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215 양하영 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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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iminal

32 Y A N G H A Y E O N G

54 00 THRESHOLD 06 01 PASSAGE 10 02 REFLECTION 16 03 FILTER 22 04 OPEN 28 05 STILL 34 Contents

76 ‘Liminal’은 경계, 문턱, 그리고 전환의 상태를 의 미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자연에는 수많은 경계 가 존재한다. 낮과 밤이 교차하는 순간, 빛과 그림 자가 맞닿는 순간, 현실의 풍경이 물 위에 또 다 른 이미지로 나타나는 순간. 이러한 경계의 순간 을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노을은 낮에서 밤 으로, 빛은 그림자로, 반사는 현실에서 이미지 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잠시 머무는 순 간들은 평범했던 일상을 낯설고 새로운 풍경으 로 바꾸어 놓는다. 이 작업은 자연을 기록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변화하는 순간을 관찰하고, 그 순간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를 기록한다. 빛 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경계에서 잠시 멈추어 바 라본다. 어쩌면 우리가 지나치고 있던 순간들 속 에 가장 조용한 위로가 머물고 있을지도 모른다. 00 THRESHOLD

98 I followed the fading light, searching for the most beautiful moment of the day. PASSAGE 01 물 위에는 현실과 닮은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1110 언젠가부터 나는 일몰을 찾아다녔 던 것 같다. 하굣길 버스 창밖에서 도, 큰마음을 먹고 떠난 여행지에서 도 해가 저무는 순간이면 자연스레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낮과 밤 사이, 하늘과 땅이 맞닿은 듯한 풍경 속 에서 세상은 천천히 붉게 물들었다. 짧은 시간 동안 펼쳐졌다 사라지 는 그 장면이 내게는 유난히 근사하 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단순히 아 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 라, 하루가 저물어 가는 그 순간에 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순간을 바라보 는 시선의 변화를 기록한다. 빛과 자 연이 만들어내는 경계에서 잠시 멈 추어 바라본다. 어쩌면 우리가 지나 치고 있던 순간들 속에 가장 조용 한 위로가 머물고 있을지도 모른다.

1312 노을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붉게 물 들었던 하늘은 이내 어둠에 자리를 내어주고, 그 순간을 이루던 빛과 색 은 서서히 사라진다. 하지만 짧게 스 쳐 간 풍경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 아 또 다른 감각으로 이어진다. 우리 는 매일 무언가를 지나쳐 살아간다. 반복되는 하루와 익숙한 풍경 속에서 변화는 때때로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 큼 조용하게 일어난다. 노을을 바라보 는 일은 그 흐름 속에서 잠시 걸음을 늦추고,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고 있 음을 알아차리는 일과 닮아 있다. 낮 과 밤의 경계에서 나는 사라지는 것 보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에 주 목한다. 모든 순간은 머무르지 않기에 저마다의 빛을 가진다. 그리고 저무 는 빛을 바라보는 동안, 지나가는 것 들을 기꺼이 보내주는 마음과 그 안 에서 발견하는 작은 위로를 마주한다.

1716 REFLECTION 02 반사된 풍경은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 은 듯 보이지만, 원래의 모습을 완벽 하게 재현하지는 않는다. 수면의 흔들 림과 주변의 조건에 따라 풍경은 끊 임없이 달라지고, 때로는 실제보다 더 단순하거나 낯선 형태로 다가온다. 그 안에서 자연은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 면서도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익숙한 것들을 이미 알고 있 다고 생각하며 바라보곤 한다. 그러나 조금 다른 위치에서 바라보거나, 평소 와 다른 방식으로 마주하면 당연하게 여겼던 풍경에서도 새로운 모습을 발 견할 수 있다. 물에 비친 장면은 대상 을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우리가 경험 하는 세계 또한 달라질 수 있음을 보 여준다. 물 위에 풍경이 비치는 순간, 익숙한 세계는 낯선 모습으로 펼쳐진다. 하 늘과 나무, 주변을 둘러싼 풍경은 수 면 위에서 또 하나의 장면이 되어 현 실과 나란히 놓인다. 분명 같은 풍경 에서 비롯되었지만, 물에 담긴 모습 은 원래의 세계와는 조금 다른 인상 을 남긴다. 나는 그 두 세계가 마주하 는 장면을 바라본다. 실제로 존재하 는 풍경과 물 위에 나타난 이미지, 그 사이에는 눈에 보이면서도 손에 잡 히지 않는 거리가 있다. 수면이 잔잔 할 때는 풍경이 선명하게 담기고, 작 은 움직임이 더해지면 형체는 이내 흐려지거나 일그러진다. 하나의 풍경 은 바라보는 표면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물 위에 비친 자 연은 익숙한 대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마주하게 하며, 내가 보고 있다고 믿 었던 세계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1918

2120 Another world unfolds upon the water, resembling our own. 물 위에는 현실과 닮은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2322

2524 03 FILTER 잎 사이로 드리운 햇살은 작은 틈을 따라 흩어지고, 가지와 잎의 윤곽을 따라 서로 다른 밝기와 그림자를 만들 어 낸다. 같은 나무 아래에서도 빛이 닿는 곳과 닿지 않는 곳은 각기 다른 표정을 갖는다. 나는 빛이 자연을 통 과하는 방식에 시선을 둔다. 잎의 가 장자리를 따라 번지는 밝음과 그 뒤 에 드리워진 어둠, 빛을 등진 채 선명 하게 드러나는 식물의 형태는 익숙했 던 대상을 새로운 모습으로 보여 준 다. 빛은 사물을 비추는 동시에 일부 를 감추며, 그 사이에서 이전에는 눈 여겨보지 않았던 장면을 드러낸다. 자연은 빛을 받아들이며 저마다의 모 습을 만들어 낸다. 그 안에서 빛은 단 순히 풍경을 밝히는 역할을 넘어, 내 가 바라보는 장면을 구성하는 또 하나 의 요소가 된다. 역광 앞에 선 나뭇잎 은 때로 색을 잃은 실루엣으로, 때로 는 가장자리가 밝게 빛나는 섬세한 형 태로 나타난다. 빛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대상의 인상은 크게 달라 진다. 평소에는 쉽게 지나쳤던 잎맥과 가느다란 줄기까지 빛을 통해 새로운 윤곽을 드러낸다. 이보이는 것과 보이 지 않는 것은 분리되어 있기보다 하나 의 풍경 안에서 함께 존재한다. 빛이 나뭇잎 사이를 통과하듯, 나의 시선도 익숙한 풍경을 지나며 새로운 장면에 닿는다. 모든 것을 선명하게 드러내지 않아도 그 안에는 충분히 바라볼 것이 있다. 빛이 남긴 작은 흔적을 따라가 며, 나는 자연이 보여 주는 수많은 모 습과 그 사이에 놓인 아름다움을 발견 한다.

2726

2928 Where light seeps t h r o u g h , n a t u r e reveals another face. 빛이 스며드는 곳마다 자연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3130

3332 04 OPEN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시야 는 어느새 멀리까지 이어진다. 구름 이 천천히 흘러가는 맑은 하늘과 끝 없이 펼쳐진 풍경은 일상의 좁은 시 야에서 벗어나 주변을 새롭게 바라보 게 한다. 특별한 장면이 없어도 그곳 에는 충분히 바라볼 만한 것들이 있 다. 나는 넓게 펼쳐진 자연 앞에서 풍 경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 을 느낀다. 가까이에 있는 사물 하나 하나를 살피기보다 시선이 닿는 곳까 지 천천히 눈을 움직이고, 하늘과 땅 이 이루는 넓은 공간을 한 장면으로 받아들인다. 그 안에서는 작은 것과 큰 것, 가까운 것과 먼 것이 함께 어우 러지며 하나의 풍경을 완성한다. 자연 의 넓이는 단순히 눈앞에 펼쳐진 공 간의 크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선 이 멀리 뻗어 나갈수록 마음에도 새 로운 여유가 생긴다. 나는 그 열린 풍 경 속에서 일상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 했던 가벼움과 자유로움을 발견한다.

3534 하늘은 어떤 모습으로도 머물러 있지 않는다. 맑게 갠 날에는 푸른색이 깊 게 펼쳐지고, 구름이 드리운 날에는 그 형태와 농담에 따라 서로 다른 표 정을 짓는다. 넓은 하늘 아래에서 자 연은 특별한 설명 없이도 스스로의 모 습을 드러내며, 바라보는 이에게 각자 의 감각으로 받아들일 여지를 남긴다. 우리는 때때로 무언가를 이해하고, 정 리하고, 의미를 찾으려 애쓴다. 그러 나 모든 순간에 분명한 답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눈앞에 펼쳐진 풍 경을 바라보고, 바람이 지나가는 방향 을 느끼며, 지금의 공간에 자신을 맡 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 있다. 넓게 열린 자연을 바라보며 나는 시 선을 멀리 두는 일이 마음의 여백 을 만드는 일과 닮아 있다고 생각한 다. 무언가를 더 채우기보다 잠시 비 워 두는 것, 서둘러 의미를 찾기보다 풍경이 건네는 감각을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 그렇게 자연 앞에서 시야 를 넓히는 일은 나 자신에게도 조금 더 넓은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 된다.

3736 Sometimes, simply looking without filling the moment is enough. 때로는 아무것도 채우지 않은 채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3938

4140 B E T W E E N L I G H T

4342 우리는 수많은 순간을 지나며 살아간다. 빠르 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어떤 풍경은 기억에 남 고, 어떤 순간은 알아차릴 새도 없이 사라진다. 그 러나 잠시 걸음을 늦추고 바라보면, 익숙한 일 상 속에도 저마다의 빛과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저무는 하늘과 물 위에 비친 풍경, 나뭇잎 사이 로 스며드는 빛과 끝없이 펼쳐진 자연은 모두 다 른 모습으로 다가왔지만, 그 안에는 잠시 머물 러 바라보는 시간이 있었다. 그 순간들을 기록하 며 자연은 단순히 눈앞에 놓인 풍경을 넘어, 세상 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비추는 존재가 되었다. 모든 풍경은 지나가고, 모든 빛은 변하지만 그 안 에서 발견한 감각은 마음에 남는다. 이제 다시 일 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이전에는 지나쳤던 작은 장 면들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05 STILL

44 Limi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