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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Me 자기서사형 AI 프로젝트 나의 이야기가 기록이 되다
2 05 Prologue 08 극단 춤추는 허리 서지원·이진희 22 봄로야 작가 28 손수현 배우 겸 감독 34 위밋업스포츠 신혜미 대표 40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심옥주 소장 46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역대 수상자
54 발간사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온 경험과 선택, 어려움 속에서도 이어온 활동,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삶의 가치까지.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 들이 온전한 기록으로 남을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사)여성·문화네트워크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온 여성문화인들의 삶과 활동을 기록하고, 그 안에 담긴 경험과 목소리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자 STORY ME(스 토리미)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STORY ME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개인의 삶과 활동을 한 편의 이야기로 기록하는 자 기서사형 아카이빙 프로젝트입니다. 참여자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자유롭게 들려주면, AI는 질문을 이어가며 그 이야기를 구체화하고 에세이형 자서전 원고로 구성합니다. 글쓰 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도록 자서전 작성의 문 턱을 낮추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기록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이력이나 성취의 나열이 아닙니다. 어떤 계기로 지 금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고민하고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경험들이 오늘의 자신을 어떻게 만들어왔는지에 주목합니다. 이번 기록집에는 문화예술과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자신만의 활동을 이어온 다섯 팀, 여 섯 명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쌓아온 경험과 성평등에 대한 생각, 앞으 로 이어가고 싶은 삶의 방향을 다섯 편의 자기서사로 엮었습니다. AI는 이야기를 묻고 정리하는 도구이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제나 사람입니다. 이 기 록집에 담긴 이야기들이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경험과 가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이번 기록이 아직 충분히 조명되지 못한 더 많은 삶과 목소리를 기록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사)여성·문화네트워크 Story Me 자기서사형 AI 프로젝트 나의 이야기가 기록이 되다
STORY ME는 정해진 질문에 답하는 것에서 시작해, AI와의 대화를 통해 이야기를 확장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참여자의 답변에 따라 새로운 질문이 이어지고, 이렇게 모인 경험과 생각은 하나의 서사로 재구성됩니다. 이 책은 그 과정을 거쳐 탄생한 여섯 편의 자기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꺼내다 | AI 인터뷰 참여자는 AI가 건네는 질문을 따라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경험과 기억, 그 속에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내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쌓아갑니다. 01 이야기를 엮다 | AI 원고 구성 AI는 인터뷰를 통해 모인 경험과 생각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합니다. 참여자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삶의 여정을 담은 에세이형 자서전 초안을 완성합니다. 02 이야기를 다듬다 | 검토와 편집 참여자의 경험과 의도가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사실관계와 표현을 확인합니다. 원고의 흐름과 문장을 정돈하며 한 편의 읽을거리로 완성해 갑니다. 03 이야기를 남기다 | 기록집 발행 각기 다른 자리에서 이어온 여섯 사람의 삶을 다섯 편의 자기서사로 엮었습니다. 그렇게 모인 이야기들은 한 권의 기록집이 되어 더 많은 독자와 만납니다. 04 이 책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6 7 Story Me 자기서사형 AI 프로젝트 나의 이야기가 기록이 되다
98 STORY ME 01 2018년 올해의 성평등문화상 문화예술특별상 을주상 수상 극단 춤추는 허리 - 서지원 단장·배우 / 이진희 대표
1110 저는 언어장애가 있고 입으로 휠체어를 운전하는 중증 뇌병변 장애여성입니 다.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의 배우이자 활동가로 휠체어를 타고 무 대에 서서 장애여성의 인권과 일상을 이야기하는 문화예술운동을 하고 있어 요. 그동안 장애를 제 문제라고만 여겼다면, 춤추는허리를 만나면서 사회 구 조와 젠더 차별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계속 이야기하고 싶어졌어요. ‘춤추는허리’는 거창한 목표보다는 사회에서 없는 존재처럼 여겨지던 장애여 성들이 사람들 앞에서 장애가 있는 몸을 드러내고 ‘우리도 이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 해 2003년도에 창단된 자조모임이에요. 연습 은 어떻게 할지 계획해 보고, 계획한 대로 움직 여 보고, 울거나 소리를 지르더라도 끝까지 토 론하는 과정을 계속했어요. 공연에서는 장애여 성 생애사, 활동지원, 탈시설, 돌봄, 섹슈얼리 티, 노동 등 사회 이슈와 연결된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어요. 저는 이 모든 것이 정치적인 이야 기라고 생각해요. 춤추는허리를 만든 계기는 2002년 장애여성 난장 <나는 장애를 가진 여성이다>의 패션쇼 퍼포먼스였어요. 학교에 다니지 못한 이들에게 몸으로 말하고, 질문으로 연결되기 -춤추는 허리 서지원 단장·배우 한글은 어렵고, 손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글과 그림이라는 쉽지 않은 표 현 방식이라는 고민이 있었어요. 그래서 장애가 있는 몸 자체를 드러내고 우 리의 몸을 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생각으로 ‘춤추는허리’가 창단하게 되었죠.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조차 못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연기놀이를 자주 했어요. 웃고 울고, 커리어우먼이 된 것처 럼 연기하는 시간이 가장 즐거웠어요. 그러다 작은 무대에서 저와 같은 중증 장애여성이 등장해 집을 구하는 과정이나 연애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공 연을 처음 관객으로 보게 되었어요. 관객이 무대에 올라와 함께 상황을 바꿔 보는 토론연극 형식이었어요. 너무 재미있었고, 나와 같은 고민을 한다는 사 실이 흥미로웠어요. 그때 무대에 올라가서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이 엄청났지 만, 사람들이 제 말을 알아듣지 못할 거 같았어요. 그때의 느낌은 지금도 절대 잊히지 않아요. 난생처음 받아보는 질문으로 시작된 연극인의 길 춤추는허리에서 활동하면서 저는 처음으로 질문을 받았어요. 사람들과 이야 기하는 방법들을 알아가고 배웠다고 생각해요. 20년 전의 이야기지만, 지금 도 여전히 유효하죠. 다른 사람의 일상을 궁금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에 들어가겠단 것 같아요. 그 삶에 들어간다는 것이 함께 개입하고 책임을 나누
1312 동하면서부터 ‘지금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욕구를 생각하 는 시간을 갖게 되었어요. 저에게 ‘질문’은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의미해요. 내 장애만이 아니 라 다른 사람의 삶도 궁금해졌어요. 제 경험과 다르면서 같고, 같으면서도 다 른 삶을 알아가는 일이 흥미로워요. 그래서 ‘질문’을 주고받는 시간은 고통스 럽기도 하지만 뿌듯하기도 해요. 잘하는 것보다 ‘나답게’ 중요 오롯이 몸과 움직임에 집중하며 얻은 것들 배우로 활동하면서 연기를 정말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 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비장애인 배우처럼 정교하고 정돈된 몸짓을 하거나 또박또박 발음해 대사를 전달하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예전에는 사람들 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경직으로 뻗치는 오른쪽 팔을 더 높 이 들어 올리고, 무릎으로 서서 고개를 뒤로 꺾는 동작을 하곤 했어요. 저만이 할 수 있는 동작이고, 저의 ‘시그니처’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 움직임이 저 만의 ‘시그니처’라고 생각해요. 다만 이제는 사람들에게 멋지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라, 제 몸의 움직임을 더 표현하기 위해서 움직여요. 경직으로 몸이 뻗치는 주기와 강도를 발견하고, 몸이 뻗칠 때 어느 쪽으로 움 직여야 하는지 계산하며 움직여요.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건지를 고민하고 상상하며 움직이죠. 그 러다 보면 하고 싶은 얘기가 더 명확해지는 것 같아요. 장애여성공감에서는 장애여성과 실패할 수 있 는 시간을 만들고 기다리며 함께 시도하고 도 전해요. 저는 그 과정에서 제 장애를 취약함이 나 피해로만 이야기하지 않고, 다른 서사로 저 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어요. 끊임없이 몸을 탐 색하고, 변화를 발견하고, 움직이며 말하게 된 거죠. 저는 늘 장애를 어떻게 보여줄지, 제 몸 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고 전시할 것인지 고 민해요. 겠단 의미이기도 하죠. 사회는 지금도 어떤 사람들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 분하고 분리해요. ‘비정상’이라고 규정된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궁금해하지도, 질문하지도 않아요. 저는 춤추는허리에서 활동하면서 제 삶에 대해 질문받았 고, 저 역시 다른 사람의 삶을 궁금해하고 질문하기 시작했어요. 활동을 한다 는 것은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찾아가는 연습을 계속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요. ‘활동과 일상은 분리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동료들과 자주 나눠요. 때로는 누군가가 정해준 대로 몸만 움직이며 편하게 살고 싶어질 때도 있어요. 하지만 동료들이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을 함께 발견하고, 지지와 조언을 하며, 때로는 문제제기도 해 주기 때문에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어요. 저는 완벽하지 않고 계속 흔들려요. 하지만 장애인에서 장애여성으로 정체성을 고민하고 변 화하는 과정마다 제 옆에 동료가 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다른 사람에게 그런 동료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해요. 운동은 저에게 정말 큰 자원이에요. 활동을 하면서 보람을 느낀 순간은 장애가 있는 몸을 드러내고 제 욕망을 펼 치며, 거리와 지하철, 집회 등에서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활동들이었어요. 처 음 질문을 받았을 때는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난감했지만, 장애여성공감에서 활
1514 1년 전 유방암 진단... 동료들과 끊임없는 소통으로 운동을 계속 이어가기 저는 1년 전 유방암 판정을 받았어요. 그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을 ‘활동을 못 하 면 어떡하지?’, ‘활동지원사가 그만두면 어떡하지?’ 였어요. 항암치료를 받으면 몸이 쇠약해질텐데, 사무실까지 이동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가늠이 되지 않아 고민되더라구요. 아침이 되면 무기력한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았어요. 늘 출근 준비로 바빴던 아침이 이제는 아무런 계획 없이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로 느껴졌어요. ‘내가 쓸모없는 사람 같고 아무도 날 찾지 않으면 어떡하지? 필요 없는 존재로 전락 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컸어요. 유일한 소통 창구였던 텔레그램을 집 착적으로 들여다보곤 했어요. 슬픈 게 아닌데, 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서 눈물이 나기도 했어요. 그 때마 다 ‘지원아, 너는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야, 무가치한 게 아니야, 쓸모 없는 사람이 아니야, 넌 최선을 다해 암과 싸우고 있는 거야’ 스스로에게 말했어요. 저는 활동을 중단하는 순간 사 회와 차단될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어요. 다시 집이라는 공간에 고립 될까 봐 두려웠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끊임없이 소통하려고 했어요. 장애여성 으로 살아가면서 사람들에게 제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고 비춰줄 건지 늘 고민 해 왔어요. 그런 고민을 동료들과 많이 나누고 있어요. 몸이 달라지고, 활동의 방식이 달라져도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이어가는 일은 제 삶에서 중요해요. 저는 10대는 그저 돌봄에 감사해야 했던 장애인이었고, 20대는 인권을 접하 게 된 사람이었어요. 30~40대는 장애여성공감에서 활동하며 소수자들의 경 험을 듣고 작품을 만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장애여성이라는 정체성이 단단해 졌어요. 여전히 차별을 경험하지만,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 과 관계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 흥미로워요. 장애란 무엇인지, 장애여성은 누 구인지 계속 질문하고, 저의 답을 찾아나가고 싶어요. 장애와 퀴어, 페미니즘, 평등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집회와 토론회에서 사람들과 계속 만나고 싶어요. 앞으로도 다양한 소수자들과 연대하며 서로의 삶을 질문하고, 관계를 만들 어 갈 거예요. 그렇게 연결된 사람들과 계속 목소리를 내는 활동을 이어가고 싶어요.
1716 장애여성공감에서 활동가로 일하는 이진희예요. 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 성극단 춤추는허리에서 기획과 연출, 때로는 배우의 일도 하고 있습니다. 불 구의 몸들이 서로 돌보며 정치하는 유머를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으 로 활동하고 있어요. 극단 춤추는허리 활동은 장애여성공감에 극단이 만들어지면서 시작했어요. ‘ 장애여성의 삶과 예술을 무대로’라는 극단 슬로건을 통해 제 몸과 삶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게 됐어요. 2003년부터 매년 1편 이상의 창작공연을 올리며 장애여성 배우들이 공연활동에 대한 경험을 쌓았고, 2008년 장애여성 연극 아카데미를 열어 배우에서 연출, 기획, 작가, 스텝으로의 역량을 확장하는 도 전을 시작했어요. 이후 장애여성 연출가 탄생을 위해 애썼고 2009년부터는 장애여성이 작은 작품을 직접 연출하기 시작했어요. 2010년 초연한 <거북이라디오>를 시리즈로 레파토리 공연을 만들고, 2023 년 <몸이동(異動) 프로젝트>를 통해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중심이 아니라 주 변부에서 세상의 변화를 모색하는 방법을 연습해가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영화로 영역을 확장해 <농담>을 제작하고 전주국제영화제, 상하이한국문화 원 등에 초대받기도 했어요. 2026년 3월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의 장치들’ 전시에 영상작업 <디에게>를 전시하며 돌봄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고 민을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디에게> 작업을 통해 ‘다른 몸들이 만나기 위해 실패를 연습한다는 것은 어 실패하는 연습실, 몸이동으로 무대 안팎 넘나들기 -춤추는 허리 이진희 대표
1918 로운 ‘습’을 익히고 싶은지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즉, 장애여성 배우들과 실패 의 경험을 나누고 이를 장면화하거나 무대화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죠. “나는 예술가입니까?” 유머의 정치 저는 춤추는허리에서 오랜 기간 실무자로 활동했는데요. 직접 연출하기도 어 려웠고, 배우로서 뛰어난 기량도 없었지만, 긴 시간 관계를 쌓으며 서로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해 가길 기다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공연에 필요한 여 러 실무를 챙기면서 제가 하고 싶고 잘하는 일을 찾거나 기다리거나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제 역할을 찾았어요. 활동을 이어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목표의 공감대가 흐려졌다’고 느낄 때였어요. 왜 이걸 하고 있지 하는 의문이 들었고, 그때는 동료에게 진상을 부 리면서 지나왔던 거 같아요. 목표가 불분명해 힘들다고 말하면서, 동료들이 왜 활동하는지 자세히 들려주면 도움이 될 거라고 기대했던 것 같아요. 지나고 보 니 결국엔 저의 몫인 질문이었지만, 동료가 어떤 상태인지, 무엇이 힘든지 답 을 구했는지 들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사실 다들 비슷한 이유로 힘든 데, 그걸 나누지 못해 어려웠던 거지요.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슷하게 힘든 이유를 발견했고, ‘이것이 모두의 문제일 수 있구나’ 함께 깨달은 거 같아요. 먼저 다른 사람들은 뭐가 힘든지 묻 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 게 다른 구성원도 참여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 했어요. 밥과 술도 마시면서 ‘어떻게 함께’ 문제 를 해결할 수 있을까 방법을 찾는 게 가장 중요 했던 거 같아요. 활동을 하면서 보람을 느낀 순간은 ‘공연을 왜 하는 걸까?’ 목표를 서로 확인해가며 각자의 경 험이 교차하고 때로 충돌할 때예요. ‘나는 예술 가인가? 예술이란 무엇일까? 무대를 넘나든다 는 의미가 장애여성에겐 무슨 뜻인가?’ 이런 상 상을 함께 할 때입니다. 2024년 몸이동 준비 운 동 <얼음땡> 공연을 마쳤을 때 처음으로 하 나의 공연용 구성안과 대본으로 완성했을 때가 떤 의미일까, 상호의존과 서로돌봄이 말이 아니라 실제 관계에 녹여지기 위해 어떤 노력을 비장애여성으로서 잊지 말아야 할까?’가 활동에 중요한 고민이 되었습니다. 몸을 보여주는 방식도 장애 자체를 더 극대화하여 드러내는 방식 이 아니라 ‘몸의 이야기’를 장애여성이 주체적으로 ‘다르게’ 드러냄으로써 새 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어요. <디에게>는 유전자 돌연변이로 손발의 근육이 점점 위축되는 샤르코마리투 스 장애를 갖고 있고, 자신의 몸과 돌봄, 섹슈얼리티를 감각적으로 탐구해 나 가는 은선의 이야기인데요. 작품 속에서 이끼와 곰팡이가 자라나는 ‘습’한 환 경, 몸에서 나는 축축한 냄새는 숨겨야할 비위생이 아닌 관계가 시작되는 공 간이에요. 은선은 어느 날 스스로 볼 수 없는 자신의 항문이 궁금해지고, 타인 의 도움 없이 자신의 몸과 만날 수 있을지 질문해요. 작품은 돌봄을 깨끗하고 완결한 상태가 아니라, 실패를 반복하며 서로에게 의존하는 ‘습’을 익혀가는 과정으로 그려요. 저는 동료들과 함께 기획과 연출 작업을 할 때 서로의 몸과 감각에 이미 깊게 배어 익숙해진 ‘습’을 통해 사회 구조를 다시 바라봐요. 그리고 우리는 어떤 새
2120 떠올라요. 그 공연을 통해 장애여성이 몸과 장애를 말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깊은 사 유와 토론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의학적 정의와 우생학의 폭력 속에서 도 자신의 몸을 탐구해왔던 경험이 또 하나의 사회적 지식과 역량이 될 수 있 음을 주장한 무대였는데요. 이것이 성장과 성취라는 언어가 아니라 실패와 불화의 언어로 표현됨으로써 끝없는 수행의 과정임이 보여졌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이 과정을 이끌어가는 힘을 농담과 유머로 삼음으로써 장애여성의 이미지를 새롭게 구축하고자 했어요. 차별과 억압 속에서도 자신의 삶의 궤적 을 써온, 장애와 몸을 다르게 말하며 이야기의 주체인 장애여성의 경험이 드 러난 공연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화하며 경유하는 몸, 돌봄과 섹슈얼리티가 뒤섞이는 무대 우리나라가 성평등한 사회가 아니라는 걸 인지하게 된 건 어쩌면 자연스러웠 어요. 저는 1980~1990년대 학교를 다니면서 남학생과 여학생에 대한 차별 을 일상적으로 경험한 세대예요. 장애인권 활동을 시작하면서는 성역할이 다 르고 성폭력에 대한 감각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그때 성평등이 운동의 방 향과 문화를 바꾸는 가치와 실천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장애여성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성평등이 성소수자나 장애여성을 차별하는 또 하나의 규 범이나 제도가 되지 않도록 젠더 섹슈얼리티에 대한 낙인과 소외를 고민하 게 되었어요. 성평등은 생물학적 여성, 남성의 권력차에 대 한 문제만이 아니라 젠더 섹슈얼리티가 어떤 권력들과 교차하며 작동하는지 고민하고 이에 맞서기 위한 실천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요. 성평등 관점으로 조직문화를 점검하면 민 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기준도 고민할 수 있고, 일상적 관계와 권력 구조를 성찰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약속을 다시 만드는 과정에 영향을 미친 다고 생각해요. 평등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경 험과 목소리도 성평등을 실천하려는 노력 속에 서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문화예술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장애여성운동을 하면서부터예요. 사 회적 메시지를 공유하고 토론할 때, 비정상성을 가시화하며 사회적 억압을 드 러낼 때 농담과 유머를 경유하면 어떤 효과가 발생할까 늘 궁금했어요. 이때 장애여성과 동료가 되어 프로덕션을 구축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했지요. 연출-배우의 역할이 비장애-장애로 획일화되지 않고, 공동의 창작 주체로 천 천히 성장하는 과정을 상호 지지적으로 만들어주는 과정은 불가능한 걸까 하 는 궁금증이 생겼어요. 제가 인내심은 적은 편인데, 힘들거나 회피하고 싶은 순간을 직면하며 기다 리는 힘은 있는 편이에요. 모든 일이 시간 속에서 흘러가고 있고, 어떤 식으 로든 결과를 남긴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방식으로 돌아올지는 알 수 없지 만, 성취도 실패도 다음을 위한 연결선이라고 생각하면 불안이 조금 줄어들 더라고요. 앞으로는 돌봄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탐구를 성적 즐거움과 연결시키는 공연 을 만들고 싶어요. 몸-돌봄-섹슈얼리티-관계를 분절하거나 순차적으로 고민 하지 않고, 성적 즐거움이란 화두를 통해 이 모든 게 뒤섞여서 발생하는 권력 과 갈등의 차이를 보여주고 싶어요. 극단 춤추는허리 2003년 창단한 장애여성 극단으로, 서로의 차이와 몸을 탐구하며 장애여성 의 삶을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한다.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에 질문을 던지며 무대를 만들어간다.
2322 STORY ME 02 2017년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신진문화인상 수상 봄로야(김은진)
2524 사회가 ‘정상’이라고 정해놓은 기준으로 몸과 삶을 통제할 때 생기는 모순과 어긋남에 관심을 두고 작품활동을 하는 시각예술가 봄로야입니다. 저는 인간 뿐 아니라 비인간의 몸과 삶도 함께 살피고 있고요. 페미니즘, 페미니즘과 교 차하는 관점을 공부하면서 현장을 찾아가고 자료를 모으며, 그곳에서 만난 사 람과 사건이 남긴 감각과 흔적을 영상, 드로잉, 텍스트, 퍼포먼스 등으로 엮 고 있습니다. 개인 작업 외에는 2016년부터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콜렉티브 노뉴워크의 일 원으로 사회적 소수자와 연대하는 작업과 활동을 하고 있어요. 일주일에 한 번 홈리스 인권지킴이 활동에 참여하고, 전환학교인 오디세이학교에서는 청 소년 친구들에게 드로잉을 가르쳐요. 현재는 여성과 노동에 관한 전시를 준비 하면서, 경산 코발트광산을 비롯한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을 다루는 작업 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작업과 활동이 여전히 쉽지는 않지만, 마음을 다독이 며 버티고 해내고 있어요. 중년이 되면서부터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산책은 오래전부터 좋아했어요. 기분을 환기하거나 새로운 이야기를 구상할 때 많이 걷죠. 강을 바라보며 ‘물 멍’을 하고 바람을 느끼거나, 골목의 간판을 읽고 새로운 길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해요. 예전에는 골목골목 다녔다면 요즘은 주로 강이나 하천길을 걸어요. 달리기는 생각이 너무 많고 마음이 힘들어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습관이 되었 어요. 일주일에 한 번은 ‘다시 뛰는 여성 정치’를 줄여 부르는 ‘다뛰여’ 러닝 모 페미니즘 미술과 홈리스 인권지킴이, 현장에서 배우고 관계를 이어가는 -봄로야 작가 임에서 함께 뛰기도 하고요. 막연했던 불편함을 페미니즘 작품과 만남 속에서 이해 예술계 내 성폭력 고발과 강남역 여성 살해 접하며 페미니즘, 퀴어, 생태로 관심사 이어져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을 돌아보면, 여성에게 기대되는 역할이나 태도에 막연 한 불편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무엇이 왜 불편한지 분명하게 설명하 지 못했고요. 그러면서 페미니즘을 다룬 작품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미 술뿐 아니라 문학, 음악, 연극, 무용에서도 그런 작업들을 만났어요. 한 사람의 경험에서 나온 작품이 다른 사람들의 삶과 만나 사회적인 목소리로 울리는 걸 느꼈어요.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게 해주었죠. 제가 느끼던 불편함이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도시의 경계 와 계급적 위치로도 관심이 넓어졌어요. 여성들이 놓이는 취약한 조건을 더 생 각하게 되었고요. 예술계 성폭력 고발과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접하면서 분 노도 커졌어요. 노뉴워크 멤버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페미니즘은 제 경험과 작 업을 돌아보는 중요한 관점이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퀴어와 생태의 문제도 점 차 함께 생각하게 되었고요. 걸음
2726 까?’ 하는 걱정이 컸어요. 낯선 만남에 긴장했고, 거리에서 만나는 분들을 제 가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도 느꼈고요. 때로는 거친 말을 듣거나 대응하기 어 려운 상황도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활동가들의 모습을 곁 에서 지켜봤어요. 만남이 이어지면서 거리에서 만나는 분들을 우리 이웃으로 느끼게 되었고, 이제는 당사자이자 활동가인 분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일상적 인 대화를 나누기도 해요. 추석 연휴에는 전을 부치고, 동지에는 팥죽이 든 꾸러미를 만들어 거리의 홈리 스분들에게 배달해요. 반빈곤 연대라는 큰 목적이 있지만, 그 안에서 곁에 머 물며 안부를 묻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별것 아닌 대화 같 아도, 그 시간이 쌓이면서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게 있어요. 우리의 안부가 형식적이지 않다는 것이요. 현장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제가 먼저 짐작하고 의미를 붙였다 는 걸 뒤늦게 알 때도 있어요. 작업에서도 그런 순간을 그냥 넘기지 않으려 고 해요. 무엇을 보았는지뿐 아니라 제가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도 함께 살피 는 거죠.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작업에 담을 수 있을지, 전시가 끝난 뒤에도 관계를 어떻 게 이어갈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 고 있어요. 앞으로도 퀴어 페미니스트 아티스 트로서 제 삶과 현장에서 만난 존 재들의 경험을 함께 살피려합니 다. 서로 다른 경험을 연결하면서 도 그 사이의 차이와 모순을 지우 지 않는 작업을 하고 싶고요. 여성 으로 살아온 제 경험도 돌아보면 서, 여성의 삶을 하나로 설명하지 않도록 섬세하게 다뤄보려고 해 요. 곁에서 만난 사람들의 용기와 섬세함, 유연함을 배우면서 저도 함께 연대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노뉴워크에서는 페미니즘 미술을 사회적 사건이나 문제의식과 연결하는 전 시, 워크숍, 상영회를 해왔어요. 여성 미술가들의 페미니즘 작업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고 느껴 전시를 기획했고, 제 작업에서도 여성주 의적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게 되었죠. 2017년에는 『참고문헌 없음』 에 실린 이성미 시인의 글을 시민들과 읽고 이미지로 표현하는 워크숍 〈저 문 장을 들은 사람들이 할 일〉을 진행했어요. 예술계 내 성폭력 피해 생존자와 연 대자의 목소리를 함께 읽으면서, 사건과 일상 사이의 거리, 관객과 작가 사이 의 거리를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3년째 이어져 온 홈리스 인권지킴이 활동 곁에 머물며 안부를 묻는 시간의 의미 자신의 시선을 돌아보고, 전시 이후의 관계를 고민하다 홈리스 인권지킴이 활동은 2023년 최현숙 활동가이자 작가와 협업한 영상 작업 〈유연한 발〉을 계기로 시작했어요. 최현숙 작가님은 오랫동안 아랫마을 에서 홈리스 인권지킴이 활동을 해오셨는데, 인터뷰 과정에서 활동가를 모집 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어요. 신청하고 사전 교육을 받은 뒤 정식으로 참여 하게 되었죠. 작업을 위해 자료를 찾고 인터뷰를 하다 보니 현장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활 동하면서 활동가들이 들이는 시간과 마음을 곁에서 보고 고민도 많아졌어요.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묻는 것과 함께, 점점 제 자신의 밖으로 걸어 나가 고 있다고 느껴요. 처음 거리 아웃리치를 나갔을 때는 ‘내가 도움이 될까? 역할을 잘할 수 있을 봄로야 작가 여성이 겪는 차별과 삶의 경험을 시각예술로 풀어 내며 여성문제에 대한 사 회적 관심을 넓혀온 페미 니즘 작가.
2928 STORY ME 03 2020년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신진여성문화인상 수상 손수현 배우 겸 감독
3130 저는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틈틈이 글도 쓰고 있고, 시간이 날 때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도 합니다. 카페 일은 4년 동안 꾸준히 하고 있어요. 연기를 시작한 건 2013년이었으니 벌써 13년이나 됐네요. 전공은 국악기 아쟁이에요. 사춘 기로 방황하던 중학생 때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했고, 대학 졸업까지 10년 가 까이 제 삶 그 자체였습니다. 처음엔 대학에 잘 갈 수 있다는 이유로 시작했지 만, 하다 보니 정이 들더라고요. 제게 주어진 걸 잘하고 싶었고 그래서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뮤직 비디오에서 연기를 시작하게 됐고, 이후 영화, 책, 드라마 등 영역을 넓히면서 해온 것이 여기까지 왔네요. 어렸을 땐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을 꿈꿨 지만 지금은 둘 다 아니에요. 시선이 밖에서만 머물던 것에서 벗어나 페미니즘 을 알게 되면서 새로운 꿈을 갖게 됐고, 이제는 유명해지지 않아도 되고 떼돈 을 벌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돈은 필요합니다. 다만 페미니즘을 접 한 후 저 자신을 조금 더 있는 그대로 보게 됐고,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기보다 는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게 됐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고민은 있죠. 이를테면 ‘이 일이 나에게 맞는 건가?’라는 질문 같은 거요. 나름의 성취를 하고 오랫동안 이 일을 하고 있는데도 이게 언제나 우연으로 일어나는 일 같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어쩌면 평생 함께할 고민일지 배우고 부딪치며 끊임없이 무엇이든 하는 삶 -손수현 배우 겸 감독 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럴 때면 저는 거기에서 기인한 불안을 잊기 위해 지 금 할 수 있는 걸 생각하려고 의식적으로 더 노력해요. 생각해도 그럴 때 할 수 있는 건 뭐라도 하는 거더라고요. 생각은 그만하고 뭐라도 하는 거. 영화 현장부터 카페 아르바이트까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 내 작품에 위로받은 관객 볼 때 가장 큰 보람 기억에 남는 현장은 저예산 영화 현장들이에요. 예산이 적을수록 더 몸이 고 되죠. 찍어야 할 것이 많은데 최대한 짧은 시간에 많이 찍어야 하니까요. 보통 저예산이라는 건 세상에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이야기일 확률이 높다는 말 이에요. 그래서 재밌어요. 세상이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이야기 그 자체도 재 밌고, 그 이야기를 찍겠다고 모인 사람들과 복작거리는 것도 재밌어요. 그렇 게 한 장면 한 장면을 완성하던 모든 순간이 기억에 남아요. 계속 좋은 현장에 가고 싶어요.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을 만나는 게 필연이라면, 저는 어 쩌면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영화를 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야기 속 캐릭터를 만나는 것도 결국 어떤 한 사람을 만나는 것과 다르지 않잖아요. 같은 의미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순간도 좋아해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완성한 작품을 누군가 보고 ‘위로가 되었다’거나 ‘힘이 되었다’는 말을 건넬 때 비로소 우리가 만난 기분이 들거든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좀 소외되고 지질한 인물들 이 나오는 다양한 영화들이 극장에 많이 걸렸으 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좀 재미없더라도 요. 그러고 보면 저는 ‘마블 시리즈’ 같이 거창하 게 세상을 구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구하는 것에 매료되는 듯해요. 물론 ‘마블 시리 즈’는 재밌지만요.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저 는 결국 연기를 하면서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 을 배우는 중인 듯합니다. 타인을 완전히 이해 한다는 건 불가능하지만, 꼭 어떤 결론에 닿지 않더라도 그 과정은 노력을 동반하고 노력은 늘 제게 무언갈 남기더라고요. ‘나’ 중심에서 벗어 난, 새로운 세상 같은 것을요.
3332 ‘투덜거리고 불평하는 여자’라는 편견 자체가 불평등 페미니즘 공부 후 달라진 삶 앞으로도 자유롭게 활동 이어나가고파 페미니즘은 제 인생의 중요한 한 축이에요.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을 몰랐을 때 도 그랬던 것 같아요. 뭔가 늘 이상했거든요. 아쟁을 전공할 때도, 술 마시며 놀 때도, 대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도요. 그때는 그게 무언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음에도 그냥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는 그런 순간들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 몰랐을 뿐이에요. 많은 여성이 자신이 페미니스트는 아니 라고 하면서도 자신의 불평등한 경험을 하나쯤은 안고 있죠. 그 경험에 이름 붙이는 걸 주저하는 이유는 ‘피해자’가 되기 싫고, 세상에 투덜거리며 불평만 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싫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요. 적어도 저는 그랬어요. 저는 여전히 세상이 여자를 미워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여성들이 실제 삶에 서 느끼는 불평등을 개인의 경험으로 축소하고, 그 모든 구조를 부정하고, 평 가절하하는 것이겠죠. 어쩌면 모든 불평등은 편견에서 시작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편견 덩어리일지도 몰라.’ 그런 작은 균열이 의심을 키운 셈이에요. 나를 미워하는 세상 앞에서 불평은 필연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아무것도 나를 규정할 수 없 다는 믿음이 저를 마음껏 불평할 수 있게 만들어주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저는 오랫동안 미움받는 게 무서웠던가 봐요. 저는 앞으로도 좀 이렇게 재밌게 살고 싶어요. 내 안에 오랫동안 자리한 고리 타분한 것들과 싸우면서도 지금처럼 똑같이 계속 연기하고 싶고, 제 삶과 경 험을 쓰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그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 가는 대 로 하고 싶어요. 모두가 그럴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런 날이 온다면 정말 재 밌을 것 같아요. 손수현 배우 겸 감독 여성주의적 영화 출연은 물론, 본인 연출의 단편영 화를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영화계에 양 성평등의 메시지를 던지 는 배우이다.
3534 STORY ME 04 2020년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양성평등문화지원상 (단체) 수상 위밋업스포츠 - 신혜미 대표
3736 여자축구 선수 출신으로, 소녀들에게는 스포츠 경험의 기회를, 여성 후배들에 게는 은퇴 후에도 경력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회적기업 ‘위밋업’의 대 표 신혜미입니다. 지금은 양성평등문화상도 받았고, 관련 일도 하고 있지만, 어릴 때는 성평등 이라는 단어에 대해 크게 고민해 본적은 없어요. 부모님이 오빠와 저를 평등하 게 대해주셔서 그랬을 수도 있고, 그 시절 ‘여자가 무슨 축구야’라는 말이 오가 던 때 축구를 시작했거든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학교에 축구부가 창단되었 는데,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라 체력장 1급이어서 자연스럽게 선생님 추천으 로 축구부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만두지 않다보니 계속하게 됐고요. 학업을 병행하면서 대학졸업때까지 축구를 했는데, 그때 당시 미래를 생각하다 보니 대학원 진학을 하면서 축구를 그만두게 됐어요. 사회의 유리천장이 있다고 느낀 건 운동선수출신이라는 것부터였던 것 같아 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할 때, 제가 운동선수였다는 것이 오히려 편견이 되었고, 그리고 나서는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은 후 자연스럽게 경력 단 절이 되었을 때부터 일반적인 유리천장을 경험했죠. 일은 하고 싶은데 제가 갈 수 있는 일자리가 많지는 않았어요. 경력단절 후 방과후 축구교실 강사, 중고 등학교 스포츠클럽 강사, 협회 지도자 및 사무국 직원 등으로 많은 시도를 했 지만 안정된 일자리는 아니었어요. 주변 은퇴한 여성선수들도 대부분 저랑 같 은 상황이었고요. 다들 평생을 운동만 했는데, 본인의 전문성을 전혀 살리지 경력단절을 넘어 은퇴 여성선수들의 '진짜 롤모델'이 되기까지 -위밋업스포츠 신혜미 대표 못하는 일을 하는 동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게 좀 아쉬웠어요. 그때 당시 에는 남자선수들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제가 활동하던 당시, 여자 선수들의 선수 생명은 매우 짧았어요. 실업팀에 가 도 2년 정도밖에 못 있었어요. 그래서 저 스스로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하고 대 학원에 진학했어요. 그 당시 대학원에 가는 여자선수는 거의 없었지만, 저는 그냥 가보자 했던 거죠. 스포츠마케팅이 좋았던 저는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그 때 당시 대한축구협회와 나이키를 보면서 꿈을 키웠는데 지금은 파트너로 일 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꿈은 이뤄어졌다고 봐야겠죠. 대학원 졸업하고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그때 당시 대학원에 있던 여성 선배들은 연구자로 남거나, 아니면 바로 결혼을 하거나 였던 것 같아요. 저는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던것 같아요. 그래서 혼자 호주도 가보고, 다양 한 경험을 해보려고 노력했죠. 그러면서 그 경험이 쌓여서 지금의 위밋업을 만 드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위밋업’은 여성 중심 스포츠 플랫폼으로 스포츠 를 통한 교육, 기부, 그리고 행사 대행을 하는 사회적기업이에요. 여전히 우리 사회는 여성들이 스포츠를 접하기 어려운데, 그건 초등학교 때부터 여학생들 이 스포츠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초등학교에는 여자 아이들을 위한 클럽이 거의 없고 대부분 태권도나 댄스 스포츠, 발레 정도만 선택할 수 있어요. 성인이 되어서도 다이어트로 하는 요가, 헬스, 필라테스 정
3938 준다는 것을 직접 보면서, 교육을 통해 사람들의 성장을 돕는 일에 더 큰 의미 를 느끼고 있고, 학생들에게 잘하는 것보다 즐기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어요. 이 일을 하면서 보람된 점 중 하나는 은퇴 여성선수 출신들의 진로를 지원한 다는 거예요. 그동안 해온 운동을 재능으로 낭비하지 말라는 의미예요. 클래 스는 전업으로 하라고 하지는 않아요. 대학원 진학도 추천해요. 전공은 스포 츠심리학이나 스포츠코칭, 물리치료학(운동치료) 그리고 유학 프로그램은 영 어를 배우거나 해외경험을 할 수 있는 정도로 조언해주고 있어요. 국내 첫 럭 비 여성상임심판도 저희와 함께하는 코치이고, 주짓수 상임심판도 저희와 함 께하고 있는 코치예요. 농구 해설위원도 있고, 경기감독관, 대학원 진학, 워킹 홀리데이를 간 코치들도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코치들이 심판, 자격증, 유학 등 다양한 길을 찾아가고 있죠. 처음엔 막막했는데 창업 후 8년째인 지금까지 안 망하고 운영하는 거보면 저 와 우리 코치들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코치들한테도 늘 얘기해요. “너희가 나보다 운동도 더 잘하고 멋지니까 너희 가 하면 더 잘할 거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무엇을 하든 일단 시작하라”고요. 그러면 다들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위밋업’은 소녀들의 스포츠 경험뿐만 아니라 수많은 은퇴 여성선수를 위한 든든한 버팀 목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저는 처음 시작할 때 정 말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는데, 우리 후배 들은 그렇지는 않은 거 같아서 뿌둣해요.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은 은퇴한 여성스포츠 인들을 하나로 모으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진짜 봉사’를 하는 거예요. 언젠가 돈을 많이 벌 어서 동남아로 떠나 그곳에 있는 많은 소녀들 에게 스포츠를 다양하게 알려주고 싶어요. 월 드비전이나 유니세프에서 아이들 대상으로 많 은 활동을 하는데 대부분 공부를 가르쳐주고 태 권도 정도잖아요. 저는 우리 코치들이 가서 ‘너 희도 할 수 있다!’라고 외치며 보여주고 싶어요. 성사돼서 봉사를 하게 되면 그 친구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도가 대부분이었는데 최근에야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의 붐으로 풋살이 인 기 있는 스포츠로 변하기 시작했어요. 은퇴 후 알게 된 유리천장… 소녀들에게 스포츠 경험을 주고 여성 은퇴선수의 경력단절 막기 위해 ‘위밋업’ 창업 ‘위밋업’을 창업하면서 처음에 진짜 많이 들은 질문이 “왜 여자 대상으로 하 냐”는 거였어요. 주변에서는 남녀가 함께하는 사업을 하면 타겟이 커지고 시 장이 넓어진다고 조언했지만, 저는 처음부터 여성에만 집중해야겠다는 생각 이었어요. 첫 클래스는 주짓수로 시작했어요. 주짓수는 서로가 몸을 안고 시 작해야 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기존에 있는 도장에서 시작하기 조금 어려운 부 분이 있거든요. 시작은 대성공이었어요. 이후 종목을 하나씩 늘려가면서 사람 들에게 클래스를 제공했고, 은퇴선수들을 소개도 했어요. 현재 그 종목들의 은 퇴선수들이 함께하고 있고 다들 잘 성장하고 있답니다. 현재 ‘위밋업’에서는 축구, 농구, 배구, 럭비, 핸드볼, 러닝, 주짓수, 수영, 킥복 싱 등 다양한 종목을 통해 교육을 진행하면서, 각자에게 맞는 스포츠를 찾는 여정을 함께 하고 있어요. 스포츠가 사람의 신체와 심리적 변화에 많은 영향을 위밋업스포츠 위밋업스포츠는 은퇴한 여성 축구선수 두 명이 설 립해 여성체육인의 경력 지속을 돕는 생활 스포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일 반 여성들도 안전하고 편 안하게 운동을 즐길 수 있 도록 스포츠 참여 기회를 넓혀가고 있다.
4140 STORY ME 05 2019년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양성평등문화지원상 (단체) 수상 독립운동연구원 - 심옥주 원장
4342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는 2019년 여성신문 양성평등문화상을 수상했어 요. 국내에서 유일하게 여성독립운동을 연구하는 기관으로, 여성독립운동가 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활동을 위해 2009년 개소했어요. 독립운동 과 정에서 남성과 여성의 구분 없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목숨을 걸고 싸우셨 던 분들의 존재를 정확히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여성 독립운동가의 역사를 회복하기 위해 학술연구팀은 학술활동을, 교육지원팀 은 교육활동을, 일반인과 학생들과의 교류 활동을 해왔어요. 연구소 운영은 현재 외부 지원이 없지만 전문 연구자들이 모여 우리 여성독립운동가의 역사 를 세우는 일을 하고 있고, 연구사업을 수행하 면서 개인의 수익 연구비 20%가 연구소에 기 부하여 운영되고 있어요. 이 일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여성독립운동가의 역사를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연구소 활동은 2009년 부산의 6평 사무실로 시작해서 2018년 서울 사무실을 거쳐 지금은 충남 공주시에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어요. 2019년 양성평등문화지원상을 받은 뒤, 연 국내 유일의 여성독립운동 연구 기관을 만든 이유 -독립운동연구원 심옥주 원장 구진은 미국과 하와이 연구에 더 힘을 쏟았고, 독립운동가 발굴에 힘썼어요. 2025년에는 학술연구팀이 샌프란시스코에서 UC 버클리 한국학센터와 공 동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참가하여 미국에서 활동한 여성독립운동가의 활 약을 소개할 수 있었어요. 국내와 일본, 미국, 중국 등 각자 다른 연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이룬 성과였지요.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는 그동안 국내외 학술세미나 25회, 국가기관 연구 사업 12회, 300회가 넘는 지역 학생들과 함께한 프로젝트, 여성독립운동가 그림 전시회 20회, 서적 발간 25권 등 다양한 활동으로 잊힌 여성의 역사를 되찾고 명예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해왔어요. 지난 18년간의 노력이 서서히 학 교 교과서에 여성독립운동가 수록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 음이에요. 18년 전 6평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는 과연 이 일을 하는 것이 맞는지,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컸어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여 성독립운동, 왜 여성과 남성을 독립운동의 주체로 구분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 음, 연구되지 않은 분야, 부족한 자료, 현장을 방문하고 인물의 활동을 역추적 해야 하는 열악한 현실 속에서 활동은 시작되었고 이어졌어요. 그 상황에서 버 티게 해 준 것은 함께 한 전문 연구가들이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라는 사실 이었기에 가능했어요. 코로나 이후 많은 비영리단체가 어려움을 겪었을 때, 연구소도 어려운 상황에
4544 출신의 독립운동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지 요. 비록 후손을 뵙지는 못했지만 국가가 훈 장을 전달해주었다고 들었어요. 그때 큰 보 람을 느꼈어요. 독립운동가 발굴과 서훈 신청은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한국여성독립운동 연구소에서 발굴한 독립운동가는 570여 명 이고, 그중에서 여성은 400명이 넘어요. 독 립운동 공적을 조사하고 확인하면서 추적하 는 시간들이 고통스럽지만, 그분들의 명예가 회복되는 기적같은 순간들이 있으니 서훈 신 청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외 부지원 없이 계속 하기는 힘들어요. 그래서 지난 해를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발굴 서훈조 사는 잠시 멈추기로 했어요. 그렇지만 연구소의 다른 활동은 중단없이 진행되고 있어요. 학술활동과 선양 활동을 통해 청소년과 대학생, 다음 세대에게 여성 독립운동가의 존재를 알리 고, 강연과 TV 다큐, 인터뷰로 대중과 소통하는 일은 계속하고 있어요. 비록 작은 단체이지만, 저희가 할 수 있는 노력으로 그분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 해 이어온 시간이 벌써 19년째로 접어들었네요. 많은 분이 수고가 많다고 응 원해주시니 그 말이 큰 힘이 돼요. 작년에 이어 올해에는 지역별로 활동한 여성독립운동가를 집적화하고 있어 요. 지난해 서울의 여성독립운동가 50인 책 발간에 이어 충청권 여성독립운 동가를 알리기 위해 <굿모닝충청>에서 <심옥주의 독립칼럼>을 기고하고 있 고, 경남여성재단과 공동으로 경남 출신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소개하는 50인 책 집필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 모든 활동은 혼자 하기에는 힘들어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소신을 가지 고 이어가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2025년부터 해외 활동을 하면서 교류를 하고 있는 해외 한글학교와 세종학당에서도 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활동 을 하고 있어요. 이러한 노력이 세계 속에 당당하게 선 한국의 여성독립운동 가를 알리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앞으로도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더 널리 퍼지길 바라요. 처했어요. 그때 건물주께서 임대료 50%를 절감해 주셨고, 98세 어르신이 용 돈을 내놓으시며 한국 어머니의 역사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격려해 주셨을 때 우리는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어요. 지난 광복절에는 이름 모를 분들이 통장에 만원, 2만원을 입금해주신 성원을 보며 힘들지만 해내야 하는 일임을 느꼈어요. 발굴한 570여 명의 독립운동가, 그중 400여 명이 여성 여성 독립 운동가들 훈장 받을 때 보람 그동안 했던 프로젝트 중 호주 여자 선교사 명예회복 프로젝트가 특히 기억 에 남아요. 외부 지원 없이 의기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2018년부터 2021 년까지 진행되었고, 일본 국무성 자료와 호주 보고서 자료를 추가 발굴하면 서 한 분이 아닌 세 분이 국가유공자로 표창을 받았어요. 최초 오세아니아주 독립운동연구원 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학술, 발굴, 조사연구를 해 왔으며, 다음 세대인 청소 년 및 대학생의 여성독립 운동의 역사에 대한 관심 을 고양시키기 위해 다양 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양성평등문화상 역대수상자 46 47
4948 ● 2025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인상 정보라 작가 양성평등문화콘텐츠상 | 한국 여성문학 선집 문학도서 양성평등문화지원상(단체) | 전북문화예술성평등네트워크 양성평등문화지원상(개인) | 원종철 공연 문화예술특별상 을주상 | 철학서점 소요서가 출판 일경문화상 | 김아영 미디어아티스트 신진여성문화인상 | 강민영 소설가, 김그래 웹툰작가, 박지혜 아나운서·러닝 인플루언서, 서해영 조각가, 아마도바 라힐 다문화강사·객원해설사, 이재원 디자이너, 이향란 배우, 전해림 체육교사, 진소희 해녀 ● 2024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인상 이자람 소리꾼 양성평등문화콘텐츠상 |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전시 양성평등문화지원상(단체) | 극단 신세계 극단 양성평등문화지원상(개인) | 김미옥 서평가 문화예술특별상 을주상 |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비영리단체 신진여성문화인상 | 강윤정 스포츠 인플루언서, 김고은 작가, 김지우 크리에이터, 마포로르 소리꾼, 박소영 연출가, 여수연 작곡가·해금연주가, 정지혜 영화감독, 한문경 퍼커셔니스트, 황영진·김다솜 부부 크리에이터 ● 2023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인상 이지나 뮤지컬 연출가 양성평등문화콘텐츠상 | 골 때리는 그녀들 예능 양성평등문화지원상(개인) | 안정민 극작가 문화예술특별상 을주상 | 극단 산울림 극단 신진여성문화인상 | 김경민 작가·활동가, 문수진 애니메이션 감독, 들개이빨 만화작가, 유혜미 가구 디자이너, 이소연 시인, 장서윤 판소리 작창가, 조경숙 테크페미 활동가 ● 2022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인상 민규동 영화감독 양성평등문화콘텐츠상 | 제주여성허스토리 다큐멘터리 양성평등문화지원상(단체) | 루이즈더우먼 시각예술인 협력체 양성평등문화지원상(개인) | 송진희 미술작가 문화예술특별상 을주상 |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비영리민간연구소 신진여성문화인상 | 근하 만화작가, 김정은 영화감독, 안가영 미디어아티스트, 정은혜 미술작가/배우, 황모과 소설가 ● 2021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인상 김이듬 시인 양성평등문화콘텐츠상 | 벌새 영화 양성평등문화지원상(단체) | 퍼플레이컴퍼니 영상/미디어 양성평등문화지원상(개인) | 봄날 활동가 문화예술특별상 을주상 | 여성을 위한 열린 기술랩 신진여성문화인상 | 김도희 시각예술가, 김혜미 애니메이션감독, 지후트리 수화아티스트, 양민영 작가/사회적기업가, 임선애 영화감독, 전혜은 연구자/작가, 정세랑 소설가, 소만 웹툰작가 ● 2020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인상 정정엽 미술가 양성평등문화콘텐츠상 | 정년이 만화/웹툰 양성평등문화지원상(단체) | 위밋업스포츠 체육 양성평등문화지원상(개인) | 권김현영 연구/작가 문화예술특별상 을주상 | 우리소리 '모색' 국악 신진여성문화인상 | 김수하 뮤지컬배우, 백명선 클래식 공연기획, 손수현 배우, 송유경 다원예술가, 신승은 가수·영화감독, 안정은 러닝전도사, 이은재 방송PD, 조소담 미디어 창업자 ● 2019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인상 안은미 무용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콘텐츠상 | 김복동 영화/다큐 양성평등문화지원상(단체) |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양성평등문화지원상(개인) | 서한영교 작가 문화예술특별상 을주상 | 연출집단 女GO 연극 신진여성문화인상 | 강유가람 영화, 김지양 모델/출판, 도로시 엠 윤 (윤미영) 시각예술, 박지혜 시각예술, 서도이 시각예술, 송원 연극, 최현미 체육, 하개월 (김하정) 유튜브 크리에이터 ● 2018 올해의 성평등문화상 올해의 성평등문화인상 노희경 드라마작가 올해의 성평등문화콘텐츠상 | B급 며느리 영화/다큐 청강문화상 | 수신지 웹툰 문화예술특별상 을주상 | 극단 춤추는 허리 연극 신진여성문화인상 | 김민정 문학, 김유리 미술, 백수현 클래식, 오신영 공연, 임정서 복합예술, 임정은 연극, 지현 음악, 장혜영 영화 ● 2017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인상 한태숙 연극연출가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콘텐츠상 | 82년생김지영 문학(소설) 청강문화상 | 뭎[Mu:p] 단체 공연예술 단체 문화예술특별상 을주상 | 문화기획 달 출판 신진여성문화인상 | 강명순 전시기획, 김형희 미술회화, 박윤주 설치미술, 김은진 시각미술, 김령화 대중음악, 양윤정 음악/바이올린, 윤서원 콘텐츠/기타, 이은희 서예/캘리그러퍼, 정혜윤 공연예술, 황혜정 섬유미술 ● 2016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인상 이경미 영화감독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콘텐츠상 | EBS 연중기획 다큐 <엄마의 두 번째 출근> 방송영상 청강문화상 | 정진호 그림책작가 문화예술특별상 을주상 | (사)제주여민회·제주여성영화제 영화 신진여성문화인상 | 김수정 영화, Y.zin 사진작가, 로나드 마테오 배우, 박서혜 연출/극작가, 씨냉 일러스트레이터, 최고은 싱어송라이터 ● 2015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한복려 전통문화 여성문화예술인 후원상 | 트렁크갤러리 사진 청강문화상 | 김현정 한국화가 문화예술특별상 을주상 | 한국입양 어린이합창단 음악 신진여성문화인상 | 김분선 무용가, 김희정 프로듀서, 선우정아 싱어송라이터, 송세진 피아니스트, 송원진 바이올리니스트, 이길보라 다큐멘터리 감독, 이정민 한국화가, 조인선 국악인, 천은영 극작가 ● 2014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문훈숙 무용가 여성문화예술인 후원상 | 백운갤러리 청강문화상 | 권윤덕 그림책작가 문화예술특별상 을주상 | 에이블뮤직그룹 신진여성문화인상 | 김진경 인형작가, 김현숙 연기자, 서희화 시각예술가, 성시연 지휘자, 심경숙 문화기획자, 이나래 만화가, 이리나 공연기획자, 오승수 연출가, 정주리 영화감독 ● 2013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인순이 가수 여성문화예술인 후원상 | 홈플러스 e파란재단 청강문화상 | 마리킴 팝아티스트 문화예술특별상 을주상 | (사)행복공장 신진여성문화인상 | 김은선 지휘자, 김효영 전통악기 생황 연주가, 신바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임안나 사진작가, 탁혜성 독립큐레이터 ● 2012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서수민 KBS프로듀서 여성문화예술인 후원상 |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영화제 청강문화상 | 독립출판사 아띠봄 문화예술특별상 을주상 | (사)문화세상 이프토피아, (사)평양예술단 신진여성문화인상 | 김영순 연극, 김재연 전통문화, 정민아 국악, 정연경 영화감독, 홍세희 무용가 ● 2011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심재명 영화제작자 여성문화예술인 후원상 | 석주문화재단 문화예술특별상 을주상 | (사)조이오브스트링스 신진여성문화인상 | 구본아 동양화가, 정보경 안무가, 강화정 공연연출가, 이자람 판소리, 정유정 소설가 ● 2010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박칼린 음악감독 여성문화예술인 후원상 | 헤이리 예술마을 문화예술특별상 을주상 | (사)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 신진여성문화인상 | 곽정 하피스트, 시와 싱어송라이터, 유다희 미술기획자, 김지은 바이올리니스트, 정인숙 연극배우 ● 2009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추민주 연출가 여성문화예술인 후원상 | 웅진문화재단 문화예술특별상 을주상 | 샐러드 TV 신진여성문화인상 | 장정임 문화기획자, 장수영 영화감독, 손 요 방송인/작가, 소뜨 소피업 사물놀이 강사, 손도이자브 버르길마 다문화가족지원 ● 2008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임순례 영화감독 여성문화예술인 후원상 | 성정문화재단 문화예술특별상 을주상 | 이혜란 여성영상집단 ‘움’ 신진여성문화인상 | 고미현 소프라노, 권경순 한지공예가, 김봉미 지휘자, 이정희 전통공예가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역대 수상자
발행일 2026년 10월 xx일 발행처 (사)여성·문화네트워크 주 최 (사)여성·문화네트워크 주 관 ㈜여성신문사 후 원 문화체육관광부 사 진 여성신문DB 및 각 출처 표기 문 의 (사)여성·문화네트워크 문화사업팀 TEL: 02-2036-9214 Fax: 02-752-0549 E-mail: wincb@womennews.co.kr 『STORY ME』는 (사)여성·문화네트워크가 주최하고 (주)여성신문사가 주관하며, 문화체육관광부가 후 원하는 「2026년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디지털 기록집입니다. 본 기록집은 참 여자의 인터뷰 응답을 바탕으로 AI를 활용해 원고 초안을 구성하고, 편집 및 검수 과정을 거쳐 제작되었 습니다. 이 책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저작권자의 사전 동의 없이 본 기록집의 내용을 무단으 로 복제하거나 전재하는 것을 금합니다. © 2026 (사)여성·문화네트워크. All rights reserved. Story Me 자기서사형 AI 프로젝트 나의 이야기가 기록이 되다