 을 폐지하는 변화도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변화는 농 지 이용을 넓히는 한편, 계약과 임대료 형성이 경작자의 경영 안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야 할 필요도 키웠습 니다. 규제완화의 폭만으로 개혁의 성패를 판단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8]
187 동시에 새 제2조의2는 소유권자뿐 아니라 임차권 등 이 용권을 가진 사람에게도 농지의 적정하고 효율적인 농업 상 이용을 확보할 책임을 부과했습니다. 이용 주체를 넓히 는 것과 이용 책임을 요구하는 것을 결합한 것입니다. 소 유 자격을 심사하는 것만으로 농지정책이 끝날 수 없으며, 실제로 농업에 이용되는지까지 보아야 한다는 방향이 법 에 반영됐습니다. 농지전용 규제의 일부 강화도 이 개혁과 함께 추진됐습니다.[9] 2009년 4월 30일 중의원 농림수산위원회의 부대결의는 이 책임의 뜻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소유자가 스 스로 경작할 수 없는 경우에는 소유권 이외의 권원에 의해 농지가 경작되도록 이용을 확보해야 한다는 취지였습니 다. 부대결의는 법 조문과 같지는 않지만, 입법 당시 정책 의 방향을 읽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직접 농사짓기 어려워 졌을 때 다른 경작자에게 안정적인 이용을 맡기는 일도 소 유자의 책임을 이행하는 경로로 제시된 것입니다.[10] 이 대목을 통해 ‘농지를 이용할 책임’과 ‘소유자가 반드 시 직접 농사지어야 한다는 요구’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두 요구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적정한 임대를 통해 실제 경작이 지속된다면, 소유와 경작이 분리된 관계 안에서도 농업상 이용이 확보될 수 있습니다. 물론 개별 소유와 계
188 약의 적법성은 따로 판단해야 합니다. 다만 제도를 설계할 때에는 타인의 안정적인 경작을 조직하는 것 역시 농지를 농업에 남겨두는 방법이라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집적과 집약화를 향하여: 농지은행 그러나 이용할 자격을 넓히고 임대를 허용해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농지는 움직일 수 없고 필지마다 위치와 조건이 다릅니다. 한 농업인이 20헥타르 를 경작하더라도 그 땅이 수십 군데에 흩어져 있으면 농기 계 이동, 물 관리, 작업 일정에 많은 비용이 듭니다. 면적의 합계가 같아도 농지의 배치가 다르면 생산 조건은 크게 달 라집니다. 임대차 계약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경작에 적 합한 농장의 형태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집적’과 ‘집약화’를 구별합니다. 집 적은 특정 경영체가 이용하는 농지 면적을 늘리는 것이고, 집약화는 그 농지가 공간적으로도 가까이 모이게 하는 것 입니다. 여러 소유자의 땅을 한 경영체에 연결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여러 경영체 사이의 이용관계까지 조 정해야 할 수 있습니다. A가 이용하는 먼 논과 B가 이용하
189 는 가까운 논의 이용 배치를 바꾸는 편이 양쪽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조정에는 개별 임대계약을 넘 어선 정보와 협의가 필요합니다. 2013년 입법을 거쳐 2014년 사업이 시작된 ‘농지중간 관리기구’는 이러한 과제에 대응하는 제도입니다. 일본에 서도 ‘농지은행(農地バンク)’이라는 별칭으로 부릅니다. 도도부현 지사가 지정한 기구가 소유자에게 농지를 빌리 고, 그 이용권을 모아 농업을 담당할 경영체에 다시 빌려 주는 방식이 중심입니다. 필요한 경우 이용 조건의 정비와 지역 조정도 연결됩니다. 원래 소유자는 소유권을 유지하 면서 농지를 맡기고, 경작자는 기구를 통해 농지를 확보합 니다. 소유권을 모두 한 사람에게 옮기지 않고 경작의 배 치를 바꾸려는 장치입니다.[11]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담당 경영체가 이용하는 농지의 비율은 2023년도에 60.4%로, 기구 창설 전보다 11.7%포인트 높아졌습니다.[12] 이 구조는 농지개혁과 대비하면 더욱 선명해집니다. 전 후 농지개혁은 국가가 토지를 매수해 경작자에게 소유권 을 넘기는 방법으로 농민의 지위를 바꾸었습니다. 농지은 행의 임대·전대 방식은 소유와 경작이 나뉘어 있는 상태를 전제로, 그 사이의 이용관계를 공적으로 조직합니다. 소유 자가 여러 명이어도 경작은 하나의 경영 안에 모일 수 있
190 고, 경작자가 세대교체를 하더라도 소유권을 전부 다시 매 매할 필요는 없습니다. 농업 생산의 지속을 소유자의 생애 변화와 연결하면서도, 그 변화에 전적으로 종속되지 않게 하는 제도적 가능성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농지은행을 만들기만 하면 모든 거래비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논에 물이 잘 들어오는지, 농기계가 진입할 수 있는지, 누가 공동 수로를 관리하는 지, 소유자가 어떤 조건으로 맡기려 하는지 등을 알아야 합니다. 이웃 필지와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이런 정보와 신뢰는 지역에 축적되어 있으므로 공적 기구가 이를 단번 에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기구의 명칭과 법적 권한을 만드 는 일에 더해, 현장의 조정을 실제로 수행할 사람과 조직 을 갖추어야 합니다. 무엇을 참고할 것인가 이제 일본의 변화를 조금 더 정확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 다. 자작농주의가 사라지고 임차농주의가 들어선 뒤, 다 시 경자용전주의로 완전히 교체된 세 단계의 역사는 아니 었습니다. 경작자 소유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임대차를 확
191 대했고, 농업인 중심의 권리 취득 원칙을 두면서 이용 주 체의 범위를 넓혔습니다. 농지법의 틀 안에서 해결하기 어 려운 문제에는 별도의 이용권 제도를 만들었고, 그 제도가 커지자 농지법의 목적과 규정도 바꾸었습니다. 원칙과 현 실을 거듭 조정하며 여러 제도가 쌓인 역사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용’이라는 말의 내용도 넓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농업인이 남의 땅을 빌려 규모를 키울 수 있다는 뜻이 중요했습니다. 다음에는 기존 농가 밖의 경영 주체도 농업을 맡을 수 있다는 뜻이 더해졌습니다. 농지은행 단계 에서는 여러 계약을 연결하고 필지의 배치까지 조정하는 문제가 전면에 나왔습니다. 소유에서 이용으로 이동한다 는 것은 소유권 규제를 줄이는 한 가지 조치로 끝나지 않 았습니다. 실제 이용을 가능하게 하는 계약, 경영체, 지역 협의, 공적 중개를 함께 발전시키는 과정이었습니다. 한국의 ‘경자용전’이라는 말은 이러한 방향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농지가 농업에 계속 이용되도록 한다는 뜻에서 일본 법의 ‘농지의 농업상 이용의 확보’와 가까운 문제의식입니다. 다만 일본이 ‘경자용전’이라는 이름의 공 식 원칙으로 농지제도를 일괄 교체했다고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일본의 경험에서 한국이 검토할 수 있는 중요한 질문은,
192 농지정책의 목적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얼마 나 분명히 구별하고 있는가입니다. 농민의 지위를 안정시 키고 농업생산을 지속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자작농적 소 유는 그 목적에 기여해온 중요한 수단입니다. 임대차와 공 적 중개도 조건에 따라 같은 목적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어느 관계가 적절한지는 소유와 경작이 일치하는지뿐 아 니라, 실제 경작이 얼마나 안정적이고 농업경영이 어떤 조 건에서 지속되는지까지 살펴 판단해야 합니다. 이 관점에서는 비경작 소유, 투기적 취득, 유휴화, 불안 정한 임차를 같은 문제로 묶을 수 없습니다. 평생 농사짓 던 사람이 늙어 이웃에게 논을 맡기는 관계와, 개발차익 을 기대해 농업상 이용을 방해하는 관계는 정책적으로 구 별해야 합니다. 소유자가 직접 경작하지 않아도 농업은 안 정적으로 계속될 수 있고, 반대로 소유자가 형식적으로 경 작한다고 해도 바람직한 이용이 확보됐다고 단정할 수 없 습니다. 소유자의 자격에 대한 판단과 농지 이용의 성과에 대한 판단을 각각 충실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임차농이 정상적으로 농사짓고 있는 땅이라면, 관 계를 바꾸는 정책은 그 경작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까지 설 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존 관계를 정비한 뒤에도 같은 사람이 계속 농사지을 수 있는지, 계약기간과 투자 조건이
193 개선되는지, 경작의 공백이 생기는지, 더 적합한 이용자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따져야 합니다. 이것은 위법한 관계를 그대로 두자는 주장이 아닙니다. 법을 정비하고 집 행하는 일이 농업을 지속시키려는 목적에 어떻게 기여하 는지까지 정책 평가의 대상으로 삼자는 뜻입니다. 처음의 고령 농민에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가 더 이상 직접 농사짓기 어렵다는 사실과 그 논에서 농업을 계속할 수 없다는 사실은 같지 않습니다. 소유자가 안심하고 맡길 수 있고, 경작자는 충분한 기간 동안 투자하며 농사지을 수 있고, 지역은 물과 길과 필지의 이용을 조정할 수 있다 면, 그 논에서 농사는 계속될 수 있습니다. 일본이 오랜 시 간 만들어온 것은 바로 이러한 관계를 성립시키는 제도였 습니다. 농지의 은퇴가 없게 전후 일본에서는 농민에게 땅을 갖게 하는 일이 농민을 지키는 길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땅을 소유한 사람 가운데 농사를 떠나는 사람이 늘었고, 농업을 계속할 사람 에게는 자기 소유를 넘어선 경작 기반이 필요해졌습니다.
194 일본의 농지정책은 이 변화를 받아들이며, 누가 땅을 소유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누가 어떤 조건으로 이 땅을 계속 경작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더했습니다. 한국의 농지정 책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농민이 나이를 먹고, 소 유자가 바뀌고, 농업을 맡는 세대가 달라져도 농지가 생산 의 기반으로 남게 하려면, 소유자를 가려내 처분시키는 일 보다 경작이 끊기지 않게 잇는 일이 먼저여야 합니다. 이 책이 말하는 경자용전이란, 농업인의 은퇴는 있어도 농지 의 은퇴는 없게 하자는 것입니다.
195 [1] 농림수산성, 전후 농지정책 주요 연표 등을 수록한 자료. 1946년 법률은 「自作農創設特別措置法」, 1961년 법률은 「農業基 本法」 참조. [2] 「農地法」, 1952년 법률 제229호, 특히 제정 당시 제1조. [3] 本間正義, 「農地制度の今日的課題―経済学の見地から」, 『日本不動産学会誌』 24권 3호, 2010, 85–90쪽. [4] 중의원, 「農地法の一部を改正する法律」, 1970년 법률 제56 호. [5] 島本富夫, 「農地政策と農地賃貸借秩序形成」, 『農林水産 政策研究所レビュー』 제1호, 2001, 51–57쪽. 이용권 제도의 전개와 임대기간·임대료·개량투자 문제를 함께 다룬다. 1980년 「農用地利用増進法」도 참조. [6] 「農業経営基盤の強化のための関係法律の整備に関する法 律」, 1993년 법률 제70호. [7] 농림수산성, 2009년 농지제도 개정 설명자료. 기업 진입의 선행 제도, 개정 후 임차 요건 등. 「平成の農地改革(21年農地法 改正)の概要」 수록자료도 참조. [8] 原田純孝, 「農地貸借の自由化とその今後―道半ばの『改 革』のゆくえを問う」, 『日本不動産学会誌』 24권 3호, 2010, 77–84쪽. [9] 중의원, 「農地法等の一部を改正する法律」, 2009년 법률 제 57호. 제1조와 제2조의2를 중심으로 최종 법문 확인. 시행 시점 은 농림수산성 개정 설명자료도 참조.
196 [10] 중의원, 제171회 국회 농림수산위원회, 2009년 4월 30일, 수정 안 및 부대결의. [11] 농림수산성, 농지중간관리기구 안내, 『令和6年度 食料·農業· 農村白書』 제2절 「農地の確保と有効利用」. [12] 농림수산성, 「令和5年度の農地中間管理機構の実績等の公 表について」, 2024년 6월 12일. 2023년도 집적률 60.4%, 창 설 전 대비 11.7%포인트 상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