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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 HERITAGE BOOK
100 50Beyond Toward 50년의 혁신을 넘어 100년의 미래를 향해
President’s Letter 22 PRESIDENT'S LETTER
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AI)이 기술과 산업을 넘어 우리 삶과 사회 전반을 바꾸는 거대한 문명 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50년간 ETRI는 대한민국 ICT 발전의 역사와 함께해 왔습니다. 이제 ETRI는 지난 반세기의 성과를 넘어 새로운 50년을 향한 또 한 번의 도전을 시작합니다. AI, 피지컬 AI, 입체통신, 공간미디어, ADX 융합 등 미래 전략기술을 중심으로 국가가 필요로 하는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명확한 임무 중심의 연구개발을 통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가겠습니다. 아울러 대학, 정부출연연구원, 산업계와 경계를 넘어 협력하는 개방형 R&D 플랫폼을 구축하고, 연구자들의 창의와 도전이 마음껏 발휘되는 연구환경을 만들어 탁월한 연구성과가 산업과 사회의 혁신으로 이어지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기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AI와 디지털 기술이 일손을 돕고, 이동의 불편과 장애를 극복하며, 더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열어주는 ‘사람을 위한 기술’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번 창립 50주년을 맞아 ETRI가 만든 헤리티지 북(Heritage Book)은 그 의미가 크다 하겠습니다. “50년의 혁신을 넘어 100년의 미래를 향해”라는 부제처럼 더욱더 연구개발에 정진해 지난 50년의 도전과 성취를 디딤돌 삼아, 국민과 함께 새로운 50년을 열어가겠습니다. “AI·DX 혁신으로 이끄는 함께 사는 따뜻한 세상” ETRI가 기술로 만들어 갈 더 나은 미래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장 박 세 웅 23ETRI HERITAGE BOOK
Contents
00 President’s Letter 00 Highlights ETRI를 기록한 시선과 50년을 대표하는 기술을 만납니다. 00 Heritage ETRI를 만든 시간과 기술,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연구자 정신을 돌아봅니다. 00 Future 새로운 비전과 함께 ETRI가 향할 미래를 살펴봅니다. 00 Appendix
Chapter 1 Highlights
00 Headlines 00 Museum
Headlines ETRI는 1976년 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로 설립된 이후 대한민국 ICT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지난 반세기 동안 쌓아온 ETRI의 도전과 영향력을 언론매체는 어떻게 바라보고 기록했을까. 『ETRI 50년사』에서 발췌한 기사들을 통해 기록을 모았다. 농어촌 교환기 국내개발 추진 정부는 농어촌 전자교환기 (Rural ESS)를 외국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국내 기술로 자체 개발해 보급할 방침이다. 체신부는 우리 실정에 맞는 기종 개발이 필요하다고 보고 한국전기통신연구소에 연구개발을 의뢰했다. 기술과 자금 부담이 있으나 자력 개발을 확정했으며, 소요 예산은 약 2백억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매일경제> 1982. 01. 11. 초대형 첨단기술 전전자교환기 세계 9번째 실용화 성공 국산 전전자교환기 TDX가 개발돼 본격적인 양산·보급 체제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가 통신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한국전기통신연구소는 시험 운용을 통해 수입 제품과 동등한 성능을 확인했으며, 올해 2만 4천 회선, 내년 18만 9천 회선을 공급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대규모 외화 절감과 통신기술 자립, 정보산업 육성 및 해외시장 진출 가능성도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경향신문> 1985. 05. 28. 국내서도 「인공지능」 연구 활발 국내 인공지능(AI) 연구가 활기를 띠는 가운데, 오는 12월 7일 과기원에서 인공지능연구회 창립총회 및 학술발표회가 열린다.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지닌 AI는 의료 진단, 번역 등 전문가 시스템의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인 국내 학계는 이번 연구회 발족을 통해 20여 명의 소수 전문가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공동 연구를 추진함으로써, 한국형 AI 기술 개발을 앞당기는 구심점을 마련할 계획이다. <경향신문> 1985. 11. 30. 1980s 42 HIGHLIGHTS
전전자교환기 국내개발 성공 체신부는 무주 등 4개 지역에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된 전전자교환기 TDX- 1 2만 4천 회선을 개통하며 본격적인 국산 교환기 시대를 열었다. 이는 한국전자통신연구소가 10년간 240억 원을 투입해 이뤄낸 결실로, 한국은 세계 10번째 자체 기술 보유국이 됐다. 정부는 올해 18만 9천 회선을 전국에 추가 보급하고, 삼성·금성 등 4개사와 공동으로 대용량 도시용 교환기 국산화 및 수출 전략 육성에도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매일경제> 1986. 03. 14. 세계 최대 용량 전화교환기 개발 국내 기술로 세계 최대 용량의 전화교환기가 개발되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 TDX개발단은 12일 서대전전화국에서 실시한 국산 전전자교환기 TDX-10의 상용시험에서 선진국의 2배 수준인 150만 BHCA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이는 1시간에 150만 통의 전화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으로, 독일 지멘스사의 기록을 넘어선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이 제품은 ISDN 기능까지 탑재되어 더욱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경향신문> 1991. 01. 13. 차세대 반도체소자 세계 첫 개발 한국전자통신연구소는 세계 최초로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를 이용한 수직 구조의 차세대 D램 핵심 소자를 개발했다. 이 기술은 기존 평면 소자 대비 면적을 50% 이상 줄이고 속도는 3배, 전력 소모는 10분의 1로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이를 통해 256메가 및 기가비트 D램의 조기 개발이 가능해졌으며, 생산 기술 위주였던 한국 반도체 산업이 독자적인 원천 기술까지 확보하며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중요한 전기가 될 전망이다. <경향신문> 1991. 05. 01. 1990s 43ETRI HERITAGE BOOK
CDMA방식 디지털이동전화 상용서비스 개시 세계 첫 「꿈의 통화」시대 열었다 이날은 우리나라 디지털 이동통신의 원단(元旦)으로 기록될 것이다. 84년 아날로그 방식의 이동전화가 등장한지 불과 12년 만의 일이다. (…) CDMA 기술은 아날로그 방식보다 10배, TDMA보다도 3배 이상 가입자를 수용할 수 있어 유한한 자원인 주파수를 훨씬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따라서 이동전화의 대중화를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 이제 국내에서 CDMA 시스템을 개발함으로써 이동전화설비는 오히려 국산이 더 적합하고 값싸게 돼 국내 통신장비업계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향신문> 1996. 04. 20. 이동전화 초고주파칩 국내개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휴대전화의 무게와 가격, 전력 소모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초고주파 집적회로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통화 시험에 성공했다. 이번에 개발된 CMOS 칩은 기존 대비 가격은 10분의 1, 전력 소모는 50% 수준으로 줄여 배터리 수명을 늘려준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핵심 부품의 국산화로 국내 단말기의 가격 경쟁력 제고와 세계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 주도권 확보가 기대된다. <매일경제> 1999. 08. 04. 한국 잇단 승전보 IT 분야 표준 경쟁에서 한국이 약자만은 아니다. 첨단 기술들을 속속 국제 표준에 편입시키면서 적지 않은 로열티 수익까지 올리고 있다. IT 표준전쟁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 바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다. <중앙일보> 2003. 04. 23. 길 안내 척척 로봇 말솜씨 제법이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는 자동 음성통역 기술을 개발 중이다. 외국 여행사 직원과의 여행 상담이나 호텔 예약 정도는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동시통역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중앙일보> 2003. 10. 09. 2000s1990s 44 HIGHLIGHTS
한국전자통신연 ‘벤처 모교’ 됐다 ‘벤처기업의 요람’이 있다. 대덕연구단지에 자리 잡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다. 1977년 설립된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ETRI는 지금까지 1백 40여 개의 벤처기업을 배출했다. 단일기관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중앙일보> 2005. 12. 03. 기지국 간에 끊임없이 현란한 ‘정보 패스’ 와이브로는 지난해 삼성전자·KT·한국전자통신 연구원(ETRI) 등이 공동으로 개발한 국산(國産) 기술. (…) 서비스가 어느 정도 활성화되면 VoIP(인터넷 전화)·텔레매틱스(자동차 통신)·동영상 대화 등의 기능을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 통화 요금이 비싼 이동통신을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올 수 있다는 의미다. (…) 와이브로가 한국을 먹여 살릴 새로운 통신 기술이 될 것이라는 희망 섞인 기대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조선일보> 2006. 03. 15. 무선 전송 ‘세계 신기록’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이동통신망으로 3.6기가 비피에스(Gbps)의 속도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최첨단 무선 전송기술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했다고 11일 밝혔다. 이 기술은 현재 국제규격으로 정해진 차세대 이동통신(4세대)의 무선 데이터 전송속도(시속 3km 이동 시 최저 1Gbps)보다도 3배나 빠르다. <중앙일보> 2007. 10. 11. 45ETRI HERITAGE BOOK
전자통신연, 4세대 시스템 ‘LTE 어드밴스드’ 첫 시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시제품 개발을 완료한 4세대 시스템 ‘LTE 어드밴스드’를 세계 최초로 시연한 것은 이동통신 강국의 위상을 재확인시켰다는 의미가 있다. 나아가 앞으로 세계적으로 모바일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만큼 이동통신 분야에서 세계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세계일보> 2011. 01. 25. 퀄컴도 고개 숙인 ETRI… 특허경쟁력 세계 1위 한국의 휴대폰 제조회사로부터 매년 거액의 특허료를 챙겨갔던 퀄컴으로부터 특허료를 받았던 국내 연구소가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원장 김흥남·사진)이다. 1980년대 전전자교환기(TDX)를 국산화, 전화 통화 적체를 해소한 이 연구원은 1990년대 들어 부호분할다중접속기술(CDMA) 상용화를 주도했다. 이 연구원이 ‘전 세계 연구소·대학·정부기관’ 가운데 특허 경쟁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경제> 2012.04.04. 한국의 5G, 자율차·드론시장 움직인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5G 기가통신연구본부는 SK텔레콤과 함께 ‘서비스 지연속도’를 지금의 10분의 1로 단축시킨 5G 이동통신 핵심 기술인 ‘저(低)지연 기술’ 개발과 검증에 성공했다고 30일 밝혔다. <서울신문> 2016. 06. 30. 2010s 46 HIGHLIGHTS
영어 음성 인식률 90%… 초등학생들 ‘AI펭톡’으로 영어회화 배운다 전국 6,000여 개 초등학교에 인공지능(AI) 영어 원어민 선생님이 투입된다. 교육부와 EBS가 기획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주축이 돼 개발한 영어 말하기 연습 시스템 ‘AI펭톡’이다. 초등학교 3∼6학년 학생들이 활용할 수 있는 이 대화형 원어 교육 시스템은 학생과 여러 주제를 놓고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학생의 말을 정확히 인식하고 발음과 강세는 물론이고 표현까지 세부적으로 평가해 스스로 영어를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동아일보> 2021. 02. 05. 전자통신연, 인천시와 손잡고… 6G 통신-UAM 실증도시 구축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인천시, 인천 옹진군, 인천경제자유구역청 등 인천 소재 6개 기관과 함께 6세대(6G) 입체통신·개인용 비행체(PAV)·도심항공교통 (UAM) 실증 도시 구축에 나선다고 8일 밝혔다. 현재 6G 핵심 기술개발사업의 주관 기관인 ETRI는 인천시에서의 시험 및 실증을 통해 그간 개발한 6G 입체통신 기술을 고도화하고, 실제 통신 구현에 나선다. <동아일보> 2023. 05. 09. ‘3D 관제’ 자율주행버스 대전∼세종 누빈다 대전시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 (ETRI)은 지역 자율주행 전문 기업과 함께 대전시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 여객 운송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1일 밝혔다. (…) 자율주행 서비스는 차량 기술에 관제 시스템과 도로 인프라가 결합한 입체적인 안전 체계를 갖춘 게 특징이다. (…) 관제센터의 고정밀 3D 관제, 도로 인프라의 V2X 감지, 차량 자체 센서 등이 유기적으로 연동해 보이지 않는 위험까지 예측할 수 있는 주행 환경을 구현했다. <동아일보> 2026.02.02. 2020s 47ETRI HERITAGE BOOK
Museum ETRI는 지난 반세기를 대표했던 12개의 성과를 선정했다. 통신의 자유를 가져오고, 반도체 강국의 초석을 만들어 준 기술부터 대한민국이 ICT 강국으로 도약하도록 도왔던 기술과 AICT 기술 패권의 경쟁을 주도한 기술까지. 그 파급효과는 316조 원에 달한다. 시대를 개척해 온 대표 기술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박물관을 거닐 듯, ETRI의 기술들을 살펴본다. TDX TDX(Time Division Exchange)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 디지털 전전자교환기이다. 1976년 정부가 전자교환기의 ‘자체개발·저가보급’을 결정하면서 ETRI는 개발에 착수했고, 수차례 시험기를 거쳐 1986년 상용화에 성공했다. TDX는 1가구 1전화 시대를 열며 국내 통신망의 디지털화를 이끈 대표 기술로 평가받는다. 48 HIGHLIGHTS
CDMA 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는 여러 사용자가 하나의 주파수를 공유하는 디지털 이동통신 기술이다. 당시 상용 사례가 없던 기술이었지만 ETRI는 과감한 개발에 도전했고, 1996년 세계 최초 상용화에 성공했다. CDMA는 대한민국을 이동통신 강국으로 도약시키는 전환점이 됐다. W-CDMA W-CDMA(Wideband Code Division Multiple Access)는 음성과 데이터를 동시에 고속 전송하는 3세대 이동통신 기술이다. ETRI는 차세대 이동통신 핵심 원천기술과 단말·기지국 기술을 개발해 국내 3G 상용화를 지원했으며, 이동통신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기여했다. DRAM DRAM(Dynamic Random Access Memory)은 전력 소모가 적고 대용량 저장이 가능한 초고집적 메모리 반도체이다. 1985년 국가 초고집적 반도체 기술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ETRI는 핵심 기술 개발에 참여했으며, 1989년 4M DRAM을 시작으로 16M, 64M, 256M DRAM 개발에 성공했다. 이는 우리나라가 메모리 반도체 강국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됐다. 49ETRI HERITAGE BOOK
DMB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는 영상과 음성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이동 중에도 시청할 수 있는 디지털 방송 기술이다. ETRI는 국내 독자 기술을 적용해 2003년 세계 최초로 지상파 DMB 개발에 성공했으며, 모바일 방송 시대를 여는 계기를 마련했다. WiBro WiBro(Wireless Broadband Internet)는 이동 중에도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휴대인터넷 기술이다. ETRI는 정부와 함께 독자 기술 개발에 착수해 2004년 세계 최초로 WiBro를 개발하고 시범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선보였다. 이후 국제표준 채택을 이끌며 국내 이동통신 기술의 위상을 높였다. 50 HIGHLIGHTS
4K UHD 4K UHD(Ultra High Definition)는 기존 HD보다 4배 높은 해상도를 구현하는 초고화질 방송 기술이다. ETRI는 영상 압축과 송수신, 방송 시스템 기술을 개발해 세계 최초 지상파 UHD 방송 상용화를 지원하며 차세대 방송기술 발전을 이끌었다. LTE/LTE-A LTE(Long Term Evolution)와 LTE-Advanced는 초고속 데이터 전송을 지원하는 4세대 이동통신 기술이다. 스마트폰 확산으로 급증한 데이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2010년, ETRI는 세계 최초 LTE-Advanced 기술을 개발했으며, 기존 LTE보다 크게 향상된 성능으로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 경쟁력을 확보했다. 51ETRI HERITAGE BOOK
음성인식/통번역 ETRI는 1990년대부터 한국어 음성인식과 기계번역 핵심기술을 연구해 왔다. 이를 기반으로 2012년 모바일 자동통역 앱 지니톡(GenieTalk)을 개발했으며, 여행 환경에 특화된 높은 번역 성능과 편의성으로 출시 두 달 만에 1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OLED/AMOLED OLED(Organic Light Emitting Diode)와 AMOLED(Active Matrix OLED)는 스스로 빛을 내는 유기발광소자를 활용한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이다. ETRI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OLED 조명, 마이크로디스플레이 공정 등 핵심 원천기술을 개발하며 국내 OLED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 52 HIGHLIGHTS
공간미디어 공간미디어(Spatial Media)는 현실 공간과 디지털 정보를 결합해 몰입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차세대 미디어 기술이다. ETRI는 초실감 공간미디어 생성과 전송, 서비스 기술을 개발하며 메타버스와 확장현실(XR) 시대를 이끌 핵심 기반기술을 확보했다. 5G/5G+ 5G는 초고속·대용량·초저지연·고신뢰를 구현하는 5세대 이동통신 기술이다. ETRI는 5G 핵심기술과 스몰셀, 5G-TSN 네트워크 기술 등을 개발하며 자율주행, 스마트팩토리 등 미래 산업을 위한 통신 기반을 마련했다. 53ETRI HERITAGE BOOK
Chapter 2 Heritage
00 소명 00 도전 00 축적 00 확산 00 연구자정신
62 HERITAGE · 소명
소명 ETRI의 연구에는 소명이 담겨있다. 국가의 부름에 응답해 세상에 필요한 기술을 만들겠다는 책임감도 함께 녹아있다. 기술이 부족하던 시절, 세계를 따라가는 것조차 쉽지 않던 시기에 ETRI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기술이라면 무엇이든 연구했다. 통신, 반도체, 방송, 컴퓨터 등 시대의 요구에 응답하며 대한민국의 ICT 기반을 만들어 왔다. Responder 63ETRI HERITAGE BOOK
전화 한 통을 위해 수년을 기다리던 시대, ETRI 연구진은 실패하면 어떤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서약서에 이름을 올렸다. 훗날 ‘TDX 혈서’라 불린 그 결의는 전화 적체를 끝내고 훗날 대한민국의 통신 주권을 세운 출발점이 됐다. 한 장의 서약서, 한 나라의 통신을 깨우다 전화 적체를 끝낸 한국형 전전자교환기 TDX 개발 이야기 Story ❶ 64 HERITAGE · 소명
실패하면 어떤 처벌도 받겠다, TDX 혈서 1982년 3월 15일, 체신부 회의실에서 TDX 개발 대책회의가 열렸다. 최광수 체신부 장관은 한국전기통신공사와 연구소 책임자들에게 국산화를 일치단결해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당시 계획은 5년간 연인원 1,300명, 연구비 240억 원을 투입하는 국가적 프로젝트였다. 큰 공장 하나를 세우는 데 약 50억 원이 들던 시절이었다.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연구에 이처럼 큰 예산을 맡기는 만큼 정부가 요구한 책임 또한 무거웠다. 회의 뒤 연구소에는 한 장의 서약서를 제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연구단 연구원 일동은 최첨단 기술인 시분할 전전자교환기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만약 개발에 실패할 경우 어떠한 처벌이라도 달게 받을 것을 서약한다.” 양승택 개발단장이 문안을 작성했고, 최순달 소장과 개발 책임자들이 서명했다. 실제 피로 쓴 문서는 아니었지만, 나라의 통신 미래를 걸고 물러설 곳 없이 임하겠다는 비장함 때문에 붉은색 인주가 묻어나는 지장은 훗날 사람들이 이를 ‘TDX 혈서’라고 불렀다. 서약은 두려움의 표시만은 아니었다. 최순달 소장은 개발 성공에 대한 자신이 있었기에 각서가 문제 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연구진에게도 그것은 처벌의 문서라기보다 자신들이 맡은 기술이 국민의 기다림을 끝내고 국가의 길을 열어야 한다는 소명의 증표였다. 외국 기술을 사 오는 편이 빠르고 안전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연구진은 돌아갈 다리를 스스로 끊었다. ‘반드시 우리 손으로 만든다.’ 한 장의 서약서는 수백 명을 하나의 목표로 묶는 결의문이 됐다. 전화 한 통이 재산이던 시대, 국가가 답을 묻다 1970년대 후반, 전화는 누구나 원한다고 곧바로 놓을 수 있는 생활필수품이 아니었다. 경제성장과 도시화로 가입 신청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통신 시설의 증설 속도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전화를 신청하고도 수년을 기다리는 ‘전화 적체’가 일상이었고, 전화 한 회선에 웃돈이 붙어 거래될 만큼 전화는 귀한 재산목록으로 여겨졌다. 기업 활동과 행정, 국민의 일상을 잇는 통신망이 부족하다는 것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병목이었다. 당시 선택지는 선진국의 교환기를 들여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입 장비에 계속 의존하면 막대한 외화가 빠져나가고, 통신망의 확장과 유지보수마저 외국 기술에 매일 수밖에 없었다. 1976년 정부가 전자교환기의 ‘자체 개발·저가 보급’을 결정한 배경에는 바로 이 절박함이 있었다. ETRI의 전신인 한국전기통신연구소는 96회선 1차 시험기와 200회선 2차 시험기를 만들며 가능성을 확인했고, 1981년에는 전화국 현장시험을 위한 500회선급 3차 시험기 개발에 들어갔다. 작은 시험기를 거듭 만들며 축적한 경험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의 씨앗이 됐다. 그러나 시험기와 전국 통신망을 책임질 상용 교환기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과제였다. 수백 개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한 몸처럼 움직이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한 치의 오차 없이 맞물려야 했다. 한번 멈추면 수많은 국민의 전화가 동시에 끊어질 수 있기에 극도의 신뢰성도 요구됐다. 세계의 몇몇 나라만 보유한 기술을 경험도 장비도 넉넉하지 않은 한국이 독자 개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것은 연구과제라기보다 전화 적체를 풀고 통신 주권을 세우라는 국가의 부름에 가까웠다. 65ETRI HERITAGE BOOK
야전침대와 라면, 수백 개의 기술을 하나로 TDX는 어느 한 사람의 천재성만으로 완성할 수 있는 기계가 아니었다. 전자·통신·소프트웨어 등 서로 다른 분야의 기술을 통합해야 하는 종합 시스템이었다. 가입자 회로와 교환망, 신호처리, 운용·유지보수 기능을 각 팀이 개발하고, 마지막에는 모든 장치와 프로그램이 하나의 교환기처럼 정확히 작동해야 했다. ETRI는 개발지침과 도구를 마련하고 ‘시스템 시험-종합시험-환경시험’으로 이어지는 단계별 검증을 수행했다. 여러 팀의 진도를 맞추고 오류의 원인을 찾는 통합 과정은 새 기술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고됐다. 개발실에는 야전침대가 놓였고, 연구진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밤을 밝혔다. 일정이 몰리면 며칠 동안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문제가 생기면 하드웨어 연구자와 소프트웨어 연구자가 한자리에 모여 원인을 좁혀 갔다. 번개가 칠 때마다 가입자 회로의 부품이 손상되는 문제, 전체 장치에 정확한 시각을 나눠 주는 클록 분배 문제처럼 실험실에서는 보이지 않던 장애가 현장에서 잇따랐다. 연구진은 고온을 비롯한 가혹한 환경과 실제 운용 조건을 견디도록 시험하고 또 고쳤다. 실패의 기록은 다음 시험의 설계도가 됐다. 1982년 완성된 500회선급 3차 시험기는 독립적인 소형 교환기의 면모를 갖추며 TDX-1 설계의 토대가 됐다. 1984년에는 9,600회선 용량의 실용시험 모델을 개발해 시범 운용과 인증시험을 거쳤다. 수많은 기능이 한꺼번에 충돌하는 순간마다 연구진은 서약서에 담았던 각오를 떠올렸다. 개인의 밤과 주말을 국가의 시간으로 내어준 끝에, 기술은 더 이상 도면 속 가능성이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를 실제로 이어 주는 시스템으로 변해 갔다. ‘1가구 1전화’를 열고, 기술자립의 문을 넓히다 1986년 3월, 가평·구리·무주·칠곡 네 지역에서 총 2만 4,000회선 규모의 TDX-1 상용교환기가 개통됐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열 번째로 전전자교환기를 개발한 나라가 됐다. 이어 농어촌형 TDX-1A와 2만 2,528회선급 TDX- 1B가 개발돼 1989년 말까지 40개 전화국에 36만 7,000회선이 공급됐다. 1988년에는 국내 통신망에 남아 있던 수동교환기가 모두 철거됐다.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던 전화가 가정으로 빠르게 들어가며 ‘1가구 1전화 시대’가 현실이 됐다. 도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ETRI는 1987년부터 5년간 총연구비 560억 원과 2,000명 이상의 연구인력을 투입해 10만 가입자를 처리하는 TDX- 10을 개발했다. 1991년 전국 주요 전화국에서 상용 교환이 시작됐고, 이후 음성뿐 아니라 데이터·화상 등 다양한 서비스를 수용하는 기반으로 확장됐다. TDX 계열 기술은 1985년부터 1997년까지 약 4조 원의 국내 생산 유발과 약 41억 달러의 수입 대체 효과를 냈다. 1991년부터 1997년까지 러시아·베트남 등 15개국에 392만 회선을 수출해 약 5억 7,000만 달러의 실적도 올렸다. TDX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거대한 교환기만이 아니다. 국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 앞에서 연구자가 자신의 전문성을 공적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서로 다른 조직과 기업이 하나의 목표 아래 끝까지 완성해 낸 경험이다. ‘혈서’라 불린 서약서는 오늘의 연구문화로 그대로 되풀이될 방식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의 불편을 기술로 해결하고 국가의 미래를 우리 손으로 열겠다는 소명은 여전히 유효하다. 전화 적체를 끝낸 TDX의 신호음은 그렇게 한국 ICT 기술자립의 출발을 알렸고, ETRI가 국가의 부름에 답하는 연구기관임을 역사에 새겼다. 66 HERITAGE · 소명
‘반드시 우리 손으로 만든다.’ 한 장의 서약서는 수백 명을 하나의 목표로 묶는 결의문이 됐다. 67ETRI HERITAGE BOOK
우리나라 최초의 메모리 반도체인 32K ROM 개발에 성공한 한국전자기술연구소는 1982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반도체 생산시설을 가동했다. 대한민국 반도체, 경쟁력의 씨앗이 되다 Story ❷ 반도체 후발 주자였던 우리나라는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기술을 스스로 확보해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 앞에 나섰다. ETRI는 국내 산학연과 함께 ‘초고집적 반도체 공동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1989년 4M DRAM, 1991년 16M DRAM을 잇달아 개발했다. 그리고 1992년과 1994년에는 각각 세계 최초로 64M DRAM과 256M DRAM을 선보이며 글로벌 시장에 한국의 기술력을 각인시켰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과 경험은 우리나라가 반도체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기틀이 됐다. 그 역사의 순간을 사진으로 살펴본다. 68 HERITAGE · 소명
(위) 1989년 2월, ETRI가 0.8 μm 선폭의 4M DRAM 공동개발에 성공했다. 4M DRAM의 조기개발로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과의 반도체 기술격차를 6개월 정도로 좁힐 수 있었다. (아래) 1991년 3월, ETRI는 16M DRAM을 당시 반도체 최고 기술국이던 일본과 비슷한 시기에 개발함으로써 국내 최고 반도체 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69ETRI HERITAGE BOOK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차관으로 도입된 반도체 연구 장비로, 향후 ETRI가 주도한 초고밀도 DRAM(4M·16M·64M) 국가 공동 개발과 K-반도체 자립의 기술적 토대가 됐다. 1991년 5월 24일, 16M DRAM 공동개발 경과 보고회를 가졌다. 70 HERITAGE · 소명
1992년에는 64M DRAM이 세계 최초로 개발됐다. 일본의 기술력을 따라잡는 순간이었다. 당시 미국의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모토로라, 인텔과 일본의 히타치, 후지쯔, NEC 6개사가 글로벌 반도체 수요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었기에,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 기록을 세우자 경쟁사들은 예상외의 결과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1994년에는 세계 최초로 256M DRAM 개발에도 성공해 그 이후 현재까지도 한국은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71ETRI HERITAGE BOOK
광무선연구본부 권용환 본부장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반도체가 이제 우주로 향한다.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방사선과 극한의 온도, 발사체의 충격과 진동까지 견뎌야 하는 우주항공 반도체. 아직 국내 기술 기반이 충분하지 않은 분야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경쟁력을 가진 대한민국에는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현재 ETRI를 중심으로 우주항공 반도체 전략연구단이 출범했다. 1980년대 대한민국 반도체의 첫걸음을 함께했던 ETRI가 우주를 무대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었다. Interview 반도체, 우주로 향하다 72 HERITAGE · 소명
73ETRI HERITAGE BOOK
본인의 소개와 현재 하고 계시는 업무를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현재 글로벌TOP 우주항공반도체 전략연구단 단장과 입체통신연구소 광무선연구본부 본부장을 맡고 있는 권용환입니다. 우주항공 반도체 전략연구단이 출범했습니다. 연구단이 출범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과기정통부에서 사회문제 해결과 미래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국가·사회적 현안을 도출하고, 산업계 수요를 반영한 출연연 중심의 융합연구를 추진하고자 2024년 1월, 글로벌TOP 전략연구단 지원사업을 신설했어요. 현재 15개 전략연구단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 중 우주항공반도체 전략연구단은 슈퍼양자컴퓨터, 자율성장 AI휴머노이드, 산화탄소 자원화 및 핵융합 디버터 전략연구단과 함께 선정돼 작년 5월부터 출범하게 됐어요. 우주항공 반도체와 일반 반도체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현재 연구단에서는 어떤 기술을 개발하고 있나요? 우주는 태양과 초신성 폭발 때문에 방사선으로 가득 차 있어요. 그런데 반도체는 방사선에 노출되면 기기의 오작동이나 고장을 유발할 수 있어요. 그래서 우주반도체는 방사선을 견딜 수 있도록 개발돼야 하죠. 또한 발사체를 발사할 때 생기는 충격, 진동, 그리고 온도 등의 우주환경을 견딜 수 있는 높은 신뢰성도 갖춰야 해요. 현재 전략연구단에서는 3개의 세부과제로 나누어서 1세부에서는 우주항공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고, 2, 3세부에서는 우주환경에 잘 버티는지 평가할 수 있도록 각각 내방사선 평가 기술과 우주신뢰성 평가 기술개발을 채택해 추진하고 있어요. ETRI는 전체 전략연구단의 주관사업책임 기관이에요. 사무국을 구축해 24개 기관이 최대한 융합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고, 1세부 우주항공 반도체 기술개발 기관 중 하나로 2종의 통신 반도체와 1종의 영상 반도체를 자체 개발을 추진하고 있어요. 우주라는 극한 환경을 지상에서 완벽하게 재현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연구단에서는 실제 우주 환경을 어떻게 지상에서 검증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주환경 중 방사선과 관련해서는 거대 시설이 필요해요. 다행히 2세부를 맡고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관련 시설들을 보유하고 있어요.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는 양성자와 감마선 조사 시설을 통해 방사선 평가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더불어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만 보유하고 있는 내방사선 검증 프로세스도 국내 환경에 적합하게 도출할 계획이죠.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는 다소 낮은 에너지의 중이온 시험을 진행할 계획이고, 높은 에너지의 중이온 시험은 국제협력을 통해 TAMU의 중이온 가속기를 사용해 진행할 계획이에요. 연간 최소 10일은 시험할 수 있도록 합의했거든요. 사업단 내 우주 반도체의 지상 검증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요. 2027년에는 누리호 6차, 2030년에는 스페이스X를 통해 ‘헤리티지 위성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우주 실증을 위해 계속해서 준비하고 계실 텐데요. 가장 기대되는 점과 가장 긴장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우주반도체를 시작하면서 가장 생소했던 표현이 ‘헤리티지’였어요. 쉽게 말하면 ‘어느 위성에 실어서 동작시켜 봤느냐’는 얘기죠. 지상에서 아무리 방사선과 신뢰성 시험을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국내 반도체 시설뿐만 아니라 인력과 장비 등도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주항공 반도체 분야에서도 충분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어요. 74 HERITAGE · 소명
실제 발사체 발사 때의 충격, 우주 공간에서의 온도, 방사선 등의 실환경에 견디는가는 또 다른 차원의 검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희도 국산 소자·부품의 헤리티지를 쌓기 위해 누리호 6차 연계 실증에 참여하게 됐고, 2027년 하반기 실제 위성에 탑재돼 우주에서 시험받을 예정이에요. TV를 통해서만 누리호 발사 장면을 지켜봤었는데, 우리가 개발한 기술이 그 누리호를 타고 우주로 나간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흥분되는 일이에요. 반면 한 번뿐일 수도 있는 소중한 기회인 만큼, 실제 우주에서 반도체가 제대로 동작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은 가장 긴장되는 부분이에요. 지상에서 할 수 있는 검증을 최대한 철저히 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미국과 유럽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우주항공 반도체 분야에서 후발주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가 이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대한민국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예요. 우주항공 반도체는 올드 스페이스에서 국가 주도의 협소한 시장이었고, 고신뢰도와 활용 헤리티지를 요구했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본격적인 관심을 쏟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미국과 유럽이 시장을 독점해 왔죠. 그런데 2019년 스페이스X가 스타링크를 쏘아 올리면서 발사 비용이 크게 낮아졌고, 뉴스페이스 시대가 열렸어요. 그렇다 보니 우주반도체 시장도 급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국내 반도체 시설뿐만 아니라 인력과 장비 등도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주항공 반도체 분야에서도 충분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어요. 우주항공 반도체는 당장 국민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런 기반 기술을 오랫동안 개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뉴스페이스 시대를 맞아 향후 6G 표준과 연계된 통신 위성 및 국방 정찰, 환경 감시 등의 관측 위성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예측해요. 우주반도체가 신성장 동력산업이 될 수 있는 것이죠. 특히 올해 초 일론 머스크는 스페이스X를 상장시키면서 우주데이터센터 시대 개막을 선언했죠. 최근 지상 내 부지, 전력 및 냉각수 이슈 등으로 가장 핫한 AI 데이터센터까지 우주로 가게 된다면 앞으로 우주산업의 영역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해요. 동시에 우주반도체는 여전히 수출 허가 등 국가별 정책 장벽이 있는 기술이에요. 향후 산업 파급 효과가 큰 핵심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선제적인 기술개발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주항공 반도체 개발이 추후 어떤 산업 분야에도 활용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내방사선 고신뢰성 특성이 요구되는 산업에 파급효과가 큽니다. 국방, 원자력 발전, 항공기, 미래 모빌리티 등의 분야에 활용될 것으로 예상해요. 또한 최근 지상에서 미량 검출되는 중성자에 의한 자동차 급발진 등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데, 향후 훨씬 더 미세 공정 반도체 칩을 활용하게 될 자율주행자동차에도 활용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해요. ETRI는 지난 50년간 국가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개발하며 우리나라를 ICT 강국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이번 연구가 ETRI에 어떤 의미로 남길 바라시나요? 올드 스페이스가 끝나고 뉴스페이스가 시작되는 거대한 변화의 시점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시장이 개화되지 않아 국내 대기업들이 집중투자를 하기 어려운 시점이지요. 이때 대한민국 출연연을 비롯한 산학연의 역량을 총집결해 우주항공 반도체 기술을 개발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해요. 특히 1981년 반도체 실험실을 시작해 1989년 세계 3번째로 4M DRAM을 개발하며 대한민국 반도체의 초석을 놓은 ETRI가 오랜 시간이 지나, 대한민국 우주항공 반도체의 첫발을 내딛게 됐다는 점에서 무한한 감회가 있습니다. 75ETRI HERITAGE BOOK
76 HERITAGE · 도전
도전 ETRI는 늘 도전의 자리에 서 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여도 대한민국의 미래에 필요하다면 가장 먼저 뛰어들었다. 그렇게 ETRI는 세계 최초의 기술, 새로운 산업을 여는 기술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최초’라는 기록을 넘어 우리 기술의 가능성을 증명해 왔다.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 앞에서 한발 먼저 내딛는 것, 그것이 ETRI가 대한민국의 ICT 역사를 써 내려온 방식이다. First Mover 77ETRI HERITAGE BOOK
세 번의 ‘세계 최초’, 이동통신의 길을 바꾸다 CDMA에서 WiBro, LTE-Advanced까지 이어진 ETRI의 도전 Story ❶ 세계가 이미 선택한 길을 따라가는 대신, ETRI 연구진은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기술에 미래를 걸었다. CDMA, WiBro, LTE-Advanced로 이어진 세 번의 ‘세계 최초’는 불가능 앞에서 물러서지 않은 도전과 집념의 기록이다. 78 HERITAGE · 도전
CDMA, 아무도 가보지 않은 방식에 미래를 걸다 1990년 무렵, 이동전화는 더 이상 일부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수요가 급증해 가입자는 8만 명에 이르렀지만, 아날로그 방식은 곧 한계에 부딪혔다. 통화가 끊기고 혼선이 생겼으며 가입 적체도 심해졌다. 디지털로 전환은 피할 수 없었지만 어느 길로 갈 것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유럽의 GSM과 시간분할 방식인 TDMA는 이미 상용화를 앞둔 안전한 선택이었다. 반면 CDMA는 용량과 음질의 잠재력은 컸으나 세계 어느 나라도 상용화하지 못한 미지의 기술이었다. ETRI는 추격자가 되는 안전한 길보다 선도자가 될 수 있는 험한 길을 택했다. CDMA는 아날로그보다 가입자 수용 능력이 10배, TDMA보다 3배 이상 컸다. 1989년 국책사업을 시작한 연구진은 1991년 5월 6일 미국의 작은 벤처기업 퀄컴과 공동개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산업계와 학계의 시선은 냉담했다. 검증되지 않은 기술에 국가의 이동통신 미래를 맡길 수 있느냐는 반대가 거셌다. 연구진의 주 업무가 연구가 아니라 반대론자를 찾아다니며 설득하는 일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상용화 일정은 2년이나 앞당겨졌다. 업체 참여도 늦어졌고 퀄컴의 상세 도면만 기다릴 시간도 없었다. 연구진은 상위 설계서를 바탕으로 하위 설계를 스스로 풀어냈다. TDX-10 교환기 기술을 이동시험 시스템과 결합하고, 프로세서를 이중화해 장애에도 통화가 이어지도록 했다. 연구원과 가족들이 미국 현지에 머물며 시내 곳곳을 돌고, 한국의 ‘CDMA 작전본부’에서는 밤낮없이 오류를 잡았다. 마침내 1994년 4월 17일 ETRI 6연구동에서 KCS-2의 첫 통화가 터졌다. “여보세요, 잘 들립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아무도 실용성을 증명하지 못했던 기술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1995년 6월 9일 상용시험 통화에 성공한 데 이어 1996년 1월 3일 인천·부천에서 세계 최초 CDMA 상용서비스가 시작됐다. 한국은 남이 만든 표준을 따라가는 나라에서 새로운 이동통신 방식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장에 올린 나라가 됐다. TDX가 ‘1가구 한국은 남이 만든 표준을 따라가는 나라에서 새로운 이동통신 방식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장에 올린 나라가 됐다. 79ETRI HERITAGE BOOK
1전화’를 열었다면 CDMA는 ‘1인 1전화’ 시대를 열었다.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정면으로 돌파한 선택은 대한민국을 이동통신 강국으로 바꿨다. WiBro, 달리는 버스를 세계 최초의 무대로 만들다 CDMA의 성공은 연구진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이동하면서도 집의 초고속 인터넷처럼 빠르고 값싸게 접속할 수는 없을까. 당시 이동전화 무선인터넷은 느리고 비쌌으며, 무선랜은 접속 범위를 벗어나면 끊겼다. 정부는 활용이 미미하던 2.3GHz 주파수 대역에 ‘휴대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2003년 1월 ETRI를 중심으로 삼성전자와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참여한 와이브로 프로젝트가 출발했다. 기술 개발과 국제표준 선점을 동시에 추진하는, 또 한 번의 모험이었다. 목표는 책상 위의 접속이 아니었다. 보행하거나 도심의 차량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기지국 사이를 넘나들며 인터넷이 끊기지 않아야 했다. 한정된 주파수에서 많은 데이터를 보내고, 단말기와 2003년 1월 ETRI를 중심으로 삼성전자와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참여한 와이브로 프로젝트가 출발했다. 기술 개발과 국제표준 선점을 동시에 추진하는, 또 한 번의 모험이었다. 80 HERITAGE · 도전
기지국의 상·하향 신호를 모두 안정시켜야 했다. ETRI와 삼성전자 연구진은 매일 밤을 새우며 시제품을 다듬었다. 계획보다 한 달 이상 빠른 2004년 11월 27일, IEEE 802.16e 규격을 적용한 기지국과 단말기로 상·하향 인터넷 접속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그 최초의 순간은 한 달 뒤 움직이는 무대로 확장됐다. 12월 23일 연구진은 시속 20km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1Mbps급 인터넷 접속과 실시간 방송을 끊김 없이 시연했다. 창밖 풍경은 계속 바뀌었지만, 화면 속 영상은 멈추지 않았다. 실험실의 가능성이 실제 도시의 서비스로 건너간 장면이었다. 와이브로는 2006년 상용서비스를 시작했고, 81ETRI HERITAGE BOOK
82 HERITAGE · 도전
최초는 우연이 아니라, 다음 도전을 준비하는 방식 CDMA의 첫 통화, 와이브로가 연결된 달리는 버스, LTE-Advanced의 고속 이동 시연. 세 장면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미 검증된 길을 빠르게 뒤따른 결과가 아니라, 성공 여부가 불투명할 때 먼저 선택하고 끝까지 통합해 낸 결과라는 점이다. CDMA에서 얻은 시스템 개발 역량은 와이브로로, 규격과 표준을 함께 설계한 경험은 LTE와 LTE-Advanced로 이어졌다. 하나의 세계 최초가 다음 세계 최초를 가능하게 했다. ETRI의 도전은 단지 기록을 세우기 위한 경쟁이 아니었다. 더 많은 국민이 더 좋은 통신을 누리게 하고, 우리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게 하려는 집념이었다. 반대와 의심을 설득으로 넘고, 앞당겨진 일정은 밤샘으로 따라잡고, 실험실의 수치는 움직이는 차량 위에서 다시 증명했다. 세상에 처음 공개된 기술의 사진 속에는 장비와 화면만 남아 있지만, 그 화면을 켜기 위해 수없이 실패하고 다시 일어선 연구자들이 있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것은 결국, 아직 길이 없을 때 먼저 걷고 끝내 길을 만들어낸 ETRI의 도전정신이었다. 2007년 국제표준화단체인 ITU-R의 IMT-2000 여섯 번째 세계표준으로 채택됐다. 기술을 만든 뒤 표준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규격과 시스템을 함께 개발하며 세계가 따를 길을 먼저 제시한 도전이었다. LTE-Advanced, 연구원 33명, 몸을 시험도구로 삼다 스마트폰 시대가 다가오자 이동통신의 과제는 다시 바뀌었다. 음성 중심의 3세대 망으로는 폭발하는 영상과 데이터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세계 각국이 4세대 기술 경쟁에 뛰어든 가운데 ETRI는 2006년부터 5년간 LTE- Advanced 통합시스템 개발에 도전했다. 해외 선도기관들이 모뎀 성능과 실내 고정 시연에 집중할 때, ETRI는 단말·기지국·코어망과 응용서비스를 모두 갖추고 실제 이동환경에서 작동하는 ‘완전한 시스템’을 목표로 삼았다. 목표가 높을수록 마지막 통합은 혹독했다. 2010년 11월, 이동컨버전스연구부 연구원 33명은 야근 발령을 받고 밤낮없이 실험실을 지켰다. 실외 시험에서는 연구원들이 단말기를 들고 직접 차량에 올라 끊김과 속도를 확인했다. 몸이 곧 시험도구였다. 서로 다른 계층의 수많은 프로토콜 가운데 단 하나만 어긋나도 통신은 멈췄다. 연구진은 오류가 나타날 때마다 무선전송부터 접속제어, 이동성 관리, 코어망까지 거슬러 올라가 원인을 찾아냈다. ‘최고 속도’라는 숫자보다 더 어려운 것은 이동 중에도 서비스가 살아 있는 통합시스템을 완성하는 일이었다. 2011년 1월 25일, ETRI는 세계 최초로 LTE- Advanced 통합시스템의 실내·실외 연동 서비스를 공개했다. 시제품은 최대 600Mbps, 유효속도 440Mbps를 기록했다. 3세대보다 최대 40배 빠른 속도로 700MB 영화 한 편을 약 9초 만에 내려받을 수 있었고, 실외 이동 중에도 120Mbps를 구현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3D와 고화질 영상을 보는 장면은 4세대 이동통신이 논문이나 모뎀을 넘어 생활 속 시스템이 되었음을 보여줬다. 정확히 말해 이 성과는 단순 LTE가 아니라 그 진화형인 LTE- Advanced 통합시스템의 세계 최초 시연이었다. 83ETRI HERITAGE BOOK
200기가비트, 6G의 문을 열다 세계 최초 200Gbps급 6G 무선링크 시연 Story ❷ 길이 없다는 것은 멈춰야 할 이유가 아니었다. ETRI 연구진은 전파가 멀리 가지 못하고 간섭에 민감한 초고주파의 한계를 정면으로 마주해, 6G의 가능성을 세계 최초의 200Gbps급 무선전송으로 증명해 냈다. 84 HERITAGE · 도전
2030년경 펼쳐질 6G 시대에는 초실감 메타버스와 초연결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와 공중이동체가 한꺼번에 막대한 데이터를 주고받는다. 그 미래를 실현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넓은 주파수 길과 압도적인 전송속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넓은 대역폭을 확보할 수 있는 서브테라헤르츠(Sub-㎔) 대역은 주파수가 높을수록 전파가 멀리 뻗지 못하고, 여러 신호가 겹치면 간섭도 커지는 까다로운 영역이었다. 아직 표준도 완성되지 않은 6G에서 200Gbps를 무선으로 구현한다는 목표는 숫자 하나를 높이는 일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던 시스템을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도전이었다. 연구진은 2020년 자체 6G 비전을 세운 뒤 산·학·연과 미래의 통신 모습을 구체화하고 핵심 원천기술을 축적했다. 2022년부터 열린 6G 원천기술 페스티벌에서는 연구진과 공동연구기관이 아이디어를 공개하고 치열하게 검증했다. 연구실마다 흩어진 기술을 하나의 무선링크로 묶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동일한 주파수 대역에서 네 개 기지국 무선유닛(RU)이 동시에 신호를 보내면, 속도는 늘어도 신호끼리 부딪칠 수 있었다. 대용량 데이터를 순식간에 부호화하고 복호화하는 능력까지 갖춰야 했다. 연구진은 간섭을 피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여러 길을 하나의 초고속도로로 만드는 해법을 택했다. 10㎓ 초광대역에서 각기 최대 50Gbps를 전송하는 네 개 RU를 결합하고, 단말의 정교한 빔형성으로 서로 다른 방향에서 들어오는 신호를 분리했다. 초고주파 편파 다중입출력(MIMO)과 대용량 코딩 기술도 함께 구현했다. 어느 한 요소라도 어긋나면 200Gbps는 화면에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송신과 수신, 빔과 부호를 거듭 맞추며 시스템 전체를 끝까지 완성했다. 마침내 2024년 말, 네 갈래의 50Gbps 무선 신호가 하나로 모여 총 200Gbps를 넘어섰다. 세계 최초의 200Gbps급 6G 무선링크 시연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속도 기록이 아니었다. 초고주파 광대역을 실제 시스템에서 제어하고, 다중점 송수신을 통해 데이터양을 네 배로 끌어 올릴 수 있음을 입증한 개념증명(PoC)이었다. 논문 속 가능성이 눈앞의 전송 장면으로 바뀌는 순간, 대한민국은 다가올 6G 표준과 산업을 먼저 제안할 근거를 얻었다. ETRI는 이 기술을 국제표준에 반영하고 테스트 플랫폼으로 고도화해 나갈 계획이다. 세계 최초는 결승선이 아니라 다음 도전의 출발선이다. 보이지 않는 전파 위에 길을 낸 연구진의 집념은 이제 6G로 연결될 미래를 향하고 있다. 85ETRI HERITAGE BOOK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이들 CDMA, WiBro, LTE. 그 시작에는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을 믿었던 연구자들이 있었다. 세계가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고, 실패의 가능성보다 미래의 가치를 바라봤던 이들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이동통신 역사를 만든 도전의 기록이자 다음 세대를 향한 유산이다. 故 경상현 박사 前 ETRI 초대 소장 前 정보통신부 초대 장관 Interview ETRI가 CDMA 개발을 결정한 것은, 대단한 도전정신 덕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미국과 유럽 등지에 연구원을 파견해 TDMA 기술을 이전받을 수 있는 기업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완제품을 팔겠다는 곳은 많아도 한국에 기술 전수를 해주겠다는 기업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퀄컴의 CDMA를 알게 됐습니다. 이후, 연구원들에게 CDMA에 대한 자료검토를 지시하기는 했지만, 출연(연) 입장에서 기술도입은 신중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앞선 기술인지, 앞으로 얼마나 더 기능과 생산단가를 개선할 수 있는지, 향후 시장규모는 어느 정도인지를 면밀하게 따져봤습니다. 결국, CDMA의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왕 모험할 거라면 세계를 제패할 기술을 선택하자는 심정으로 퀄컴과의 공동연구를 결정했습니다. 어차피 TDMA든 CDMA든 ETRI에는 생소한 기술이었고, ETRI가 무엇을 개발하든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오히려 CDMA의 경우, 개발에만 성공하면 초기에 CDMA 시장을 선점할 수 있으니 더 나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정보통신의 보고, ETRI를 말한다』(2004년) 발췌 86 HERITAGE · 도전
이혁재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명예교수 前 ETRI 전파기술연구부장 CDMA의 성공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먼저, TDX 성공 경험이 중요했습니다. 정부 주도 산·학·연 협력 체제로 TDX를 개발한 후에, 그 자신감으로 무선 분야에서도 비슷한 체제로 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을 개발하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TDX를 개발하면서 확보한 전송 및 네트워크 시스템 기술도 상당히 탄탄했고요. 또한, 정부가 초지일관 ETRI의 개발 방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독려하며, 국·내외적인 비판이나 반대 압력을 막아준 것도 성공의 주요 요인이었습니다. TDMA는 이미 1990년대 초에 상용화를 시작한 상태였고, CDMA가 세계적으로 상용화될 거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가 끝까지 믿고 지원해 준 것은 지금도 배워야 할 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ETRI와 산업체인 삼성, LG, 현대전자 등이 합심해서 정말 열심히 밤낮없이 기술을 개발한 노력이 성공의 핵심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CDMA 개발로 우리나라는 이동통신 분야에서 세계의 변방에서 중앙으로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정보통신 강국이 된 것입니다. 87ETRI HERITAGE BOOK
안지환 ㈜세드나 대표 前 ETRI 무선시스템연구부장 2000년대 초반의 이동통신 기술은 무선 주파수의 직교성을 이용해 데이터 전송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OFDM(Orthogonal Frequency Division Multiplexing) 기반이 주를 이뤘습니다. 런콤의 OFDMA, 플라리온의 Flash-OFDM, 브로드콤의 BroadAir 등이 대표적인 기술이었죠. 하지만 이들 기술은 무선 채널 대역폭이 5MHz 이하로 제한되고, 기지국 셀 플래닝 시 인접 기지국 간 동일 주파수 사용이 불가능하여 주파수 이용률이 낮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WiBro를 개발할 당시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고속 이동이 가능하고, 채널 대역폭을 10MHz 이상 확보할 수 있으며, 인접 기지국 간에도 동일한 주파수를 사용하면서 핸드오버가 가능한 기술을 개발하고자 했고, 이러한 기술적 접근은 결과적으로 적중했습니다. 88 HERITAGE · 도전
한기철 박사 前 이동통신연구소장 2002년 이동통신연구소장으로 발령받아 4G 이동통신 연구를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연구 방향과 내용을 결정하는 원론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가장 크게 고민했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미지의 2.3기가 밴드에 와이브로를 접목시킨 OFDM(Orthogonal Frequency Division Mutiplexing) 이었습니다. 최종 선택을 하기까지 서비스 패러다임의 변화, 연구 방향의 타당성 및 서비스 상용화 가능성을 입증하고 연구원들에게 비전을 보여주며 동의를 얻어내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동안에는 통신 기술의 후발 주자로서 앞서 있는 선진국들의 기술을 보며 열심히 쫓기만 했다면, 이제는 세계 1등 주자의 또 다른 새로운 고민들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연구 목표를 잘 모르겠다는 어려움과 두려움을 주었지만, 동시에 우리가 세계 최고로 앞서 있다는 자신감도 갖게 했습니다. 그렇게 연구소에 들어온 지 25년 만에 정말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는 창의적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과감히 택한 OFDM은 가장 큰 혁신이 되었고, 4세대통신 및 WiBro 개발 성공 성과를 낳았습니다. 이 경험으로 얻게 된 교훈은 리더로서 기술적 비전과 신념, 창의적 아이디어를 팀원들과 공유하고, 의견을 모아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은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연구과제의 바른 선택과 도전이 팀의 성패를 가르기 때문입니다. 89ETRI HERITAGE 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